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들국화 시 모음

효림♡ 2011. 9. 19. 09:09

* 들국화(菊花) - 박두진 
오오

별이 내려 앉았다. 
바람 울부짖고
폭우 몸부림 치는 곳//
쓸쓸하여
별도 호접(胡蝶)도 오지 않는
벌판에 
활짝 핀
한 포기 들국화// 
샛노란 화심(花心)에
무궁화(花)빛 꽃잎파리...... 
삽분! 꽃잎 위에
앉고 싶어.....
호접 아닌데도//

오오 외로이  

고웁거라. 
수집은 꽃아.

 

* 황국 - 박두진 

먼 햇살 넋이 엉겨 숭어리져 솟은 얼굴

인연의 그 창 변두리 싀싀로운 해후여

안에 깊이 가라앞힌 하늘 푸른 가을 마음

체념의 모래 벌이 강을 따라 펼쳐간

강물 푸른 물무늬속 흔들리는 그림자

강물이 저절로듯 저절로인 기약의

다시는 못돌아올 꽃띄움의 흩날림

창아침 햇살가의 서로 해후여

 

* 들국화 - 천상병 

산등선 외따른 데,
애기 들국화.


바람도 없는데
괜히 몸을 뒤뉘인다.


가을은
다시 올 테지.


다시 올까?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
지금처럼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ㅡ **

 

* 황국(黃菊) 몇 송이 - 황동규   

소설(小雪) 날
엉거주춤 붙어 있는 나라 꼬리 장기곶
수리(修理)중 문닫은 등대박물관 옆 절벽 위에서
바람도 제대로 불지 않고
이리 불다 저리 불다
오징어 굽는 아줌마들의 눈만 쓰리게 하는
쓸쓸한 잿빛 바다를 한없이 만나보고
돌아오다 무심히 기림사에 들려
고요한 흥분 서린 황금빛 보살상을 만나보고
차 한 대 마주 오지 않는 가파른 성황재를 마냥 오르다
잿빛 찬바람 속에 고개 들고 빛나는 황국 몇 송이.
눈 저리게 하는, 
아 살아 있는 보살상들!
얼은 눈물 조각은 아니겠지,
꽃잎에 묻어 있던
조그만 발광체들. *

* 황동규시집[버클리풍의 사랑 노래]-문학과지성사

 

* 菊花 - 박남수 

1. 지금 뜰에는 菊花가 한창이다

 

菊花의 향기와 모양이 드러나도록

하늘의 攝理는 먼저 온갖 꽃들을 저렇게 시들이시고

얼마간의 冷度와 맑은 空氣속에 菊花를 두시었다

 

마지막 꽃에 얼맞도륵 菊花는

가냘픈 꽃잎을 벌리고 바람에 몸을 떤다

몸향기를 바람에 태워

세상을 황홀하도록 향기 속에 적시이고 있다

지금 뜰에는 菊花가 한창이다

 

2. 菊花는 먹는 꽃

찹쌀 가루로 아삭하니 튀겨

野蠻의 이빨에 무는 꽃

이빨에 물리는 그 肉身의 軟함을 삼키는 꽃

 

먹으면 가슴도 향기도 차고

머리가 맑아 오는 그 光明을

이 가을의 銀빛을

 

形而下로 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3. 어떤 놈은 花盆에서 흘러내리는 瀑布가 되어

빛깔의 어기찬 흐름을 흐르고

어떤 놈은 하늘이라도 받들려는가

국화에 묻히어

하나의 발쪽한 소반이 되어 하늘의 이슬을 받고 있다

菊花에 묻히어

나도 지금 한가지 菊花가 되어 간다. 어지러운 티끌에 汚染된 머리를 바래고

내가 지금 菊花앞에서 그 황홀한 빛깔 속으로 들어 간다

 

지금 뜰에는 菊花가 한창이다

 

* 산국(山菊) - 이정록 

들국화 꽃망울은

슬하 어린것들이다

못자리 골, 숟가락 많은 집이다

알루미늄 숟가락으로 퍼먹던

원기소 알약이다 마른 들국화 송아리는

해마다 산모가 되는 양순이다

반쯤 실성했던 머리칼을 하고서

연년생의 뿌리에게 독기를 내리고 있다

 

