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4월 시 모음

효림♡ 2011. 4. 1. 09:07

* 사월 비빔밥 - 박남수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 사월 - 문인수 
절을 에워싼 산빛이 수상하다.
잡목 사이로 여기저기 펄럭 걸린 진달래,
단청 엎질린 것 같다.
등산로를 따라 한 무리
어린 여자들이 내려와서 마을 쪽으로 사라진다.
조용하라, 조용히 하라 마음이여
절을 에워싼 산빛이 비릿하다.

 

* 사월의 노래 - 이태수 

앞산이 걸어오네, 일요일 늦은 아침
간밤 꿈 지우고 가부좌로 앉아 있으면
가슴에 진달래, 발치엔 흐드러진 벚꽃
갈지자로 앞산이 느릿느릿 걸어오네
넓은 이마에는 구름 몇 자락 걸친 채
물소리, 새소리를 거느리고 오네

베란다의 난초 꽃잎 위에 감돌고 있네

창유리 스치던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앞산을 슬며시 제자리로 끌고 가지만

꽃 피는 봄 사월 마음은 허궁에 뜨고

복사꽃, 살구꽃, 매화들이 다투어 피네

갈지자로 앞산이 느릿느릿 걸어오네

 

* 사월의 노래 - 곽재구 

사월이면
등꽃이 피는 것을 기다리며
첼로 음악을 듣는다//
바람은
마음의 골짜기
골짜기를 들쑤시고//
구름은 하늘의
큰 꽃잎 하나로
마음의 불을 가만히 덮어주네//

노래하는 새여
너의 노래가 끝난 뒤에
내 사랑의 노래를
다시 한번 불러다오//
새로 돋은 나뭇잎마다
반짝이는 연둣빛 햇살처럼
찬란하고 서러운
그 노래를 불러다오 

 

* 사월의 노래 - 노천명 
사월이 오면 사월이 오면은......
향기로운 라일락이 우거지리
회색빛 우울을 걷어버리고
가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저 라일락 아래로ㅡ라일락 아래로

푸른 물 다담뿍 안고 사월이 오면
가냘픈 맥박에도 피가 더하리니
나의 사랑아 눈물을 걷자
청춘의 노래를, 사월의 정열을
드높이 기운차게 불러보지 않으려나

앙상한 얼굴의 구름을 벗기고 
사월의 태양을 맞기 위해
다시 거문고의 줄을 골라
내 노래에 맞추지 않으려나 나의 사람아! *

 

* 사월의 노래 - 정호승 
사월이 오면
저 산을 뽑으리라
산새도 살지 않는
사람들도 쫓겨간
저 붉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지리라

개꽃이 피고
개꽃잎이 흩어져도
저 붉은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지고
자유의 무덤 앞을
떠나가리라

 

* 사월의 노래 -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봄이여, 사월이여 - 조병화

하늘로 하늘로 당겨오르는 가슴
이걸 생명이라고 할까
자유라고 할까
해방이라고 할까

사월은 이러한 힘으로
겨울 내내 움츠렸던 몸을
밖으로 밖으로 인생 밖으로
한없이 한없이 끌어내어
하늘에 가득히 풀어놓는다

멀리 가물거리는 것은 유혹인가
그리움인가
사랑이라는 아지랭인가
잊었던 꿈이 다시 살아난다

오 봄이여, 사월이여
이 어지럼움을 어찌하리

 

* 사월 - 김현승

플라타너스의 순들도 아직 어린 염소의 뿔처럼

돋아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시는 그들 첨탑 안에 든 예언의 종을 울려

지금 파종의 시간을 아뢰어준다

깊은 상처에 잠겼던 골짜기들도

이제 그 낡고 허연 붕대를 풀어버린 지 오래이다

시간은 다시 황금의 빛을 얻고,

의혹의 안개는 한동안 우리들의 불안한 거리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다

검은 煙突은 떼어다 망각의 창고 속에

넣어 버리고,

유순한 남풍을 불러다 밤새도록

어린 水仙들의 쳐든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개구리의 숨통도 지금쯤은 어느 땅 밑에서 불룩거릴 게다

추억도 절반, 희망도 절반이어

사월은 언제나 어설프지만,

먼 북녁에까지 解凍의 기적이 울리이면

또다시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 달은 어딘가 迷信의 달.....*

* 김현승시집[가을의 기도]-미래사

 

* 아, 4월 - 이시영

감자 대를 뜯다가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오늘도 동냥 나가 나는 너를 기다렸다

강 건너 버들잎 날리면

보리밭 둑을 타고 너는 오리라

뒷산에 진달래 붉게 울면

목발을 짚고 너는 오리라

땀에 젖은 얼굴 빛나는 함성

그 날의 총탄 속을 뚫고

너는 다시 오리라

지친 땅이 낳은 아들 문둥이 아들

누더기 속에 간 오히려 깨끗한 사랑

두 팔에 덥석 안을 날은 오리라

아아 몇몇 해던가

먹구름을 몰아내면 또 같은 먹구름

소나기를 피하면 더 거센 소나기

너는 오지 않고 쉽사리 오지 않고

종살이에 지친 누이들 

칡꽃이 희게 울 때 또 다른 주인 찾아 몸 팔러 갔네

종다리 빈 밭에 날 때 

힘깨나 쓰는 동생들 서울 가 떠돌이가 되었네 

애비 같은 비렁뱅이 되었네

아아 몇몇 해던가 기다림의 나날

한번은 박차고 나아가 맞이해야 할 날

가난하지만 자랑스럽게 우리가 우리 차지해야 할 날

크나큰 슬픔의 날 별빛 해방의 날 오리라

바로 너는 오리라 꽃수레 타고

가랑잎만 굴러도 나는 너를 기다렸다

다리밑 움막 열고 나와 나는 너를 기다렸다

 

