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엉겅퀴꽃 - 민영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 사는 엉겅퀴야
갈퀴손에 호미잡고
머리 위에 수건 쓰고
콩밭머리 주저앉아
부르느니 님의 이름
엉겅퀴야 엉겅퀴야
한탄강변 엉겅퀴야
나를 두고 어디 갔소
쑥국소리 목이 메네 *
* 김용택[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
* 용인(龍仁) 지나는 길에
저 산벚꽃 핀 등성이에
지친 몸을 쉴까.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고개 젓는다.
도피안사(到彼岸寺)에 무리지던
연분홍빛 꽃너울.
먹어도 허기지던
삼춘(三春) 한나절.
밸에 역겨운
가구가락(可口可樂) 물 냄새.
구국 구국 울어대는
멧비둘기 소리.
산벚꽃 진 등성이에
뼈를 묻을까.
소태같이 쓴 입술에
풀잎 씹힌다. *
* 노래 하나
늙은 아내가
꽃 팔러 나간 다음
뜰에 노는 병아리에게
모이를 준다.
텃밭의 아옥아
빨리 빨리 자라거라
학교 간 어린것들
배고파 돌아온다
* 수유리 하나
한 늙은이의
더러운 욕망이
저토록 많은 꽃봉오리를
짓밟은 줄은 몰랐다. *
* 귀뚜라미 울음 -수유리에서
저 이름 없는
풀포기 아래
돌멩이 밑에
잠 못 이루며
흐느끼는
귀뚜라미 울음
* 달을 보며
밤하늘의 달을 보며
아, 달이 밝구나!
읊조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내 생애의 바람 세었던 날들이
저 달 속에
검푸른 산맥처럼 누워 있고
지금도 살아 있는 기파랑의 달이
잣나무 가지 위에 걸려 있다
강물같이 쏟아지는 달빛으로
온몸을 적시면서
이제껏 남은 回歸의 날을 기다린다
아, 정말
달이 맑고도 시원하구나!
* 겨울밤
겨울이 왔네
외등도 없는 골목길을
찹쌀떡 장수가
길게 자나가네
눈이 내리네 *
*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늘 약골이라 놀림 받았다.
큰 아이한테는 떼밀려 쓰러지고
힘센 아이한테는 얻어맞았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아버지 담배를 가져오라 시키고,
어떤 아이는 나에게
엄마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그럴 때마다 약골인 나는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갖다 주었다.
떼밀리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
얻어맞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떼밀리고 얻어맞으며 지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약골들을 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더이상 비굴할 수 없다.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
어깨를 겨누고 힘을 모으자.
처음에 친구들이 주춤거렷다.
비실대며 꽁무니빼는 아이도 있었다
일곱이 가고 셋이 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약골이다.
떼밀리고 얻어맞는 약골들이다.
그러나, 약골도 뭉치면 힘이 커진다.
가랑잎도 모이면 산이 된다.
한 마리의 개미는 짓밟히지만,
열 마리가 모이면 지렁이도 움직이고
십만 마리가 덤벼들면 쥐도 잡는다.
백만 마리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코끼리도 그 앞에서는 뼈만 남는다.
떼밀리면 다시 일어나자!
맞더라도 울지 말자!
약골의 송곳같은 가시를 보여주자!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우리 나라도 약골이라 불렀다.
왜놈들은 우리 겨레를 채찍질하고
나라 없는 노예라고 업신여겼다. *
* 무릉 가는 길 1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해야 한다.
가까운 길이 있고 먼뎃길이 있다.
어디로 가든 처마끝에
등불 달린 주막은 하나지만
가는 사람에 따라서 길은
다른 경관을 보여준다.
보아라 길손이여,
길은 고달프고 골짜기보다 험하다.
눈덮인 산정에는 안개속에 벼랑이
어둠이 깔린 숲에서는
성깔 거친 짐승들이 울고 있다.
길은 어느 곳이나 위험 천만
길 잃은 그대여 어디로 가려 하느냐?
그럼에도 나는 권한다.
두다리에 힘 주고 걸어가라고
두눈 똑바로 뜨고 찾아가라고
길은 두려움 모르는자를 두려워한다고
가다보면 새로운 길이 열릴거라고.
......한데, 어디에 있지?
지도에도 없는 꽃밭
무릉(武陵). *
*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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