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음식 시 모음 3

효림♡ 2011. 4. 1. 09:32

* 밥 - 고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흔하디 흔한 것

동시에

최고의 것

 

가로되 사랑이더라 *

 

* 밥알 - 이재무

갓 지어 낼 적엔

서로가 서로에게

끈적이던 사랑이더니

등이더니

찬밥 되어 물에 말리니

서로 흩어져 끈기도 잃고

제 몸만 불리는구나  *

 

* 위대한 식사 - 이재무

산그늘 두꺼워지고 흙 묻은 연장들
허청에 함부로 널브러지고
마당가 매캐한 모깃불 피어오르는
다 늦은 저녁 멍석 위 둥근 밥상
식구들 말없는, 분주한 수저질

뜨거운 우렁된장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밤새 울음,

물김치 속으로 비계처럼 둥둥
별 몇 점 떠 있는 냉수 사발 속으로
아, 새까맣게 몰려오는 풀벌레 울음
베어 문 풋고추의 독한,

까닭 모를 설움으로
능선처럼 불룩해진 배
트림 몇 번으로 꺼뜨리며 사립 나서면
태지봉 옆구리를 헉헉,

숨이 가쁜 듯 비틀대는
농주에 취한 달의 거친 숨소리
아, 그날의 위대했던 반찬들이여 *

 

* 냉이의 꽃말 - 김승해

언 땅 뚫고 나온 냉이로

된장 풀어 국 끓인 날

삼동 끝 흙빛 풀어진 국물에는

풋것의 향기가 떠 있는데

모든 것 당신에게 바친다는 냉이의 꽃말에

찬 없이도 환해지는 밥상머리

국그릇에 둘러 피는 냉이의 꽃말은

허기진 지아비 앞에

더 떠서 밀어놓는 한 그릇 국 같아서

국 끓는 저녁마다 봄, 땅심이 선다 

 

퍼주고도 다시 우러나는 국물 같은
냉이의 꽃말에
바람도 슬쩍 비켜가는 들 
온 들에 냉이가 돋아야 봄이다
봄이라도
냉이가 물어 주는 밥상머리 안부를 듣고서야
온전히 봄이다

 

냉이꽃, 환한 꽃말이 밥상머리에 돋았다 *

 

* 칼국수 - 문인수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그때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 어흠 걸터앉으며
물씬 흙 냄새 풍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
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아 구름 구름밭
부연기와 추녀 끝 삐죽히 날아 오른다


이 가닥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
혹은 긴 긴 동앗줄의 길을 놓으며
나는 홀로 무더위의 지상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
* 문인수시집[홰치는 산]-천년의 시작

 

* 동지 - 신덕룡 

폭설이다. 하루 종일

눈이 내려 집으로 가는 길이 지워졌다 

눈을 감아도 환한 저 길 끝 

아랫목에서 굽은 허리를 지지실 어머니

뒤척일 때마다 풀풀, 시름이 날릴 테지만

어둑해질 무렵이면 그림자처럼 일어나 

홀로 팥죽을 끓이실 게다 

숭얼숭얼 죽 끓는 소리 

긴 겨울밤들을 건너가는 주문이리라 

너무 낮고 아득해서 

내 얇는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눈그늘처럼 흐릿해서 들여다볼 수 없다 *

 

* 평상이 있는 국숫집 - 문태준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 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 일을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

 

* 국수집 - 윤의섭 
말간 국수집 강릉 가는 길가에 갑자기 솟아난 섬처럼 놓여 있는
국수나무 바람에 잠깐씩 깨어나는 마당 인적 없어도
한 방 가득 복작거리는 천지간 국수집
질긴 면발은 가장 늙은 지층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선 국수비가 쏟아지는가
희뿌옇게 김 서린 유리창 너머
한 입 가득 국수를 머금은 채 웃고 있는 사람
덩그렇게 앉아 있는 하얀 소복 국수사리
곧 폭설이 몰아칠 것이다

여기 와서야 넋 놓고 겨울 진경을 보자 했구나
동지 석 달은 한 그릇 말아 벌써 먹어 치웠어
길이 끊기겠지
한 가닥 모질게 남은 면발이 아직 이어져 있는 것도 같아
선한 눈매가 지워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랜만이지

