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개나리 시 모음

효림♡ 2011. 3. 25. 13:09

* 개나리 - 김사인 

한번은 보았던 듯도 해라

황홀하게 자지라드는

저 현기증과 아우성 소리

내 목숨 샛노란 병아리떼 되어 순결한 입술로 짹짹거릴 때

그때쯤 한번은

우리 만났던 듯도 해라

 

몇 날 몇 밤을 그대

눈 흡떠 기다렸을 것이나

어쩔거나

그리운 얼굴 보이지 않으니

4월 하늘

현기증 나는 비수로다

그대 아뜩한 절망의 유혹을 이기고

내가 가리 *

 

* 개나리 - 이은상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이라 대답을 보내었소.
둘이 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지 못하고 *

 

* 개나리 - 최동현

(전사들이 다 사라져 적막한 교정에

겨울 지나며 제일 먼저 개나리가 피었다)

사람 같은 사람 하나
만나러
이른 아침 남몰래 깨어
크게 한번 외쳐 보는 거다 
그리움 하나로
이 세상이 환해질 때까지
소리 없는 고함 한번 질러보는 거다 *

*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태동출판사

 

* 개나리 - 이해인

눈웃음 가득히
봄 햇살 담고
봄 이야기
봄 이야기
너무 하고 싶어
잎새도 달지 않고
달려나온
네 잎의 별꽃
개나리꽃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길게도
늘어뜨렸구나

내가 가는 봄맞이 길
앞질러 가며
살아 피는 기쁨을
노래로 엮어 내는
샛노란 눈웃음 꽃 *

* 이해인꽃시집[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출판사  

 

* 개나리꽃 - 도종환 

산속에서 제일 먼저 노랗게
봄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나
뒤뜰에서 맨 먼저  피어 노랗게 봄을 전하는
산수유나무 앞에 서 있으면
며칠 전부터 기다리던 손님을 마주한 것 같다

잎에서 나는 싸아한 생강 냄새에
상처받은 뼈마디가 가뿐해질 것 같고
햇볕 잘 들고 물 잘 빠지는 곳에서 환하게 웃는
산수유나무를 보면 그날은
근심도 불편함도 뒷전으로 밀어두게 된다 

그러나 나는 아무래도 개나리꽃에 마음이 더 간다

그늘진 곳과 햇볕 드는 곳을 가리지 않고 

본래 살던 곳과 옮겨 심은 곳을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이나 정원에서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산동네든 공장 울타리든 먼지 많은 도심이든 

구분하지 않고 바람과 티끌 속에서 

그곳을 환하게 바꾸며 피기 때문이다

 

검은 물이 흐르는 하천 둑에서도 피고 

소음과 아우성 소리에도 귀 막지 않고 피고 

세속이 눅눅한 땅이나 메마른 땅을 

가리지 않고 피기 때문이다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개나리꽃 - 도종환 

황사 속에서도 개나리 꽃은 핀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모래먼지 속에서도
개나리꽃은 핀다
무거운 공기에 어깨가 휘면서도
춘분 무렵이면 어김없이 개나리꽃은 핀다
너희로 인해 봄이 왔구나 생각하며
와락 껴안아 주고 싶어지는 개나리꽃

새학기 시작한지 아직 한 달이 안 됐는데  
아이들과 정이 들어
와락 껴안아 주고 싶어진다
아침을 거르고 오기 일쑤인
개나리꽃 같은 아이들
바람 불어도 비가 와도 걸어서 집까지 가는 아이들
모래먼지 속에서도 장난치며 크는 아이들

엷은 햇살 향해 턱걸이를 하면서도
담장에 매달려 개나리꽃은 핀다
돌담 옆에서도 청조망 안에서도 공장 가는 길에도
개아리꽃은 피어 세상을 환하게 바꾼다
메마른 땅에서 그늘에서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개나리꽃 같은 아이들
응달에서 커도 저마다 작은 꽃을 피우는
낭창낭창한 개나리꽃 우리 아이들    

 

* 봄밤에 별은 - 이성복 

봄밤에 별은 네 겨드랑이 사이로 돋아난다

봄밤에 어둠은 더 멀지도 가깝지도 않고

바람 불면 개나리 노란 가시 담장 불똥을

날린다 이 순간의 괴로움을 뭐라고 하나

봄밤에 철없이 인생은 새고 인생은 찻길로

뛰어들고, 치근덕거리며 별이 허리에 달라

붙어도 넌 이름이 없다, 넌 참 마음이 없다 *

 

