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이별 시 모음

효림♡ 2013. 1. 11. 15:18

*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 강우(降雨) - 김춘수

조금 전까지는 거기 있었는데

어디로 갔나,

밥상은 차려놓고 어디로 갔나,

넙치지지미 맵싸한 냄새가

코를 맵싸하게 하는데

어디로 갔나,

이 사람이 갑자기 왜 말이 없나,

내 목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온다.

내 목소리만 내 귀에 들린다.

이 사람이 어디 가서 잠시 누웠나,

옆구리 담괴가 다시 도졌나, 아니 아니

이번에는 그게 아닌가 보다.

함 뼘 두 뼘 어둠을 적시며 비가 온다.

혹시나 하고 나는 밖을 기웃거린다.

나는 풀이 죽는다.

빗발은 한 치 앞을 못 보게 한다.

왠지 느닷없이 그렇게 퍼붓는다.

지금은 어쩔수가 없다고, *

 

*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蓮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 서해 -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엔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

 

*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갈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것은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 원시(遠視) - 오세영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

 

* 이별노래 - 이해인
떠나가는 제 이름을
부르지 마십시오
이별은
그냥 이별인 게 좋습니다

남은 정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갈 길을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리움도
너무 깊으면 병이 되듯이
너무 많은 눈물은
다른 이에게 방해가 됩니다

차고 맑은 호수처럼
미련 없이 잎을 버린
깨끗한 겨울나무처럼
그렇게 이별하는 연습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

 

* 이별 - 이재무
마음 비우는 일처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그리움 깊어갈수록
당신 괴롭혔던 날들의 추억
사금파리로 가슴 긁어댑니다
온전히, 사랑의 샘물
길어오지 못해온 내가
이웃의 눈물
함부로 닦아준 것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요
가슴 무덤에 생뗏장 입히시고
가신 당신은
어느 곳에 환한 꽃으로 피어
누구의 눈길 묶어두시나요
마음 비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당신은 내 곁에 없었습니다
아픈 교훈만
내 가슴 무덤풀로 자랐습니다

 

* 이별 - 도종환 

당신이 처음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는 이것이 이별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 있고

나 또한 언제나 당신이 돌아오는 길을 향해 있었으므로

나는 헤어지는 것이라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꾸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이것이 이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별은 떠날 때의 시간이 아니라

떠난 뒤의 길어지는 시간을 가리키는 것인가 합니다.

당신과 함께 일구다 만 텃밭을

오늘도 홀로 갈다 돌아옵니다.

저물어 주섬주섬 짐들을 챙겨 돌아오면서

나는 아직도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당신이 비록 내 곁을 떠나 있어도

떠나가던 때의 뒷모습으로 서 있지 않고

가다가 가끔은 들풀 사이에서 뒤돌아보던 모습으로

오랫동안 내 뒤를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헤어져 있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가도

이 세상이 다 저물기 전의 어느 저녁

그 길던 시간은 당신으로 인해

한 순간에 메꾸어질 것임을 믿고 있습니다. 

 

* 이별법 - 류시화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냅니다

비록 우리 사랑이 녹아내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자의 길을 떠난다 해도

그래도 한때 행복했던 그 기억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고 싶습니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이 사랑

그대가 주었던 슬픔은 모두 잊고

추억의 상자에서 꺼내어

아름다웠노라, 지극히도 아름다웠노라

회상할 수 있는 사랑이고 싶습니다

우리 사랑이 이별로 남게 되어

지금은 견디기 힘든 아픔뿐일지라도

사랑이 오실 때의 그 마음보다 더한 정성으로

그대를 떠나보냅니다

헤어지는 지금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 이별에게 - 정호승 

내 너를 위해 더듬이를 잘라야겠느냐

내 너를 위해 저녁해를 따라가야겠느냐

모래내 성당의 종소리는 들리는데

개연꽃 피는 밤에 가을달은 밝은데

가슴마다 짓이겨진 꽃잎이 되어

꽃잎 위에 홀로 앉은 벌레가 되어

내 너를 위해 눈물마저 버려야겠느냐

내 너를 위해 날개마저 꺾어야겠느냐 * 

 

* 당신을 보내고 난 후에야 - 이정하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당신을 보내고 난 후에야 나는 알수 있었습니다.
당신이 떠나고 난 자리에 바람 불고, 비 내리고,

눈이 내리고 있었지만 꽃은 피지 않았습니다.
해는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가까이 있을줄 알았습니다.
며칠 못 보아도 괜찮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를 떠나간 당신을
나는 끝내 떠날수가 없었음을.
당신은 나를 버릴 수 있었지만
나는 끝내 그럴수 없었다는 것을.