누가 어디 다녀왔냐길래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람이 한 꺼풀 걷혔지만 설산은 그대로였고
말간 국물에 한소끔 먹먹히 잠겨 있는 저녁나절 *

* 윤의섭시집[마계]-민음사 

 

* 봄비로, 가을비로 - 한영옥 
보슬비 마알갛게 얼비치고서
국수나무 순 소복소복해지면
국수나무 순 삶아 먹고
내처 장대비 쏟아지고서
국수버섯 소복소복해지면
버섯국 끓여 먹으며
서러운 밥 때마다 눈시울 뜨거워
봄비로 떨구었습니다
가을비로 후득였습니다
생각할수록 사랑이었습니다
국수나무 이파리도 쪼그라지고
국수버섯 나던 곳도 바싹 말랐습니다
어지간히 생각한 것입니다
어지간히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

 

* 두부 - 나희덕  
언제부터인가 두부가 싫어졌다 

두부만으로도 푸짐했던 시절은 갔다고들 한다
그러나 퇴근길에 두부 한 모 사들고 오면서 

왠지 즐겁고 든든해지던 날들이 있었다
따뜻한 김이 나는 두부를

부서질까 조심스레 들고 와서
기름에 부쳐 먹고 된장찌개에도 넣고 

으깨어 아기 입에도 넣어주었지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들 맘씨처럼 

정에 약해 곧잘 부서져내리기도 하고
뜨거운 된장 속에서 가슴 부푸는 

그런, 두부를 나도 모르게 잊고 살다니!
시장바닥에 좌판을 벌여놓은 아줌마 

옆구리에 어린애를 끼고 앉아
김치에 날두부를 싸서 늦은 점심을 먹는 모습이 

어찌나 맛있게 보이던지!
오랜만에 두부 한 모 사들고 돌아온다 

두부에게로 돌아온다 *

* 나희덕시집[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비

 

* 아구찜 요리 - 최승호 

아구는 거의 없고 뼈만 씹히고

양념이 산더미 같은 아구찜

버얼건 양념을 먹으세요, 매운 양념을

아구라는 놈은 대가리가 크고 넓적해도

살은 몇 점 안 되니까

 

아구찜인지 아귀찜인지

이 아귀세상

온갖 양념이 당신을 요리하는 세상이니

아구찜을 먹으세요, 입 큰 고기

아귀처럼 아귀아귀 먹으세요

당신도 매운 사람이 되세요 *

 

* 비빔밥 - 고운기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 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무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

 

* 누룽지 - 정상현

배고픈 날 누룽지 한 조각 먹어보아라
밥 짓다 태웠다고 푸념할 일이 아님을
꼭꼭 오래 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알리라
인생도 씹을수록 맛이 나는 누룽지처럼
더 타고 속이 타야 멋도 알고 맛도 알까? *
* 정상현시집[사라진 나라를 꿈꾸다]-모아드림 

 

* 밥 - 정진규

이런 말씀이 다른 나라에도 있을까
이젠 겨우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는 말씀, 그 겸허, 실은 쓸쓸한 安分,

그 밥, 우리나란 아직도 밥이다 밥을 먹는게 살아가는 일의 모두, 조금 슬프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께서도 길떠난 나를 위해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언제나 한 그릇 나의 밥을 나의 밥그릇을 채워놓고 계셨다 기다리셨다

저승에서도 그렇게 하고 계실 것이다

우리나란 사랑도 밥이다 이토록 밥이다 하얀 쌀밥이면 더욱 좋다

나도 이젠 밥이나 좀 먹게 되었다 어머니 제삿날이면 하얀 쌀밥 한 그릇 지어올린다

오늘은 나의 사랑하는 부처님과 예수님께 나의 밥을 나누어 드리고 싶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겸상으로 밥을 드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분들은 자주 밥알을 흘리실 것 같다 숫가락질이 젓가락질이 서투르실 것 같다

다 내어주시고 그분들의 쌀독은 늘 비어 있었을 터이니까 늘 시장하셨을 터이니까

밥을 드신지가 한참 되었을 터이니까 

 

* 국밥집에서 - 김춘수 

이 더운 날에

내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 것을

부글부글 끓는 맵싸한 국물과 함께

꿀꺽 삼킨다. 혹은 개 패듯

두들겨팬다.  

