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동시 모음 3

효림♡ 2011. 4. 15. 08:32

* 초승달 - 박성우

어둠 돌돌 말아 청한 저 새우잠
누굴 못 잊어 야윈 등만 자꾸 움츠리나
욱신거려 견딜 수 없었겠지 오므렸던 그리움의 꼬리 퉁기면 어둠 속으로 튀어 나가는 물별들 
더러는 베개에 떨어져 젖네 * 

 

* 내 마음의 손 - 권영상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은 누가 잡아주나?

그때를 위해 내 안에 손을 넣어주신 분이 있다

어머니

나는 그 손으로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는다

아무도 날 위로해주지 않을 때

그 손으로

내 아픈 마음을 쓰다듬는다 *

 

* 꽃 잎 - 한귀복

잎이 다칠까 봐 위에서 피는 꽃 

꽃이 다칠까 봐 아래에 놓인 잎 

그래서 예쁜 꽃잎이구나 *

 

* 봄 편지 -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섰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편지 *

 

* 독탕 - 박남준

언 개울물 풀려 흐르자 

앞산과 뒷산 우르르 겨우내 묵은 때를 씻겠다고 

달려와 얼굴 비춰보려는데 

어랏 혼자 다 차지하고 아예 몸을 담그고 있는 

저 젓ㅡ 쬐끄만 녀석

퐁당 톡 도토리 한 알 *

 

* 그래도 하늘은 있다 - 이상문

산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그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산 위에 그려져 있다

 

바다 찍는 사람은 있어도

하늘 찍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하늘은 바다 위에 찍혀 있다. *

 

* 꼬부랑 할머니가 - 신경림  
꼬부랑 할머니가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일곱 밤을 자고서
일곱 손주 만나러
한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길 잃고 밤새 헤맨
아기노루 먹으라고
두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먹이 없이 내려온
다람쥐 먹으라고
세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알 품고 봄 기다리는
엄마 꿩 먹으라고
네 고개 넘어섰다
또 한 모 놓고
동무 없어 심심한

산토끼 먹으라고

다섯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눈속에서 병든 오소리 먹으라고  

여섯 고개 넘어섰다

두부 한 모 놓고

외로워 짝 찾는

산비둘기 먹으라고 
일곱 고개 넘어서니
일곱 손주 기다리는데
두부는 안 남고

한 모밖에 안 남고 

 

* 홍시 - 정지용

어적게도 홍시 하나

오늘에도 홍시 하나

 

까마귀야. 까마귀야

우리 남게 웨 앉었나

 

우리 옵바 오시걸랑

맛뵐라구 남겨 뒀다

 

후락 딱딱

훠이 훠이! *

 

* 홍시 - 김종영

쪽쪽 햇살을 빨아먹고

쪽쪽 노을을 빨아먹고

 

통통

말랑말랑

익은 홍시 

 

톡 건드리면

좌르르 햇살이 쏟아질 것 같아 

톡 건드리면

쭈르르 노을이 흘러내릴 것 같아 

 

색동옷 입은 아기바람도

입만 맞추고 가고 

장난꾸러기 참새들도

침만 삼키고 간다 *

 

* 밤 - 오탁번  

할아버지 산소 가는 길

밤나무 밑에는

알밤도 송이밤도

소도록이 떨어져 있다

 

밤송이를 까면

밤 하나하나에도

다 앉음앉음이 있어

쭉정밤 회오리밤 쌍동방

생애의 모습 저마다 또렷하다

 

한가위 보름달을

손전등 삼아

하느님도

내생애의 껍질을 까고있다 *

 

* 부엉이 - 박목월

부엉이가 안경가게를 찾아 왔습니다 
ㅡ아저씨, 낮에도 보이는 안경 하나 맞춰 주세요
부수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ㅡ글쎄, 그런 안경이 있을지 모른다 
어디, 이걸 한번 써 봐 
안경집 아저씨가 새카만 선글라스를 부엉이에게 주었습니다
ㅡ어라, 참 잘 보이네요. 아저씨 고마워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부엉이는 뒷짐을 진 채 배를 쑥 내밀며
어슬렁어슬렁 돌아갔습니다 *

 

* 이상하다 - 최종득 

외할머니가 고사리와 두릅을

엄마한테 슬며시 건넵니다

 

"가서 나물 해 먹어라.

조금이라서 미안타."

 

"만날 다리 아프다면서

산에는 뭐하러 가요.

내가 엄마 때문에 못살아요."

 

늘 주면서도

외할머니는 미안해하고

늘 받으면서도

엄마는 큰소리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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