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새(鳥) 시 모음

효림♡ 2011. 6. 21. 08:10

* 새 - 박남수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體溫)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假飾)하지 않는다.
3

ㅡ포수는 한 덩이 납으로
그 순수(純粹)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

 

* 새 - 이성복 
잠든 잎새들을 가만히 흔들어봅니다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깨어난 잎새들은 다 잠들고 싶어합니다 나도 잎새들을 따라 잠들고 싶습니다 잎새들의 잠 속에서 지친 당신의 날개를 가려주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뜨면 깃을 치며 날아가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겠지요 처음 당신이 나의 마음을 흔들었던 날처럼 잎새들은 몹시 떨리겠지요 *

 

* 한 마리 새가 - 이수익 
공중을 높이 날기 위해서는
바람 속에 부대끼며 뿌려야 할
수많은 열량들이 그 가슴에
늘 충전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보라, 나뭇가지 위에 앉은 새들은
노래로서 그들의 평화를 구가하지만
그 조그만 몸의 내부의 장기들은
모터처럼 계속 움직이면서
순간의 비상이륙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오, 하얀 달걀처럼 따스한 네 몸이 품어야 하는
깃털 속의 슬픈 두근거림이여. *

 

* 새의 사랑 - 도종환

나뭇가지 위에 지은 제 둥지에 앉아
처연히 비를 맞고 있는 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새끼들이 비에 젖을세라 두 날개로 꼭 품어안고
저는 쏟아지는 비를 다 맞고 있었습니다 
새들도 저렇게 새끼를 키우는구나 생각하니
숙연해졌습니다 그러나 그걸로 어미새의 사랑을
다 안다고 생각한 건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법을 가르쳐야 할 때가 오자
한 발 이상 떨어진 옆 나무에 벌레를 물고 앉아
새끼들이 제 힘으로 날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란빛 다 가시지 않은 부리를 있는 대로 벌리며
울어대도 스스로 날아올 때까지
어미는 숲 어딘가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덜 자란 날개를 파닥이다
파닥이며 떨어지다 한 마리가 날아 올라오자
한없이 기쁜 표정으로 먹이를 얼른
새끼 입에 넣어주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그걸로 새끼를 기르는 어미새의 사랑을
다 안다고 생각한 건 잘못이었습니다

새끼들이 스스로 먹이를 구할 만큼 자라고
숲 그늘도 깊어가자 어미새는 지금까지 보여준
숲과 하늘보다 더 먼 곳으로 새끼들을
멀리멀리 떠나보내는 거였습니다
어미 주위를 맴돌며 머뭇거리는 새들에게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정을 접는 표정을 보이는 거였습니다
사람이나 새나 새끼들을 곁에 두고 사랑하고픈 건
본능일 텐데 등을 밀어 보내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눈물도 보이지 않고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

* 도종환시집[슬픔의 뿌리]-실천문학사

 

* 새 - 문태준

새는 날아오네

산수유 열매 붉은 둘레에

 

새는 오늘도 날아와 앉네

덩그러니

붉은 밥 한 그릇만 있는 추운 식탁에

 

고두밥을 먹느냐

 

목을 자주 뒤로 젖히는 새는 *

 

* 수묵 산수 - 김선태 

저물 무렵

가창 오리떼 수십만 마리가
겨울 영암호 수면을 박차고
새까만 점들로 날아올라선
한바탕 군무를 즐기시는가
싶더니

가만,
저희들끼리 일심동체가 되어
거대한 몸 붓이 되어
저무는 하늘을 화폭 삼아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 아닌가
정중동의 느린 필치로 한 점
수묵산수를 치는 것 아닌가

제대로 구도를 잡으려는지

그렸다 지우기를 오래 반복하다
일군(一郡)의 세필(細筆)로 음영까지를 더하자
듬직하고 잘 생긴 산 하나
이윽고 완성되는가
했더니

아서라, 화룡점정(畵龍點睛)!
기다렸다는 듯 보름달이
능선 위로 떠올라
환하게 낙관을 찍는 것 아닌가.

보시게나,
가창오리떼의 군무가 이룩한
자연산 걸작
고즈넉한 남도의 수묵 산수 한 점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 한 마리 멧새 - 문태준

소복하게 내린 첫눈 위에
찍어 놓은
한 마리 멧새 발자국
첫잎 같다
발자국이 흔들린 것 보니
그 자리서 깔깔 웃다 가셨다
뒤란이 궁금해 그곳까지 다녀가셨다

 

가늘은 발뒤꿈치를 들어 찍은
그 발자국을 그러모아
두 귀에 부었다
맑은 수액 같다
귀에 넣고
이리저리 흔들어 대니
졸졸 우신다
좁쌀 같은 소리들
귀가 시원하다
발자국을 따라가니
내 발이 아직 따뜻하다

 

멧새 한 마리
시골집 울에 내려와
가늘은 발목을 얹어 앉아
붉은 맨발로
마른 목욕을 즐기신다
간밤에 다녀간 그분 같은데
밤새 시골집을 다 돌아보고선
능청을 떨고
빈 마루를 들여다보고 계신다 *

* 문태준시집[가재미]-문학과지성사

 

* 새는 - 이향미  
낡고 어두운 그림자를 제 발목에 묶고 생의 안쪽으로 타박타박 걸어들었을 테지 비에 젖은

발목을 끌며 어린 날개를 무겁게 무겁게 퍼덕였을 테지, 가느다란 목덜미를 돌아 흐르는 제 절박한 울음소리를 자꾸자꾸 밀어냈을 테지 여물지 못한 발톱을 내려다보며 새는, 저 혼자 그만 부끄러웠을 테지, 그러다 또 울먹울먹도 했을 테지

어둠이 깊었으므로 이제,
어린 새의 이야기를 해도 좋으리

나지막이 울음 잦아들던 어깨와 눈치껏 떨어내던 오래된 흉터들을 이제, 이야기해도 좋으리 잊혀가는 전설을 들려주듯,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낯설고 차가운 이국의 신화를 들려주듯 이제, 당신에게 어린 새를 이야기해도 좋으리

새는,
따스운 생의 아랫목에
제 그림자를 누이고
푸득푸득, 혼잣말을 했을 테지
흥건하게 번지는 어둠을
쓰윽, 닦아내기도 했을 테지

새는.

