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새(鳥) 시 모음 2

효림♡ 2011. 6. 21. 08:13

* 쑥국새 - 도종환

빗속에서 쑥국새가 운다
한 개의 별이 되어
창 밖을 서성이던
당신의 모습도
오늘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밤이면
당신의 영혼은
또 어디서 비를 맞고 있는가.

 

* 새 한 마리 - 도종환

아주 먼 곳이지만

언제부턴가 제가 바라보는 산 아래에

새 한 마리가 와 앉아 있습니다.


제가 바쁘게 쫓겨다니다 돌아와 보면

그 새는 언제나 흰 빛의 점으로 고여 있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며

많이도 가슴 아파하고

비가 몇 주일을 두고 내리던 그 해 가을

저는 제 곁에 유심히 가까이 와서 날던

그 새를 만났습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다 그치고

송홧가루가 추녀 밑에 노랗게 고이는 날

저는 또 그 새를 만납니다.


잊고 지내는 것은 언제나 제 편이지만

그 새는 제가 마음 가라앉아 돌아오는 날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와 앉아 있습니다. *

* 도종환시집[내가 사랑하는 당신은]-실천문학사

 

* 호랑지빠귀 - 도종환

기교를 버리면 새소리도 빗줄기를 수평으로 가른다

깊은 밤 무덤가 또는 잔비 내리는

새벽숲 초입에서 우는 호랑지빠귀

사방이 단순해지고 단순해져

오온이 모두 한곳으로 모이는 때

새는 노래도 버리고 울음도 버려 더욱 청아해진다

한숨에 날을 세워 길게 던지는 소리인 듯도 하고

몸의 것들을 다 버린 소리의 영혼인 것도 같은

호랑지빠귀 소리는

단순해지면 얼마나 서늘해질 수 있는지 알려준다

금관악기 소리보다 흙피리 소리가 왜

하늘과 땅의 소리를 더 잘 담아내는지 가르쳐준다

깊은 밤 어둠을 가르고 미명의 비안개를 자르고

그 속에서 둘이 아니고 하나인

정과 동을 거느리는 소리

기교를 버려 단순해진 소리가 왜

가장 맑은 소리인지 들려주는

호랑지빠귀 소리 *

* 도종환시집[해인으로 가는 길]-문학동네

 

* 소쩍새 - 장만영 
소쩍새들이 운다.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뒷산에서도
앞산에서도
소쩍새들이 울고 있다.

소쩍새가
저렇게 많이 나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일러주시는 그 사이에도
소쩍소쩍 솥이 작다고
소쩍새들은 목이 닳도록 울어 댄다.

밤이 깊도록 울어 댄다.

아아, 마을은
소쩍새 투성이다. * 

 

* 딱새 - 함민복 

남의 빈집에 사는 나처럼

처마 밑

빈 제비집에 둥지를 튼 딱새

지붕에 앉고

대문에 앉고

빨랫줄에 앉고

벌레 고쳐 물며

두리번두리번

그러다 다시 숨고

새끼들 철없이 노른 입 벌리고

가슴이 붉은 수놈보다

더 조심 떠는 암놈

안쓰러워 집 나서며

사람들 마실 못 오게

대문 닫다

당신 생각

 

* 새 - 이해인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부지런한 새들
가끔은 편지 대신
이슬 묻은 깃털 한 개
나의 창가에 두고 가는 새들
단순함, 투명함, 간결함으로
나의 삶을 떠받쳐준
고마운 새들
새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나는 늘 남아서
다시 사랑을 시작하고.....*


*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 이해인

새야, 네가 앉아 있는 푸른 풀밭에 나도 동그마니 앉아 있을 때,

네 조그만 발자국이 찍힌 하얀 모래밭을 맨발로 거닐 때

나도 문득 한 마리의 새가 된다.

오늘은 꽃향기 가득한 언덕길을 오르다가

네가 떨어뜨린 고운 깃털 한 개를 주으며

미움이 없는 네 눈길을 생각한다.

지금은 네가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주운 따스하고 보드라운 깃털 한 개로

넌 어느새 내 그리운 친구가 되었구나.

