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10월 시 모음

효림♡ 2011. 9. 30. 23:20

* 시월 - 피천득 
친구 만나고
울 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러는
파란 하늘에 *

* 피천득시집-범우사 

 

* 시월 - 박남수

들국화 옆에

들국화가 흔들리고 있다. 

어깨 부비며 서럽게 시들은

들국화 옆에

들국화가 서럽게 시들고 있다. 

 

이별을 위하여

내리는 서릿발에, 잎은

부황이 들고,

역시 부황이 든

잎사귀는 작별을 위하여

서릿발에 몸을 섞고 있다.

 

* 시월에 - 문태준 
오이는 아주 늙고 토란잎은 매우 시들었다

산 밑에는 노란 감국화가 한 무더기 해죽, 해죽 웃는다 웃음이 가시는 입가에 잔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꽃빛이 사그라들고 있다

들길을 걸어가며 한 팔이 뺨을 어루만지는 사이에도 다른 팔이 계속 위아래로 흔들리며 따라왔다는 걸 문득 알았다

집에 와 물에 찬밥을 둘둘 말아 오물오물거리는데
눈구멍에서 눈물이 돌고 돌다

시월은 헐린 제비집 자리 같다
아, 오늘은 시월처럼 집에 아무도 없다 *

 

* 꿈꾸는 가을노래 - 고정희 

들녘에 고개 숙인 그대 생각 따다가

반가운 손님 밥을 짓고

코스모스 꽃길에 핀 그대 사랑 따다가

정다운 사람 술잔에 띄우니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늠연히 다가오는 가을 하늘 밑

시월의 선연한 햇빛으로 광내며

깊어진 우리 사랑 쟁쟁쟁 흘러가네

그윽한 산그림자 어질머리 뒤로 하고

무르익은 우리 사랑 아득히 흘러가네

그 위에 황하가

서로 흘러 들어와

서쪽 곤륜산맥 물보라

동쪽 금강산맥 천봉을

우러르네 *

 

* 시월 - 이시영 

심심했던지 재두루미가 후다닥 튀어올라

푸른 하늘을 느릿느릿 헤엄쳐간다

그 옆의 콩꼬투리가 배시시 웃다가 그만

잘 여문 콩알을 우수수 쏟아넣는다

그 밑의 미꾸라지들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봇도랑에 하얀 배를 마구 내놓고 통통거린다

먼길을 가던 농부가 자기 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만히 들여다본다 *

 

 * 시월 - 이시영

고통을 통과하지 않은 영혼이 어디 있으랴

오늘 밤에도 강물 잔잔히 굽어 흐르고

별들은 머나먼 성하(星河)로 가 반짝인다. *

* 이시영시집[사이]-창비,1996

 

* 시월이라 상달되니 - 서정주 

어머님이 끊여 주던 뜨시한 숭늉,

은근하고 구수하던 그 숭늉 냄새,

시월이라 상달 되니 더 안 잊히네.

평양에 둔 아우 생각 하고 있으면

아무래도 안 잊히네, 영 안 잊히네.


고추장에 햇쌀밥을 맵게 비벼 먹어도  

다모토리 쐬주로 마음 도배를 해도,

하누님께 단군님께 꿇어 업드려

미안하요 미안하요 암만 빌어도,

하늘 너무 밝으니 영 안 잊히네. *

 

* 시월 - 이외수 

이제는 마른 잎 한장조차 보여드리지 못합니다

버릴수록 아름다운 이치나 가르쳐드릴까요//

기러기떼 울음 지우고 떠나간 초겨울

서쪽하늘

날마다 시린 뼈를 엮어서 그물이나 던집니다//

보이시나요

얼음칼로 베어낸 부처님 눈썹 하나

 

* 10월 - 문인수 
호박 눌러 앉았던

따 낸 자리

가을의 한복판이

움푹 꺼져 있다.

한동안 저렇게 아프겠다. *

 

* 10월 - 기형도

한때 절망이 내 삶의 전부였던 적이 있었다

그 절망의 내용조차 잊어버린 지금

나는 내 삶의 일부분도 알지 못한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로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그러나 내 사랑하는 시월의 숲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 10월 - 오세영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돌아보면 문득
나 홀로 남아 있다.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이 지상에는
외로운 목숨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낙과(落果)여,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우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오늘도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시월 - 이기철  

잘 익었는지 하나만 맛보고 가려다가
온 들판 다 엎질러 놓고 가는 볕살

베짱이 귀뚜라미가 나도 좀 데려가 달라고
악다구니 쓰는 시월 

 

* 시월 - 장석남

홑것차림의 이런 말소리도 들려오는 것이다

"단풍 들어"

"단풍이 들어"

이제는 띄엄띄엄 말도 놓는 사이가 되어

청색시대를 살러 오는 새털구름에게

나는 또 이런 응답을 놓아본다

 