* 4월에 - 정희성 

보이지 않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다

굳이 돌에 새긴 피

그 시절의 무덤을 홀로

지키고 있는 것은 석탑(石塔)뿐

이 땅의 정처없는 넋이

다만 풀 가운데 누워

풀로서 자라게 한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룬 것은 없고

죽은 자가 또다시 무엇을 이루겠느냐

봄이 오면 속절없이 찾는 자 하나를

젖은 눈물에 다시 젖게 하려느냐

4월이여

 

* 빈 의자 - 정한모 
그날 밤
너를 기다리던
저녁 밥상이
어머니의 가슴에서
언제까지나
식지 않는 눈물이듯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책가방을 끼고
계단을 내려간
마지막
네 인사


오늘도 너는
빈 의자 위에
착한 그의 눈짓으로
돌아와 앉는다 *
-국립4·19 민주묘지 수호예찬비에 새겨져 있는 시

 

* 진달래 -다시 4.19날에 - 이영도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爛漫)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恨)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

 

* 사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 정해종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거리엔 꽃을 든 여인들 분주하고
살아 있는 것들 모두 살아 있으니
말을 걸어 달라고 종알대고
마음속으론 황사바람만 몰려오는데
4월이면 바람나고 싶다
바람이 나도 단단히 나서
마침내  바람이 되고 싶다
바람이 되어도 거센 바람이 되어서
모래와 먼지들을 데리고 멀리 가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느 나라
어느 하늘 한쪽을
자욱이 물들이고 싶다
일렁이고 싶다 *

 

* 4월과 아침 - 오규원 
나무에서 생년월일이 같은 잎들이

와르르 태어나

잠시 서로 어리둥절하네

4월하고도 맑은 햇빛 쏟아지는 아침 *

 

* 4월 엽서 - 정일근 
막차가 끝나기 전에 돌아가려 합니다

그곳에는 하마 분분한 낙화 끝나고 지는 꽃잎 꽃잎 사이

착하고 어린 새 잎들 눈뜨고 있겠지요

바다가 보이는 교정 4월 나무에 기대어

낮은 휘파람 불며 그리움의 시편들을 날려보내던

추억의 그림자가 그곳에 남아 있습니까 

작은 바람 한 줌에도 온몸으로 대답하던 새 잎들처럼

나는 참으로 푸르게 시의 길을 걸어

그대 마을로 가고 싶었습니다

날이 저물면 바다로 향해 난 길 걸어

돌아가던 옛집 진해에는 따뜻한 저녁 불빛 돋아나고

옛 친구들은 잘 익은 술내음으로 남아 있겠지요
4월입니다

막차가 끝나기 전에 길이 끝나기 전에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사월 비 - 이제하
보소, 보이소로 오시는 사월 가랑비
헤어진 여자 같은 사월 가랑비
잔치도 끝나고 술도 다 깨고 피도 삭고 꿈도 걷히고
주머니마저 텅텅 빈 이른 새벽에
가신 이들 보이는 건널목 저편
사랑한다, 한다 횡설수설하면서
어디까지 따라오는 사월 가랑비 *

 

* 4월이 오면 - 권영상

4월이 오면
마른 들판을
파랗게 색칠하는 보리처럼
나도 좀 달라져야지.

솜사탕처럼 벙그는
살구꽃같이
나도 좀 꿈에 젖어
부풀어 봐야지.
봄비 내린 뒷날
개울을 마구 달리는
힘찬 개울물처럼
나도 좀 앞을 향해 달려 봐야지.

오, 4월이 오면 
좀 산뜻해져야지. 
참나무 가지에 새로 돋는 속잎 
같이. *

 

* 사월, 진해만 - 정일근

바다는 푸른 접시에 담겨

신의 아침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신은 아페리티프를 주문해 놓고

노래하듯 시를 읽거나

슈트라우스의 왈츠를 듣는다

세일러복을 입은 갈매기들이

거수경례를 하며 지나간다

향커피 한 잔이 뜨거워지는 사이

바다의 표정은 세룰리언 블루에서 

색스 블루로 변해가고

사월 바람에 꽃잎 몇 장 날아와

접시 속의 가벼운 섬으로 앉는다

후, 하고 꽃잎들을 불어본다

자욱한 꽃향기 바다를 덮는다 *

 

* 봄 -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  

사월이여! 그대는 어이하여 다시 오는가?

아름다움으로는 흡족하지 않다.

끈끈하게 움트는 작은 이파리의 붉은색으로
더 이상 나를 달랠 순 없지.
나도 내가 아는 게 뭔지는 알지.
뾰족한 크로커스꽃잎을 바라볼 때면
목덜미에 햇살이 따사롭다.
흙냄새도 좋다.
죽음이 사리진 것 같구나.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땅 밑에선 구더기가 죽은 이의 뇌수를
갉아먹는다, 그뿐인가.
인생은 그 자체가
무(無),
빈 잔,
주단 깔리지 않은 계단일 뿐.

해마다 이 언덕 아래로

사월이

백치처럼 재잘재잘 꽃 뿌리며 온다 한들

그것으로 충분한 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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