비명을 한번 질러 보라고

질러 보라고

오늘이 복날이니까. *

* 정끝별의 밥시이야기[밥]-마음의숲

 

* 무밥 - 안도현

무밥 한 그릇이
소반 위에 놓여 있다
소반이 적막하여서
무밥도 적막하여서
송송 채를 썬
흰 무의 무른 살에 스민
뜨거움도 적막하여서
무밥 옆에 댕그라니 놓인
양념간장 한 종지도
옛적에 젊은 외삼촌이
여자를 만난 것처럼
가난하게 적막하여서
들척지근하고 삼삼한
이 한 저녁을
나는 달그락달그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

* 안도현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 삶은 감자 - 안도현

삶은 감자가 양푼에
하나 가득 담겨 있다
머리 깨끗이 깎고 입대하는 신병들 같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중이다
감자는 속속들이 익으려고 결심했다
으깨질 때 파열음을 내지 않으려고
찜통 속에서
눈을 질끈 감고 익었다
젓가락이 찌르면 입부터 똥구멍까지
내주고, 김치가 머리에 얹히면
빨간 모자처럼 덮어쓸 줄 알게 되었다
누구라도 입에 넣고 씹어봐라
삶은 감자는 소리 지르지 않겠다고
각오한 지 오래다 *

 

* 밥 먹었느냐고 - 최정례 
꽝꽝나무야
꽝꽝나무 어린 가지야
나를 엄마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
날 여보라고 불러줄 수 있겠니?
어린 가지야
꽝꽝나무야
나에게 물어줄 수 있겠니?
여보, 밥 먹었어?
엄마, 밥먹었어? 라고
그럼 나 대답할 수 있겠다
꽝꽝나무야
나 밥 먹었다
국에 밥 말아서
김치하고 잘 먹었다 *

 

* 꼬막 - 박노해  

벌교 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 말을 부쳐 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南道)의 살림 성사(聖事)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전화를 했더니
찬바람 부는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 머시냐 태풍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우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데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에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 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이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

 

* 국밥 한 그릇 - 이정록

  '세번째로 맛있는 집'에서 국밥 먹는다

  왜 '첫번째로 맛있는 집'이라고 안했어요? 물어보니, 서른 남짓한 여인이 웃기부터 한다 처음 오신 손님만 물어보니

귀찮을 거야 없쥬, 한다 차림표에다 써놓을 필요가 어딨것슈, 손사래친다 

 

  '첫번째로 맛있는 집'은 시할머니가 하고, '두번째로 맛있는 집'은 시어머니가 운영한단다 손맛이란 게 역사라며

세번째도 과분하단다 '첫번째로 맛있는 집'은 육칠십대 어르신들이 단골이고, '두번째로 맛있는 집'은 사오십 줄,

'세번째로 맛있는 집'은 이삼십대 얼라들이란다  

  좋은 밥집은 단골과 함께 나이 먹는 거라며 아직 어림없단다 어서 빨리 '네번째로 맛있는 집'을 열었으면 좋을 텐디유,

하며 늦둥이 아들의 기저귀를 가는 여인의 뒤태가 고추장단지 같다 

  녀석의 짝이 어딘가에서 어미젖을 쭉쭉 빨 것을 떠올리며, 삼십년 뒤 국밥 한 그릇까지 킁킁 후루룩거리는 겨울 아침이다 *

* 이정록시집[정말]-창비 

 

* 배추 절이기 - 김태정

아침 일찍 다듬고 썰어서
소금을 뿌려놓은 배추가
저녁이 되도록 절여지지 않는다
소금을 덜 뿌렸나
애당초 너무 억센 배추를 골랐나
아니면 저도 무슨 삭이지 못할
시퍼런 상처라도 갖고 있는 걸까

 

