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씨를 말리고 - 古山 書室에서 - 장석남
붓을 잡아보고 '一字'를 배우고
붓끝을 세워서 잠두(蠶頭)를 마치고
또 수로(垂露)*를 마치고 창으로 들어온 뉘엿한 햇빛에
떨리고 서툰 획들을 말린 일이 있습지요
내 손에서 쏟아져나온 것인지
어깨에서 쏟아져나온 것인지
하여튼 붓으로 먹을 찍어 종이를 적셔나가다 보니 글쎄 어느 틈엔
몸에선지 맘에선지 글자들이 빠져나간다는 생각이 들었습죠
고산(古山)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그 획들을 말리는 사이에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콩이 여물고 겨울이
완당(阮堂)과도 같이 칼칼한 획들을 사위에 두르면
툇마루께에서 글자와 햇빛과 바람과 더불어 나는
뼈를 말리고 있을 테니
글씨를 말려보는 일은
젖은 마음을 미리 내어 말려보는
참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습죠
아주아주 떨리는 일이었습죠 *
* 서예에서 가로, 세로 획의 마무리
* 장석남시집[뺨에 서쪽을 빛내다]-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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