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승달 - 박성우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 잊어 야윈 등만 자꾸 움츠리나
욱신거려 견딜 수 없었겠지 오므렸던 그리움의 꼬리 퉁기면 어둠 속으로 튀어 나가는 물별들
더러는 베개에 떨어져 젖네 *
* 내 마음의 손 - 권영상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은 누가 잡아주나?
그때를 위해 내 안에 손을 넣어주신 분이 있다
어머니
나는 그 손으로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는다
아무도 날 위로해주지 않을 때
그 손으로
내 아픈 마음을 쓰다듬는다 *
* 꽃 잎 - 한귀복
잎이 다칠까 봐 위에서 피는 꽃
꽃이 다칠까 봐 아래에 놓인 잎
그래서 예쁜 꽃잎이구나 *
* 봄 편지 -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섰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
* 독탕 - 박남준
언 개울물 풀려 흐르자
앞산과 뒷산 우르르 겨우내 묵은 때를 씻겠다고
달려와 얼굴 비춰보려는데
어랏 혼자 다 차지하고 아예 몸을 담그고 있는
저 젓ㅡ 쬐끄만 녀석
퐁당 톡 도토리 한 알 *
* 그래도 하늘은 있다 - 이상문
산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그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산 위에 그려져 있다
바다 찍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찍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바다 위에 찍혀 있다. *
* 꼬부랑 할머니가 - 신경림
꼬부랑 할머니가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일곱 밤을 자고서
일곱 손주 만나러
한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길 잃고 밤새 헤맨
아기노루 먹으라고
두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먹이 없이 내려온
다람쥐 먹으라고
세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알 품고 봄 기다리는
엄마 꿩 먹으라고
네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동무 없어 심심한
산토끼 먹으라고
다섯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눈속에서 병든 오소리 먹으라고
여섯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외로워 짝 찾는
산비둘기 먹으라고
일곱 고개 넘어서니
일곱 손주 기다리는데
두부는 안 남고
한 모밖에 안 남고
* 홍시 - 정지용
어적게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웨 앉었나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딱
훠이 훠이! *
* 홍시 - 김종영
쪽쪽 햇살을 빨아먹고
쪽쪽 노을을 빨아먹고
통통
말랑말랑
익은 홍시
톡 건드리면
좌르르 햇살이 쏟아질 것 같아
톡 건드리면
쭈르르 노을이 흘러내릴 것 같아
색동옷 입은 아기바람도
입만 맞추고 가고
장난꾸러기 참새들도
침만 삼키고 간다 *
* 밤 -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방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생애의 껍질을 까고있다 *
* 부엉이 - 박목월
부엉이가 안경가게를 찾아 왔습니다
ㅡ아저씨, 낮에도 보이는 안경 하나 맞춰 주세요
부수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ㅡ글쎄, 그런 안경이 있을지 모른다
어디, 이걸 한번 써 봐
안경집 아저씨가 새카만 선글라스를 부엉이에게 주었습니다
ㅡ어라, 참 잘 보이네요. 아저씨 고마워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부엉이는 뒷짐을 진 채 배를 쑥 내밀며
어슬렁어슬렁 돌아갔습니다 *
* 이상하다 - 최종득
외할머니가 고사리와 두릅을
엄마한테 슬며시 건넵니다
"가서 나물 해 먹어라.
조금이라서 미안타."
"만날 다리 아프다면서
산에는 뭐하러 가요.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요."
늘 주면서도
외할머니는 미안해하고
늘 받으면서도
엄마는 큰소리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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