시든 꽃망울 속에 코를 박으면

죽어 묻히지 못한 것들의

살내음이 득시글거린다

소도 핥지 않는 독한 꽃

이곳에 누우면 내가 양순이다

소도 사람도 원기소 알약으로 작아진다

슬하 어린것들의 삭은 이빨에

광목실을 묶는, 늦가을 서릿발이다 *  

 

* 들국화 2 - 나태주    
바람 부는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생각 말자고,  
아주 아주 생각 말자고

 
갈꽃 핀 등성이에
혼자 올라서
두고 온 옛날은
잊었노라고,  
아주 아주 잊었노라고

 
구름이 헤적이는
하늘을 보며
어느 사이
두 눈에 고이는 눈물   
꽃잎에 젖는 이슬. *

 

* 들국화 - 김용택 
나는 물기만 조금 있으면 된답니다
아니, 물기가 없어도 조금은 견딜 수 있지요
때때로 내 몸에 이슬이 맺히고
아침 안개라도 내 몸을 지나가면 됩니다
기다리면 하늘에서
아, 하늘에서 비가 오기도 한답니다
강가에 바람이 불고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별이 지며
나는 자란답니다
그렇게 세월이 가고
찬 바람이 불면
당신이 먼데서 날 보러 오고 있다는
그 기다림으로
나는 높은 언덕에 서서 하얗게 피어납니다
당신은 내게
나는 당신에게
단 한번 피는 꽃입니다 *

* 들국화 - 곽재구 
사랑의 날들이
올 듯 말 듯
기다려온 꿈들이
필 듯 말 듯
그래도 가슴속에 남은
당신의 말 한마디
하루종일 울다가
무릎걸음으로 걸어간
절벽 끝으로
당신은 하얗게 웃고
오래 된 인간의 추억 하나가
한 팔로 그 절벽에
끝끝내 매달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

 

* 모두가 들국화 시인이 되게 하라 - 김영남
이번 가을은 농부들 마음 위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게 하라.
그리하여 섬돌 아래에서 사발로 줍게 하라.
튕겨낼 듯 댓가지 휘고 있는 가을 과일들도
그 꽉 찬 결실만 생각하며 따게 하라.
혹 깨물지 못할 쭈그린 얼굴이 있거든
그것은 저 빈 들녘의 허수아비 몫으로만 남게 하라.
더 이상 지는 잎에까지 상처받지 않고
푸른 하늘과 손잡고 가고 있는 길 옆 들국화처럼
모두가 시인이 되어서 돌아오게 하라. *

 

* 가을이 아름다운 건 - 이해인 
구절초, 마타리, 쑥부쟁이꽃으로
피었기 때문이다//
그리운 이름이
그리운 얼굴이 
봄 여름 헤매던 연서들이
가난한 가슴에 닿아
열매로 익어갈 때 
몇 몇은 하마 낙엽이 되었으리라//
온종일 망설이던

수화기를 들면
긴 신호음으로 달려온 그대를
보내듯 끊었던 애잔함 
뒹구는 낙엽이여//
아, 가슴의

현이란 현 모두 열어
귀뚜리의 선율로 울어도 좋을 
가을이 진정 아름다운 건
눈물 가득 고여오는
그대가 있기 때문이리...

 

* 나도 꽃 - 김용택

수천 수만 송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며

나도 한송이 들국으로

그대 곁에

가만 가만 핍니다.

 

* 그리워 - 이은상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 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부칠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엔 그대 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매다 가네. * 

 

* 완행열차 -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

 

* 野菊 - 洪世泰  

野菊本無主

寒花開爲誰

行人來自折

馬上有新詩

- 

들국화는 본래 임자가 없는데

차가운 꽃은 누구 위해 피었는고 

길가는 나그네가 꽃을 꺾어

말 위에서 새로운 시를 읊으리 *

 

* 들국화는 벌개미취와 구절초, 감국, 해국, 산국, 쑥부쟁이 등과 같이 가을에 피는 야생 국화를 아울러 부르는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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