그 근면으로

내 눈과 귀의 단추 좀 풀어다오

내 혀는 네가 주는 노래로 반짝일 테야

 

서녘 바람에 해바라기가

거짓을 쏘아보던 눈과도 같이 익어가고 있다

 

* 시월의 사유 - 이기철  

텅 빈 자리가 그리워 낙엽들은 쏟아져 내린다
극한을 견디려면 나무들은 제 껍질을 튼튼히 쌓아야 한다
저마다 최후의 생을 간직하고 싶어 나뭇잎들은
흙을 향하여 떨어진다

 

나는 천천히 걸으면서 나무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부분을 기억하려고 나무를 만진다
차가움에서 따스함으로 다가오는 나무들
모든 감각들은 너무 향기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엽록일까 물관일까, 향기를 버리지 않으면 나무들은 삭풍을 이기지 못한다
어두워야 읽혀지는 가을의 문장들, 그 상형문자들은 난해하다
더러 덜컹거리는 문짝들도 제자리에 머물며 더 깊은 가을의 심방을 기다린다
나뭇잎들, 저렇게 생을 마구 내버릴 수 있다니, 그러니까 너희에게도 생은 무거운 것이었구나
나는 면사무소 정문으로 한 노인이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사람이 나뭇잎보다 더 가벼워질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염소들이 지나간 길을 골라 걷는다
가벼운 것들,
뽕나무잎 누에고치 거미줄 잠자리 제비집 종이컵 볼펜 다 읽은 시집들
그러나 나를 짓누르는 것들, 무거운 것들
불면증 월급봉투 서문시장 팔공산 조지 부시 아프간 전쟁 매리어트 호텔 비자금
영변 경수로 대북송금 김정일 트로츠키 조정래 천리안 이회창 인천공항 유에스 달러

 

면사무소 은행나무 위에도 가을이 오고
이제 무들이 더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병든 새들과 거지들은 어서 집을 지어야 한다
이 주식의 가을에 사람들은 끝없이 회의를 하고
쫓겨난 염소처럼 나는 혼자 면사무소 옆길을 걷는다
나뭇잎은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는다
은행나무가 그렇듯이. 염소가 그렇듯이

* 이기철시집[가장 따뜻한 책]-민음사


* 시월 - 전동균 

백련산 밑 공터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과

갈참나무 숲으로 사라지는 길


숲길은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없다

저물 녘이면 울음을 참듯

고개 숙인 나무들 아래

默言修行묵언수행하는 스님들의 그림자만

흐릿하게 비쳐올 뿐


오늘처럼

그 길 앞에 서성이다 서성이다

끝내 집으로 돌아오는 날


밤늦도록 나는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나를 받아주던 어떤 손을 생각하며

홈통에 떨어지는 빗물 소리에도

소주잔을 건네는 것이다

 

* 10월 엽서 - 이해인  

사랑한다는 말 대신
잘 익은 석류를 쪼개 드릴게요


좋아한다는 말 대신
탄한 단감 하나 드리고
기도한다는 말 대신
탱자의 향기를 드릴게요


푸른 하늘이 담겨서
더욱 투명해진 내 마음
붉은 단풍에 물들어
더욱 따뜻해진 내 마음

우표 없이 부칠 테니
알아서 가져가실래요

서먹했던 이들끼리도
정다운 벗이 될 것만 같은 
눈부시게 고운 10월 어느날

 

* 시월 - 로버트 프로스트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너의 잎새들은 곱게 단풍이 들어 곧 떨어질 듯하구나
만일 내일의 바람이 매섭다면
너의 잎새는 모두 떨어지고 말겠지
까마귀들이 숲에서 울고
내일이면 무리 지어 날아가겠지
오, 고요하고 부드러운 시월의 아침이여
오늘은 천천히 전개하여라
하루가 덜 짧아 보이도록 하라
속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속여 보아라
새벽에 한 잎
정오에 한 잎씩 떨어뜨려라
한 잎은 이 나무, 한 잎은 저 나무에서
자욱한 안개로 해돋이를 늦추고
이 땅을 자줏빛으로 흘리게 하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미 서리에 말라버린
포도나무 잎새를 위해서라도
주렁주렁한 포도송이 상하지 않게
담을 따라 열린 포도송이를 위해서라도

 

* 시월의 시 - 류시화  

그리고는 가을 나비가 날아왔다
아, 그렇게도 빨리

기억하는가
시월의 짧은 눈짓을*

서리들이 점령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태양의 영토가 아니다
곤충들은 딱딱한 집을 짓고
흙 가까이
나는 몸을 굽힌다

내 혼은 더욱 가벼워져서
몸을 거의 누르지도 않게 되리라 *

* 가르시아 로르까 ㅡ "기억하는가, 8월의 긴 눈짓을"

* 류시화시집[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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