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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나무 한 그루 - 심재휘

효림♡ 2018. 4. 8. 09:00

* 봄꽃나무 한 그루 - 심재휘 

 

봄꽃나무는 어쩔 수 없이

나뭇가지 하나로 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꽃이 한 나무에 내리기 위해 준비한 그 오랜 시간도

바람 부는 아침의 어느 가지 위에 놓이고 나면

결국 꽃 한 송이의 무게로 흔들릴 뿐

꽃핀 가지는 또 새 가지를 내어

조금씩 가늘어지는 운명의 날들을 선택한다

 

그래서 해마다 봄에 관한 나의 고백은

꽃을 입에 문 작은 새처럼

꽃가지에서 빈 가지로 옮겨 앉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것인데

 

삶이 시시해진 어느 봄날
만개한 봄꽃나무 밑을 지나다가
나는 꽃들을 거느린 가지들의 그늘에 잠시 누워
활짝 핀 꽃나무의 풍경 하나를 보고 싶어진 것이다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피는 꽃들이
가지마다 저대로 살아가는 한 나무를

 

봄꽃나무에 대한 그대의 기억이

단지 그대가 손 내밀어 잡았던 바로

그 가지의 꽃향기로 언제나 술렁거리는 것인데 혹시

그대가 가지 못한 어느 길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나처럼 만개한 봄꽃나무 아래 잠시 누워보라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는 저 수많은 가지의 꽃들도

모두 하나의 꽃 이름으로 지금 불타고 있다는 사실 *

 

* 심재휘시집[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최측의농간,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