내 안에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
이제는 나조차도 꺼내기 힘든 당신,
아아, 하필이면 나는
당신을 보내고 나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단 하루도 당신 없이 살아낼 수 없다는 것을. *

 

* 저만치 와 있는 이별 - 이정하 

모든 것의 끝이 있겠지만
나는 그 끝을 믿고 싶지 않았다.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사랑이 끝났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잠시 붙잡은 손 놓아 준다고
내 마음에서 너를 떠나보낸 것은 아니다.
때로 멀찍이 서서 바라보는 것도,
묵묵히 너의 뒷모습이 되어 주는 것도
너를 향한 더 큰 사랑이라는 것을 나는 알겠다.

이별을 예감했다고 해서 나는
내 사랑을 멈출 생각은 없다.
외려 나는 너에게 더 몰입하며,
끊임없이 주변을 확인한다.
네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일은 못내 쓸쓸하지만
그보다도, 너를 생각하며 너를 찾는 그 자체가
내겐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모든 것의 끝은 분명히 있겠지만
나는 결코 그 끝을 믿고 싶지 않았다.
강물도, 바다도, 청춘도, 세월도
마침내 우리의 삶마저도 끝은 있겠지만
나는 애써 그 끝을 믿고 싶지 않았다.
저만치 이별이 와 있었지만
내 사랑에 끝이 있다는 것은
더더욱 믿고 싶지 않았다. *

* 이정하시집[사랑해서 외로웠다]-자음과모음

 

* 어떤 이별 - 나해철

죽어서 헤어지는 것 보담

살아서 한 이별은

대수롭지 않아 라고 말하지 마오

 

살아서 한 이별 때문에

죽기도 하니

 

죽어야

진정으로 끝나는 이별도 있으니 *

 

* 이별 이후 - 문정희

너 떠나간 지

세상의 달력으론 열흘 되었고

내 피의 달력으론 십 년 되었다


나 슬픈 것은

네가 없는데도

밤 오면 잠들어야 하고

끼니 오면

입 안 가득 밥을 떠 넣는 일이다


옛날옛날에

그 사람 되어가며

그냥 그렇게 너를 잊는 일이다


이 아픔 그대로 있으면

그래서

숨막혀 나 죽으면

원도 없으리라


그러나

나 진실로 슬픈 것은


언젠가 너와 내가

이 뜨거움 까맣게

잊는다는 일이다. *

 

* 이별한 자가 아는 진실 - 신현림

담배불을 끄듯 너를 꺼버릴 거야


다 마시고 난 맥주 캔처럼 나를 구겨버렸듯
너를 벗고 말 거야
그만, 너를, 잊는다, 고 다짐해도
북소리처럼 너는 다시 쿵쿵 울린다


오랜 상처를 회복하는 데 십년 걸렸는데
너를 뛰어넘는 건 얼마 걸릴까
그래, 너는 나의 휴일이었고
희망의 트럼펫이었다
지독한 사랑에 나를 걸었다
뭐든 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 생각했다
네 생각 없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너는 어디에나 있었다 해질녘 풍경과 비와 눈보라,
바라보는 곳곳마다 귀신처럼 일렁거렸다
온몸 휘감던 칡넝쿨의 사랑
그래, 널 여태 집착한 거야
  
사랑했다는 진실이 공허히 느껴질 때
너를 버리고 나는 다시 시작할 거야 *

 

* 빈집 - 유경환

툇돌에 흰 고무신 놓여 있다

치울 생각을 바람도 안 한다

바람때에 절어 색이 변했다

가버린 사람

달력 보듯 그립다

볼 적마다 바람이 온다. *

 

* 적거(謫居) - 조용미


당신이 없는데 탱자나무에 꽃이 피었다

당신이 없는데 당신 사진이 웃고 있다
보리밭에 보리들이 술렁인다
당신 책상에 앉아 밤새 개구리 울음소릴 듣는다 당신 없이
걸어다닌다 술을 마신다 여행을 한다
돌아와서 나 혼자 우울한 음악을 듣는다
어쩌다 당신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때려눕힌다



벽지에 탱자나무 흰 꽃이 사방연속무늬로 피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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