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아내 시 모음

효림♡ 2013. 1. 11. 15:29

* 아내 - 나태주

새각시

새각시 때

당신에게서는

이름 모를

풀꽃 향기가

번지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신도 모르게

눈을 감곤 했지요

 

그건 아직도

그렇습니다. *

 

* 아내 - 박제영

다림질 하던 아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겠단다

부부가 있었어. 아내가 사고로 눈이 멀었는데, 남편이 그러더래. 언제까지 당신을 돌봐줄 수는 없으니까 이제 당신 혼자 사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섭섭했지만 혼자 시장도 가고 버스도 타고 제법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게 되었대.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버스에서 마침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라디오 방송이 나온 거야. 남편의 지극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아내가 혼잣말로 그랬대. 저 여자 참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버스 기사가 그러는 거야. 아줌마도 참 뭐가 부러워요. 아줌마 남편이 더 대단하지. 하루도 안 거르고 아줌마 뒤만 졸졸 따라다니는구만. 아내의 뒷자리에 글쎄 남편이 앉아 있었던 거야.

기운 내 여보,

실업자 남편의 어깨를 빳빳이 다려주는 아내가 있다
영하의 겨울 아침이 따뜻하다

 

* 아내 - 공광규

아내를 들어 올리는데

마른 풀단처럼 가볍다

 

수컷인 내가

여기저기 사냥터로 끌고 다녔고

새끼 두 마리가 몸을 찢고 나와

꿰맨 적이 있다

 

먹이를 구하다가 지치고 병든

컹컹 우는 암사자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데

 

누가 속을 파먹었는지

헌 가죽부대처럼 가볍다. *

 

* 무량사 한 채 - 공광규

오랜만에 아내를 안으려는데

'나 얼마만큼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마른 명태처럼 늙어가는 아내가

신혼 첫날처럼 얘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어

나도 어처구니없게 그냥

'무량한 만큼!'이라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무량이라니!

그날 이후 뼈와 살로 지은 낡은 무량사 한 채

주방에서 요리하고

화장실서 청소하고

거실에서 티브이를 봅니다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온 날은

목탁처럼 큰 소리를 치다가도

아이들이 공부 잘하고 들어온 날은

맑은 풍경소리를 냅니다

나름대로 침대 위가 훈훈한 밤에는

대웅전 꽃살문 스치는 바람 소리를 냅니다. *

 

* 아내 - 정낙추
풀은
아내의 땀으로 자라는지
뽑은 자리 돌아보면 어느새 무성한 숲
풀뿌리에 지친 호미질 끝
이 여름 다 가도록
바다보다 깊은 콩밭 가운데서
백로처럼 움직이며 수건 쓴 머리
땀에 전 까만 얼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민들레 꽃씨처럼 가벼운 몸
三伏 불볕에 녹아
아득한 우주로 증발했는가
땅 속 깊이 스며들었는가
돌아오지 않아 찾아 나선
어스름 밭고랑
일년 내내 거친 손
분신으로 남은
닳고 닳은 호미자루 옆
아내는
쇠비름 노란 꽃으로 가녀리게 피어 있다 *

 

* 아내의 종종걸음 - 고증식 
진종일 치맛자락 날리는
그녀의 종종걸음을 보고 있노라면
집 안 가득 반짝이는 햇살들이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푸른 몸 슬슬 물들기 시작하는
화단의 단풍나무 잎새 위로
이제 마흔 줄 그녀의
언뜻언뜻 흔들리며 가는 눈빛,
숭숭 뼛속을 훑고 가는 바람조차도
저 종종걸음에 나가떨어지는 걸 보면
방 안 가득 들어선 푸른 하늘이
절대 공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제 발걸음이 햇살이고 하늘인 걸
종종거리는 그녀만 모르고 있다 *

* 고증식시집[단절]-실천문학사

 

* 아내에게 - 김지하

내가 뒤늦게

나무를 사랑하는 건

 

깨달아서가 아니다

외로워서다

 

외로움은 병

 

병은

병균을 보는 현미경

 

오해였다

 

내가 뒤늦게

당신을 사랑하는 건

 

외로워서가 아니다

깨달아서다. *

 

* 쑥국 -아내에게 - 최영철

참 염치없는 소망이지만

다음 생에 딱 한번만이라도 그대 다시 만나

온갖 감언이설로 그대 꼬드겨

내가 그대의 아내였으면 합니다

그대 입맛에 맞게 간을 하고

그대 기쁘도록 분을 바르고

그대 자꾸 술 마시고 엇나갈 때마다

쌍심지 켜고 바가지도 긁었음 합니다

그래서 그래서

지금의 그대처럼 사랑한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고맙다는 말도 한번 못 듣고

아이 둘 온 기력을 뺏어 달아난

쭈글쭈글한 배를 안고

그래도 그래도

골목 저편 오는 식솔들을 기다리며

더운 쑥국을 끓였으면 합니다

끓는 물 넘쳐 흘러

내가 그대의 쓰린 속 어루만지는

쑥국이었으면 합니다 * 

 

