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김남주 시 모음

효림♡ 2011. 4. 5. 21:15

* 지는 잎새 쌓이거든 - 김남주    

당신은 나의 기다림

강 건너 나룻배 지그시 밀어 타고

오세요

한줄기 소낙비 몰고 오세요


당신은 나의 그리움

솔밭 사이사이로 지는 잎새 쌓이거든

열두 겹 포근히 즈려밟고 오세요


오세요 당신은 나의 화로

눈 내려 첫눈 녹기 전에 서둘러

가슴에 당신 가슴에 불씨 담고 오세요


오세요 어서 오세요

가로질러 들판 그 흙에 새순 나거든

한아름 소식 안고 달려오세요

당신은 나의 환희이니까요 *

 

* 옛 마을을 지나며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

 

* 사랑은 
겨울을 이기고 사랑은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려 다시 사랑은
불모의 땅을 파헤쳐
제 뼈를 갈아 재로 뿌리고
천년을 두고 오늘
봄의 언덕에
한 그루 나무를 심을 줄 안다

사랑은
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안다
너와 나와 우리가
한 별을 우러러보며. *

 

* 돌멩이 하나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난 제방을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고자 했다  

강물 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친구와 나 밤길을 걸으며
불씨 하나 되고자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새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이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

 

* 고목(枯木)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투성이 얼굴과

상처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 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년

쉽게 살고 싶지는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어주고싶다 *

 

* 이 가을에 나는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다
오라에 묶여 사슬에 손발이 묶여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는

어디로 끌려가는 것일까 이번에는
전주옥일까 광주옥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곳일까

나를 태운 압송차가
낯익은 도시 거리의 인파를 빠져 나와 
들판 가운데를 달린다
아 내리고 싶다 여기서 차에서 
따가운 햇살 등에 받으며 저만큼에서
고추를 따고 있는 어머니의 밭에서  
숫돌에 낫을 갈아 나락을 베고 있는 아버지의 논에서
빙 둘러서서 염소에게 뿔싸움을 시키는 아이들의 제방에서 
내려서 그들과 함께 일하고 놀고 싶다
내려서 손발에서 허리에서 이 오라 풀고 이 사슬 풀고 
내달리고 싶다 아이와 같이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내달리고 싶다 발목이 시도록 논둑길을 
내달리고 싶다 가슴에 바람 받으며 숨이 차도록 
가다가 목이 마르면
손으로 표주박을 만들어 샘물로 갈증을 적시고
가다가 가다가 배라도 고프면
땅으로 웃자란 하얀 무를 뽑아 먹고
날 저물어 지치면
귀소의 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나 나를 태운 차는 멈춰 주지 않고
들판을 가로질러 역사의 강을 건넌다
갑오농민들이 관군과 크게 싸웠다는 황룡강을
여기서 이기고 양반과 부호들을 이기고
장성갈재를 넘어 전주성을 넘보았다는
옛 쌈터의 고개를 나도 넘는다
이 가을에 나는 푸른 옷의 수인이 되어 *

 

* 노래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이 산골은 날라와 더불어
새가 되자 하네 새가
아랫녘 윗녘에서 울어예는
파랑새가 되자 하네

이 들판은 날라와 더불어
불이 되자 하네 불이
타는 들녘 어둠을 사르는
들불이 되자 하네

되자 하네 되고자 하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靑松綠竹) 가슴으로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죽창이. *

 

*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있는 나라는  

윗것들은
밑으로부터 위협을 받으면 
위협을 받아 재산의 뿌리 권력의 기둥이 흔들리면
민중들을 역적으로 몰아붙이고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그들을 학살했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때 양반과 부호들이 그랬고
1950년 앞뒤에 이승만과 그 추종자들이 그랬다
이런 것쯤은 알고 있다 먹물인 나는
시인인 나는 이렇게 노래할 줄도 안다
동전과 권력의 이면에는 조국이 없다고
그러나 나는 몰랐다 인천엔가 어디에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서 있더라는 소리를 듣고
그런 것은 미국의 식민지에는 으레 있는 것만으로만 알았지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은 차마 몰랐다
그래서 나는 신경림 시인이 ‘민요기행’에다 담은
어느 농부의 노여움을 읽고 그만 화끈 얼굴이 달아올라
얼른 책을 덮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남의 나라 군대 끌어다 제 나라 형제 쳤는데
뭣이 신난다고 외국 장수 이름을 절에 갖다 붙이겠소
하기야 인천 가니까 맥아더 동상이 서 있더라만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더만" *

 

* 무심(無心)  
아침 햇살이 은사시나무 우듬지에서 파르르 떨고
산골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는 내 귀에서 맑다
나는 지금 어머니를 따라 산사(山寺)를 찾아가고 있다

어머니 그동안 이 고개를 몇번이나 넘으셨어요

니가 까막소 간 뒤로 이날 이때까장 그랬으니까
나도 모르겄다야 이 고개를 몇차례나 넘었는지

옥살이 십년 동안 단 한번도 자식을 보려
감옥을 찾은 적은 없었으되
정월 초하루나 팔월 보름날 같은 날이면
한번도 빠짐없이 절을 찾으셨다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두고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실은 나도 모를 일이다
자식이 보고 싶을 때
감옥 대신 절을 찾으셨던 어머니의 그 속을
이제 이 고개만 넘으면 어머니 그 절이 나오지요


그래 그래 하면서 어머니는 숨이 차는지
공양으로 바칠 두어 됫박 쌀차둥이를 머리에서 내려놓고
후유 후유 한숨을 거듭 쉰다

니 나왔은께 인자 나는 눈 감고 저승 가겄어야
니 새끼가 너 같은 놈 나오면 그때는
니 예편네가 이 고개를 넘을 것이로구만
풍진 세상에 남정네가 드나들 곳은 까막소고
아낙네는 정갈하게 몸 씻고 절을 찾아나서는 것이여

* "인자 오냐" 그뿐이었다. 내가 옥문을 나와 십년 만에 고향집을 찾았을 때 어머니가 내게 하신 말씀은. "어디 몸상한 데는 없느냐" "고생 많이 했지야" 이따위 말씀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어머님의 속을 알지 못한다. 무심(無心), 이 한마디의 말 속에 내 어머니의 속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희로애락에 들뜨거나 호들갑스럽지 않은 내 어머니가 때로는 부처님 같기도 하다. 

* 김남주유고시집[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창비

 

* 김남주를 묻던 날 - 송경동

경기대에서 [조국은 하나다]

육성시 낭송을 듣고도 울지 않고

광주 톨게이트, 빛고을 시민들보다

먼저 와 그를 기다리고 섰던

백골단 장벽 보면서도 울지 않고

불 꺼진 취조실마냥 어둡던 망월동

그의 하관을 보면서도 이 악물었는데

 

그를 묻고 돌아온 서울

심야버스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다

다리 난간에 덜덜거리는 허리 받치고

해머드릴로 아스팔트 까며 야간일 하는

늙은 노동자들을 본 순간

이 악물며 울고 말았다

그가 간 것보다 그가 사랑했던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것이 서러웠다 *

* [시가 내게로 왔다 3]-마음산책

 

* 김남주(金南柱)시인

-1946년~1994년 전남 해남 사람

-1974년 [창비]에 [진혼가]등을 발표, 제9회 신동엽창작기금, 제6회 단재상 문학 부문, 제4회 민족예술상 수상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9년째 복역중 1988년 12월 가석방조치로 출소

-시집[진혼가][이 좋은 세상에][꽃속에 피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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