 

*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 정호승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잠이 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

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

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들을 위하여

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달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

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둔다

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라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

간밤에 흘리신 하느님의 눈물이

새들의 깃털에 고요히 이슬처럼 맺혀 있다

 

* 새 - 곽재구  

라일락꽃 향기처럼

아름다운 추억이 늘 내 가슴속에

숨쉴 수 있기를

라일락꽃 향기처럼

아름다운 고통이 늘 내 가슴속에

빛날 수 있기를


해 저무는 날

새 한 마리

내 삶의 여울목에

뜨거운 노래 한 섬 부리고 갑니다

 

* 새떼를 베끼다 - 위선환 

새떼가 오가는 철이라고 쓴다 새떼 하나는 날아오고 새떼 하나는 날아간다고, 거기가 공중이다, 라고 쓴다


두 새떼가 마주보고 날아서, 곧장 맞부닥뜨려서, 부리를, 이마를, 가슴뼈를, 죽지를, 부딪친다고 쓴다


맞부딪친 새들끼리 관통해서 새가 새에게 뚫린다고 쓴다


새떼는 새떼끼리 관통한다고 쓴다 이미 뚫고 나갔다고, 날아가는 새떼끼리는 서로 돌아다본다고 쓴다


새도 새떼도 고스란하다고, 구멍 난 새 한 마리 없고, 살점 하나, 잔뼈 한 조각, 날갯깃 한 개, 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


공중에서는 새의 몸이 빈다고, 새떼도 큰 몸이 빈다고, 빈 몸들끼리 뚫렸다고, 그러므로 空中이다, 라고 쓴다 *

* 위선환시집[새떼를 베끼다]-문지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 - 이병률 
며칠째 새가 와서 한참을 울다 간다 허구한 날 새들이 우는 소리가 아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도 아니다

한참을 아프게 쏟아놓고 가는 울음 멎게 술 한 잔 부어줄 걸 그랬나, 발이 젖어 오래도 멀리도 날지 못하는 새야

지난날 지껄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술을 담근다 두 달 세 달 앞으로 앞으로만 밀며 살자고 어둔 밤 병 하나

말갛게 씻는다 잘난 열매들을 담고 나를 가득 부어, 허름한 탁자 닦고 함께 마실 사람과 풍경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저 가득 차 무거워진 달(月)을 두어 곱 지나 붉게 붉게 생을 물들일 사람

새야 새야 얼른 와서 이 몸과 저 몸이 섞이며 몸을 마려워하는 병 속의 형편을 좀 들여다보아라 * 
* 폴란드 시인 쉼보르스카의 시 [선택의 가능성]에 나오는 한 구절.

* 안도현[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가서

 

* 딱따구리 - 정진규 
늙은 밤나무에 딱따구리 한 마리 들어 산다 소리만 들었지 여적지 실물은 한 번도 본 적 없다 이른 아침마다 다그르르 저를 알린다 어떤 날은 그를 보았다 말했다 울림 오래 몸으로 남았다 내 기다리는 행복 가운데 매일 아침 그도 들어와 앉았다 다그르르 나를 분명하게 쪼는 소리, 굳어 딱딱해진 내 상처를 쫀다 구멍낸다 숨쉬는 소리가 그나마 들린다 *

 

* 되새떼들의 하늘 - 정진규 
오늘 석양 무렵 그곳으로 떼지어 나르는 되새떼들의 하늘을 햇살 남은 쪽으로 몇 장 모사해 두었네 밑그림으로 남기어 두었네 그걸로 무사히 당도할 것 같네 이승과 저승을 드나드는 날개붓이여, 새들의 운필이여 붓 한 자루 겨우 얻었네 秘標 하날 얻어 두었네 한 하늘에 대한 여러 개의 질문과 응답을 몸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지덕지 할 일인가 오늘 서쪽 하늘에 되새떼들이 긋고 간 飛白이여, 되새떼들의 書體여, 자유의 격식이여 몇 장 밑그림으로 모사해 두었네 가슴팍에 바짝 당겨 넣은 새들의 발톱이 하늘을 찢지 않으려고, 흠내지 않으려고 제 가슴 찢고 가는 그게 飛白이라네 하얀 피라네 *

 

* 새 - 장석주

새, 어떤 규율도 따르지 않는 무리.
새, 허공의 영재(英才)들.
새, 깃털 붙인 질항아리.
새, 작고 가벼운 혈액보관함.
새, 고양이와 바람 사이의 사생아.
새, 공중을 오가는 작은 범선.
새, 지구의 중력장을 망가뜨린 난봉꾼.
새, 떠돌이 풍각쟁이.
새, 살찐 자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가벼운 육체.
새, 뼛속까지 비운 유목민들.
새, 똥오줌 아무 데나 싸갈기는 후레자식.
새, 국민건강의료보험 미불입자. *

* 장석주시집[절벽]-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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