* 개나리꽃 - 정성수 

노오란 병아리떼

나래 펴 들고 고개 들고

해를 쪼아

부리 끝에 부서져 날리는

저 분분한 노른자위 가루들

지구 위로 천천히 떨어져 내려

참 눈부신 속살로 흔들리며

내 알몸을 포옹하노니

이 아침 살고 싶은 지상에서

눈 뜨고 순금빛으로 죽고 싶어라 * 

 

* 개나리꽃 - 나태주   
개나리꽃 가지 꺾어 머리에 꽂고
종종걸음 따라 나서는 어린 딸년의 봄맞이
아무렴, 내게 무슨 봄맞이가 당한 일인가?
잔병치레로 눈 못 뜨는 이 눈부신 봄날 햇빛 속

 

* 개나리꽃 폈다 - 김종해  
삼월의 쳣째 주일
약속한 날이
발밑에 와 있다
햇빛과 바람이 먼저 깨운다
삼월의 둘재 주일
약속한 날
전지역에서 쓸 소리와
불꽃을 준비했다
삼월의 셋째 주일
봄비가 한밤에서 새벽녘까지
가야금을 뜯었다
실핏줄이 가렵다
삼월의 넷째 주일
그대가 점지한 날
다함께 하늘을 들어올리고
촛불을 켠 채 뛰어나갔다
개나리꽃 폈다! *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 최갑수

아주 짧았던 순간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된 적이 있다  

봄날이었다, 나는
창 밖을 지나는 한 여자를 보게 되었는데  

개나리 꽃망울들이
햇빛 속으로 막 터져나오려 할 때였던가  

햇빛들이 개나리 꽃망울들을 들쑤셔
같이 놀자고, 차나 한잔 하자고  

그 짧았던 순간 동안 나는 그만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여자를 사랑해왔던 것처럼
햇빛이 개나리 여린 꽃망울을 살짝 뒤집어  

개나리의 노란 속살을 엿보려는 순간
그 여자를 그만 사랑하게 되어서  

그후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몇 명의 여자들이 계절처럼 내 곁에 머물다 갔지만  

아직까지 나는 그 여자를 못 잊어
개나리꽃이 피어나던 그 무렵을 나는 못 잊어  

그 봄날 그 순간처럼
오랫동안 창 밖을 내다보곤 하는 것인데  

개나리꽃이 피어도
그 여자는 지나가지 않는다  

개나리꽃이 다 떨어져도
내 흐린 창가에는 봄이 올 줄 모른다 

* 크지쉬토프 키에슬로부스키 감독의 영화

* 최갑수시인[단 한 번의 사랑]-문학동네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 홍성란 
 
 

단비 한번 왔는갑다 활딱 벗고 뛰쳐나온 저년들 봐, 저년들 봐. 민가에 살림 차린 개나리 왕벗꽃은 사람 닮아 왁자한데

 

노루귀 섬노루귀 어미 곁에 새끼노루귀, 얼레지 흰얼레지 깽깽이풀에 복수초, 할미꽃 노랑할미꽃 가는귀 먹은 가는잎할미꽃, 우리 그이는 솔붓꽃 내 각시는 각시붓꽃, 물렀거라 왜미나리 아재비 살짝 들린 처녀치마, 하늘에도 땅채송화 구수하니 각시둥글레, 생쥐 잡아 괭이눈, 도망쳐라 털괭이눈, 싫어도 동의나물 낯두꺼운 윤판나물, 허허실실 미치광이 달큰해도 좀씀바귀, 모두 모아 모데미풀 한계령에 한계령풀, 기운내게 물솜방망이 삼태기에 삼지구엽초, 바람둥이 변산바람꽃 은밀하니 조개나물, 봉긋한 들꽃 산꽃 두 팔 가린 저 젖망울

 

간지러, 봄바람 간지러 홀아비꽃대 남실댄다 * 

 

* 길 - 윤제림

꽃 피우려고 온 몸에 힘을 쓰는 벚나무들, 작전도로 신작로 길로
살 하나 툭 불거진 양산을 쓰고 손으로 짰지 싶은 헐렁한 스웨터를
입고 곰인형 가방을 멘 계집애 손을 붙들고 아낙 하나가 길을 간다
멀리 군인 트럭 하나 달려가는 걸 보고, 흙먼지 피해 일찍 피어난
개나리꽃 뒤에 가 숨는다 흠칫 속도를 죽이는 트럭, 슬슬 비켜가는
짐 칸 호로 속에서 병사 하나 목을 빼고 외치듯이 묻는다 "아지
매요, 알라 뱄지요?"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안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아낙이 수줍게 웃는다 금방이라도 꽃이 피어날 것 같은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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