좋아하는 詩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이준관

효림♡ 2010. 10. 1. 07:57

*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 이준관   

내가 채송화꽃처럼 조그마했을 때

꽃밭이 내 집이었지.

내가 강아지처럼 가앙가앙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때

마당이 내 집이었지.

내가 송아지처럼 겅중겅중 뛰어다녔을 때

푸른 들판이 내 집이었지.

내가 잠자리처럼 은빛 날개를 가졌을 때

파란 하늘이 내 집이었지.

 

내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내 집은 많았지.

나를 키워 준 집은 차암 많았지. *

 

* 길을 가다

길을 가다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다가가 그 곁에 가만히 서 보고 싶다.  

잎들이 다 지고 하늘이 하나

빈 가지 끝에 걸려 떨고 있는

그런 가을날.  

혼자 놀고 있는 아기새를 만나면

내 어깨와

아기새의 그 작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어디든 걸어 보고 싶다.

걸어 보고 싶다. *

 

* 별 하나 

별을 보았다.

 

깊은 밤

혼자

바라보는 별 하나.

 

저 별은

하늘 아이들이

사는 집의

쬐그만

초인종

 

문득

가만히

누르고 싶었다. *

 

* 추운 날

추운 날 혼자서

대문 앞에 서 있으면요.

 

지나가는 아저씨가

ㅡ엄마를 기다리니? 발 시리겠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ㅡ원, 저런. 감기 걸리겠다. 집에 들어가거라.

 

지나가는 강아지가

ㅡ야단맞고 쫓겨났군, 안됐다. 컹컹.

 

대문 앞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내 마음

알지도 못하고.....

 

팽, 팽, 팽, 돌고 싶은 팽이가

내 주머니 속에서

친구를 동동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 가을 떡갈나무숲 
떡갈나무숲을 걷는다. 떡갈나무 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婚禮
그 눈부신 날개짓소리 들릴 듯한데
텃새만 남아
山 아래 콩밭에 뿌려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는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 같다 

 

떡갈나무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山짐승이 혀로 핥아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山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질 거야, 잎을 떨군다 *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의 가을 - 문정희   (0) 2010.11.01
금강산 - 한용운   (0) 2010.10.01
너를 사랑한다 - 강은교  (0) 2010.09.29
[스크랩] 오래된 가을  (0) 2010.09.28
성선설 - 임영조  (0) 2010.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