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7월 시 모음

효림♡ 2011. 7. 1. 08:40

* 청포도 - 이육사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 7월의 편지 - 박두진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

7월의 태양에서는 장미꽃 냄새가 난다

 

그 태양을 쟁반만큼 씩

목에다 따다가 걸고 싶다

그 수레에 초원을 달리며

심장을 싱싱히 그슬리고 싶다

 

그리고 바람

바다가 밀며 오는

소금 냄새의 깃발, 콩밭 냄새의 깃발

아스팔트 냄새의, 그 잉크빛 냄새의

바람에 펄럭이는 절규......

 

7월의 바다의 저 출렁거리는 파면(波面)

새파랗고 싱그러운

아침의 해안선의

조국의 포옹

 

7월의 바다에서는

내일의 소년들의 축제 소리가 온다

내일의 소녀들의 꽃비둘기 날리는 소리가 온다 

 

* 7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 김종해 
흙은 원고지가 아니다. 한 자 한 자 촘촘히 심은 내 텃밭의 열무씨와 알타무씨들
원고지의 언어들은 자라지 않지만 내 텃밭의 열무와 알타리무는 이레만에 싹을 낸다
간밤의 원고지 위에 쌓인 건방진 고뇌가 얼마나 헛되고 헛된 것인가를
텃밭에서 호미를 쥐어보면 안다
땀을 흘려보면 안다 물기 있는 흙은 정직하다
그 얼굴 하나 하나마다 햇살을 담고 사랑을 틔운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내 텃밭에 와서 일일이 이름을 불러낸다

칠월, 아침밥상에 열무김치가 올랐다
텃밭에서 내가 가꾼 나의 언어들
하늘이여, 땅이여, 정말 고맙다 

 

* 칠월 -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

 

* 칠월 - 나호열

청포도 같은 싱그러움으로 익어 가야 할, 물들어 가야 할

 

입 안에 붉은 앵두 몇 알 터질 듯
오물거리는 그 말

 

사분음표로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같은
그 말

 

마악 알에서 깨어난 휘파람새가
처음 배운 그 말

 

하늘을 푸른 출렁거림으로 물들이는 그 말 *

* 7월의 고백 - 김경주 
여린 태를 벗은 초목들의 뿌리는 힘차게 물을 빨아들이고
햇빛에 반짝이는 잎들은 왕성한 화학작용을 하며
대기는 신선한 공기들로 가득 찹니다
그 나무의 꽃과 열매와 잎을 먹으며
애벌레와 곤충과 새들이 자라고 번성할 때
대지는 소란하고 풍성해집니다

주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풀 한 포기에서 우주 끝까지
탄생부터 그 소멸에 이르기까지
계획되지 않은 것
아름답지 않은 것
완벽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속에 앉아
주님 계획대로 아름답게, 완벽하게 지어진
나를 어루만지며 가만히 속삭입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나를 사랑합니다
나를 이루는 너를 사랑합니다
그 안에 온통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 7월 - 오세영  
바다는 무녀(巫女)
휘말리는 치마폭

바다는 광녀(狂女)
산발(散髮)한 머리칼

바다는 처녀(處女)
푸르른 이마

바다는 희녀(戱女)
꿈꾸는 눈

7월이 오면 바다로 가고 싶어라
바다에 가서
미친 여인의 설레는 가슴에
안기고 싶어라

바다는 짐승
눈에 비친 푸른 그림자 

 

* 사랑은 큰일이 아닐 겁니다 - 박철 
사랑은 큰일이 아닐 겁니다
사랑은 작은 일입니다
7월의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바람을 불어 주는 일
자동차 클랙슨 소리에 잠을 깬 이에게
맑은 물 한 잔 건네는 일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손등을 한번 만져 보는 일

여름이 되어도 우리는
지난,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은 일에 가슴 조여 기뻐했듯이
작은 사랑을 나눕니다
큰 사랑은 모릅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라는
지구에서 큰 사랑은
필요치 않습니다
해 지는 저녁 들판을 걸으며
어깨에 어깨를 걸어보면


그게 저 바다에 흘러넘치는

수평선이 됩니다
7월의 이 여름날
우리들의 사랑은
그렇게 작고, 끝없는

잊혀지지 않는 힘입니다 * 

 

* 흑백사진 -7월 - 정일근 
내 유년의 7월에는 냇가 잘 자란 미루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고 또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 없이 흘러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착한 노래들도 물고기들과 함께

큰 강으로 헤엄쳐 가버리면 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 미루나무 손들을 흔들어 차르르차르르 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 잎이 돋고 물 아래까지 헤엄쳐가 누워 바라보는 하늘 위로 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 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 귀에 들어간 물을 뽑으려 햇살에데워진 둥근 돌을 골라 귀를 가져다 대면 허기보다 먼저 온몸으로 퍼져오던 따뜻한 오수,

점점무거워져 오는 눈꺼풀 위로 멀리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박

잠이 들었다.

 

* 7월의 아이들 - 헤르만 헤세

우리들,7월에 태어난 아이들은

하얀 재스민의 향기를 좋아해

나즉히, 은밀한 꿈에 잠겨

꽃 피어나는 정원을 걷는다

 

우리들의 친구는 진홍 양귀비

보리밭에서, 뜨거운 둑길 위에서

양귀비꽃들은 하염없이 바람에

꽃잎을 날린다

 

7월 밤처럼 우리들의 생애는

꿈과 함께 그 윤무를 완성하리라

꿈과 함께 흥겨운 수확제에

열중하리라 보리 이삭과

진홍 양귀비의 꽃다발을 들고서 *

 

* 7월은 치자꽃 향기 속에 - 이해인  
7월은 나에게
치자꽃 향기를 들고 옵니다

하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고요히

노란빛으로 떨어지는 꽃

꽃은 지면서도

울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무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것일 테지요?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꽃을 만나듯이 대할 수 있다면
그가 지닌 향기를
처음 발견한 날의 기쁨을
되새기며

설렐 수 있다면
어쩌면 마지막으로
그 향기를

맡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조금 더 사랑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의 꽃밭이 될 테지요?
7월의 편지 대신
하얀 치자꽃 한 송이

당신께 보내는 오늘
내 마음의 향기도 받으시고
조그만 사랑을 많이 만들어
향기로운 나날 이루십시오 *

* 이해인시집[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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