* 2008년[수주문학상]대상

 

* 새 - 남진우

새는 그 내부가

투명한 빛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물거품처럼 부서짐으로써 스스로의

나타남을 증거하는

새는

한없이 깊고

고요한,

지저귐이 샘솟는 연못과 같다 *

* 박새의 장례식 - 김우진 
벚나무 가지에 하얀점박이 새울음이 걸려 있다 요란한 울음에 꽃들이 화르르 무너진다 안절부절, 이 나무 저 나무를 콩콩 뛰어날며 마음을 땅에 내려놓지 못하는 저 박새, 품고 살아온 내 안의 통한 같은 긴 소리, 바람이 눈물을 지우려고 따라 다닌다

벚나무 뒷담, 끈끈이 쥐약통에 붙은 수컷, 눈을 뜨고 죽었다 나동그라진 비명이 서늘히 식었다 허공을 박차던 힘찬 날개는 고요히

접혔다 곁을 맴도는 암컷, 마음이 다급하다 사흘을 굶은 저 곡소리, 벚나무가지가 철렁 내려앉는다

봄꽃들도 문상을 한다 나뭇가지에 걸린 바람이 새울음을 쓰다듬는다 조문객으로 끼어 든 봄비의 눈시울이 촉촉하다

해 질녘 꽃비 내리는 벚나무 아래 새를 묻는다 찌찌찌, 마지막 울음도 함께 묻힌다 그제서야 마음을 내려놓고 포르르 빗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꽃잎이 새의 무덤을 덮는다

 

* 새떼 - 문인수

 저녁노을 속으로 깡통 소리 날아간다.

 

 깡깡깡깡깡 깡통을 두들기며 논두렁논두렁 휘어지게 달리며 논물에 빠지며 깡깡깡깡깡 깡통을 두들기며 후우여 후여 쫓으면 새떼는 여러 번 날아 오른다 한 삽 퍼 던진 자갈돌들처럼 한꺼번에 새까맣게 요란하게 날아오른다 휘영청 헌 보자기 내려 덮이듯 논빼미 저쪽 끄트머리로 다시 가 내려 앉는다 쥑이뿔고 싶도록 얄밉게 또 내려 앉는다 깡깡깡깡깡 깡통을 두들기며 논두렁논두렁 휘어지게 달리며 땡볕에 악 받히며 종아리 긁히며 깡깡깡깡깡 깡통을 두들기며 후우여 후여 쫓으면 지친다 어느덧 거물거물 해 늘어지고 마지막으로 두어 바퀴 휘이 나락논을 돌아 서천 붉은 구름 속으로 팍팍팍팍팍 꽂히는 새떼 자욱하게 스민

 

 노을의 측백나무 울타리 속으로 씻은 듯이
 나도 집에 돌아가곤 했다.
 

* 문인수시집[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문학의전당

 

* 새소리 - 정현종

저 꾀꼬리 소리 좀 봐

넘쳐흐르는 말씀을ㅡ

여기다 집을 지어라

여기다 집을 지어라.  

또 저기 뻐꾸기 소리ㅡ

여기다 집을 지어라

여기다 집을 지어라.  

어떤 멧새도 그렇게 노래한다

여기다 집을 지어라.....

 

그렇게 그 소리의 무한은

열리고 또 열리어

보인다 바람과 그늘과 초록의

우주,

흙과 벌레

천둥 번개의 우주가......

 

봄이면 나는 내내

저 새소리의 집에서 산다.

한없이 넓고 둥글고

그리고 편안하다. *

* 정현종시집[세상의나무들]-문지

 

* 古詩 - 丁若鏞 

燕子初來時 - 연자초래시   喃喃語不休 - 남남어불휴

語意雖未明 - 어의수미명   似訴無家愁 - 사소무가수
楡槐老多穴 - 유괴로다혈   何不此淹留 - 하불차엄류
燕子復喃喃 - 연자부남남   似與人語酬 - 사여인어수
楡穴款來啄 - 유혈관래탁   槐穴蛇來搜 - 괴혈사래수

-제비 한 마리 처음 날아와 지지배배 그 소리 그치지 않네.  
말하는 뜻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집 없는 서러움을 호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묵어 구멍 많은데 어찌하여 그 곳에 깃들지 않니?" 
제비 다시 지저귀며 사람에게 말하는 듯 
"느릅나무 구멍은 황새가 쪼고 홰나무 구멍은 뱀이 와서 뒤진다오." *

 

* 黃鳥歌 - 유리왕 

翩翩黃鳥 - 편편황조 雌雄相依 - 자웅상의

念我之獨 - 염아지독 誰其與歸 - 수기여귀  

-훨훨 나는 꾀꼬리는 암수 다정히 노니는데

외로울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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