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순천만에서 - 곽효환

효림♡ 2011. 6. 14. 09:05

* 비밀 - 조창환

나무들이 흐린 숨소리를

울리고

호수가 깊은 곳에서 가만히

떤다

 

쌉싸름한

아침

숨겨 둔 초상화 같은 *

 

* 초겨울 단상 - 한영옥 
동숭동 오래된 찻집, 창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커피 마며 사람 기다리며 오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니 차츰 따뜻해 진다
차갑다는 요새 사람들 움직일 때마다 모락모락
따뜻한 입김 피어 창턱까지 올라와 괴는 것이다
오래도록 식지 않는 커피잔을 꼭 싸안아 준다
알밤 웃음 툭 터트리며 기다리던 사람 들어선다 *

 

* 썰물 - 김완하

물 나가서야

섬도 하나의 큰 바위임을 안다

 

바다 깊이 떠받치고 있는

돌의 힘

 

인간 세상

발아래 까마득한 벼랑을 본다 *

 

* 숲 - 맹문재 
흔들릴 때마다 마을이 가렸다 보인다
산등성이 닫혔다 열린다
손짓이랄 수도 춤이랄 수도 있는 몸짓
있던 자리는 여백이지만 있는 자리는 마냥 푸르다
뿌리마저 흔들려 엉성한 까치집도 기왓장처럼 단단하다
바위를 흔드는 바람에도 부풀어오르지 않고
낙엽 번지는 소리 조용히 품는다 *

 

* 리필 - 이상국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 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 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해수관음에게 - 홍사성

당신 보면 하고 싶은 말 오직 한마디

 

오래도록 안고 싶다

찬 돌에 온기 돌 때까지 *

 

* 폭풍지나고 - 김정인

젖은 땅에//

오체투지의 감나무 잎새 하나//

싸리비에도 쓸리지 않는다//

저 고요가//

햇살 키우며//

꺾인 어깨 기어코 일으켜 세운다 *

 

* 물방울 무덤들 - 엄원태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 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지만 너는
저 가지 끝끝마다 매달려
하염없이 글썽거리고 있다

언제까지고 글썽일 수 밖에 없구나, 너는, 하면서
물방울에 가까이 다가가보면
저 안에 이미 알알이
수많은 내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


* 새들의 날개에는 그리움이 묻어난다 - 문현미

깊고 푸른 비상을 하네//

걸림 없는 날개의

서늘하게 느린 포물선을 따라//

끝없이 먼 데로 흐르는 눈빛 그리메//

길이 열리는 하늘 능선 너머

눈물같이 가난한 몸짓의 새떼들//

청정한 고요 속에

얇게 빛나는 곡선으로 겨울을 건너네 *

 

* 순천만에서 - 곽효환 
여름의 끝을 적는 비를 긋고
저어새 한 마리 하늘로 날다
바람따라 출렁이는 갈대는
그 끝을 알 수 없다
와온포구는 마주선 화포*의 일몰이 그립다
샛강을 맞은 염습지(鹽濕地)는
밑둥을 붉게 혹은 검게 내보이고
축축이 젖은 여름,
갈꽃은 쨍하는 볕이 그립다
갈대는 젖은 여름을 벗어 말리고 있다 *

* 순천만에 연해 있는 와온마을 대대포구의 동쪽에 와온 포구가, 서쪽에 화포가 위치해 있다.

 

* 신달자시인[시가 있는 아침]-눈송이와 부딪쳐도 그대 상처 입으리 -문학의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