점심 먹고 한 번
빨래하며 한 번
화장실 가며오며 또 한 번
골고루 뒤집어도 주고
소금도 가득 뿌려주었는데

 

한 주먹 왕소금에도
상처는 좀체 절여지지 않아
갈수록 빳빳이 고개 쳐드는 슬픔
꼭 내 상처를 확인하는 것 같아

 

소금 한 주먹 더 뿌릴까 망설이다가
그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제 스스로 제 성깔 잠재울 때까지
제 스스로 편안해질 때까지

 

상처를 헤집듯
배추를 뒤집으며
나는 그 날것의 자존심을
한 입 베어물어본다 *

 

* 그 말이 가슴을 쳤다 - 이중기 
쌀값 폭락했다고 데모하러 온 농사꾼들이 먼저
밥이나 먹고 보자며 자장면 집으로 몰려가자
그걸 지켜보던 밥집 주인 젊은 대머리가
저런, 저런, 쌀값 아직 한참은 더 떨어져야 돼
쌀 농사 지키자고 데모하는 작자들이
밥은 안 먹고 뭐! 수입 밀가루를 처먹어?
에라 이 화상들아
똥폼이나 잡지 말든지

나는 그 말 듣고 내 마음 일주문을 부숴 버렸다 *

* 정끝별의 밥시이야기[밥]-마음의숲

 

* 매생이 - 정일근 
다시 장가든다면 목포와 해남 사이쯤
매생이국 끓일 줄 아는 어머니를 둔
매생이처럼 달고 향기로운 여자와 살고 싶다
뻘바다에서 매생이 따는 한겨울이 오면
장모의 백년손님으로 당당하게 찾아가
아침저녁 밥상에 오르는 매생이국을 먹으며
눈 나리는 겨울밤 뜨끈뜨끈하게 보내고 싶다
파래 위에 김 잡히고 김 위에 매생이 잡히니
매생이를 먹고 자란 나의 아내는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여자일거니, 우리는
명주실이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해로할 것이다
남쪽에서 매생이국을 먹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운 표정 속에 감추어진 뜨거운 진실과
그 진실 훌훌 소리내어 마시다 보면
영혼과 육체가 함께 뜨거워지는 것을
아, 나의 아내도 그러할 것이다
뜨거워지면 엉켜 떨어지지 않는 매생이처럼
우리는 한몸이 되어 사랑할 것이다 *

 

* 비빔밥 - 이대흠 
비빔밥엔 잡다한 것이 들어가야 한다 싱건지나 묵은 김치도 좋고 숙주노물이나 콩노물도 좋다 나물이나 남새 노무새도 좋고 실가리나 씨래기 시락국 건덕지도 좋다 먹다 남은 찌개 찌끄래기나 달걀을 넣어도 좋지만 빼먹지 않아야 할 것은 고추장이다 더러 막걸리를 넣거나 된장국을 홍창하게 넣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취향일 뿐 그렇다고 국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엔 가지가지 반찬에 참기름과 고추장이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비빈 밥이 비빔밥이 되기 위해서는 풋것이 필요하다 손으로 버성버성 자른 배추잎이나 무잎 혹은 상추잎이 들어가야 비빔밥답게 된다 다 된 반찬이 아니라 밥과 어우러지며 익어갈 것들이 있어야 한다 묵은 것 새것 눅은 것 언 것 삭은 것 그렇게 오랜 세월이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재료만 늘어놓는다고 비빔밥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비빔밥을 만들기 위해서는 요령이 필요하다 비빈다는 말은 으깬다는 것이 아니다 비빌 때에는 누르거나 짓이겨서는 안된다 밥알의 형태가 으스러지지 않도록 살살 들어주듯이 달래야 한다 어느 하나 다치지 않게 슬슬 들어올려 떠받들어야 한다

손과 손을 맞대고 비비듯 입술과 입술을 대고 속삭이듯 그렇게
몸을 맞대고 서로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우려 이미 분리할 수 없게 그렇게
그렇게 나는 너를 배고
너는 내게 밴 상태라야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는 사람아 비빔밥을 먹을래?
내가 너에게 들고 싶다 *

* 이대흠시집[귀가 서럽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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