* 아내에게 - 유용주

90mm 못 하나가
무게 1톤을 감당한다고 하는데
75kg 내 한 몸이 지탱하는
생의 하중은 얼마나 될까
얼마나 무겁게 이끌고 왔는지
하찮은 내 무게에 삐그덕 뻐그덕댔지
타이어가 뭉개지도록 가득 실은 모래와 자갈,
그 위에 시멘트를 얹고
길은 어둡고 날은 사납다
..........
오오 아내여
뒤를 미는 아내여! *

* 유용주시집[가장 가벼운 짐]-창비


* 아내에게 - 양성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했다.
너와 나, 살 맞대고 사는 것은
오백 번쯤 태어난 끝에 서로 만난

까닭이리라.
아무리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나 아직은 헐값으로 내 넋을

팔지 않았는데,
그 무엇이 네 가슴을 흔드는가?
사람은 누구나 죽을 각오로 살면

죽지 않는다.
비바람 속에서도 벼랑 위의 새처럼

부지런히 새끼들을 기르고,
꿈이 있다면 그것들의 날개짓을

보는 일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네 앞에 오는 모든 날에는
더 깊은 나의 사랑이 있을 뿐이다. *

 

* 아내의 잠 - 마종기

한밤에 문득 잠 깨어

옆에 누운 이십 년 동안의 아내,

작게 우는 잠꼬대를 듣는다.

간간이 신음 소리도 들린다.

불을 켜지 않은 세상이 더 잘 보인다.

 

멀리서 들으면 우리들 사는 소리가

결국 모두 신음 소리인지도 모르지.

어차피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

그것 알게 된 것이 무슨 대수랴만,

잠속에서 작게 우는 법을 배우는 아내여,

마침내 깊어지는 당신의 내력이여. *

 

* 내 아내 - 서정주

나 바람 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襤褸)와 피리 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 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

 

* 목상(木像) - 김광균 

집에는 노처(老妻)가 있다

노처(老妻)와 나는

마주 앉아 할말이 없다. 

 

좁은 뜨락엔

오월이면 목련이 피고

길을 잃은 비둘기가  

두어 마리 잔디밭을

거닐다 간다. 

 

처마끝에 등불이 켜지면

밥상을 마주 앉아

또 할말이 없다. 

 

년년세세(年年歲歲)

세월(歲月)이 지나는 동안에

우리 둘은 목상(木像)이 돼가나보다. 

 

* 여몽령(如夢令)-꿈 속에서 본 아내에게 - 정약용(丁若鏞)

一夜飛花千片(일야비화천편) - 하룻밤 휘날리는 꽃은 천 조각이요 

繞屋鳴鳩乳燕(요옥명구유연) - 우는 비둘기나 어미제비 지붕 맴돌고 있네.

孤客未言歸(고객미언귀) - 외로운 나그네 아직 돌아가지 못하니 

幾時翠閨房宴(기시취규방연) - 어느 때 비취빛 규방에서 꽃 잔치를 여나

休戀休戀(휴연휴연) - 그리워 말자 그리워 말자.

癣璥夢中顔面(추창몽중안면) - 슬프고 서글픈 표정의 꿈속에서 본 아내 얼굴을...

 

* 등돌리기 - 임보 

쉬흔 줄에 서더니 아내가 변해

이불 밑에 들어 발만 닿아도

쩌만치 가시요 쩌만치 가

새벽밥 도시락 싸기 몸에 겹다고

등 돌리며 중얼중얼 코를 고네

초록 단장 고운 머리 어제 같더니

어쩌다가 벌써 예까지 왔나? 

 

* 재봉 - 김종철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 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에는
집집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마을의 하늘과 아이들이
쉬고 있다
마른 가지의 난동(暖冬)의 빨간 열매가 수실로 뜨이는
눈 나린 이 겨울날
나무들은 신의 아내들이 짠 은빛의 털옷을 입고
저마다 깊은 내부의 겨울바다로 한없이 잦아들고
아내가 뜨는 바늘귀의 고요한 가봉(假縫),
털실을 잣는 아내의 손은
천사에게 주문받은 아이들의 전 생애의 옷을 짜고 있다
설레는 신의 겨울,
그 길고 먼 복도를 지내나와
사시사철 눈 오는 겨울의 은은한 베틀소리가 들리는
아내의 나라,
아내가 소요하는 회잉(懷孕)의 고요 안에
아직 풀지 않은 올의 하늘을 안고
눈부신 장미의 아이들이 노래하고 있다
아직 우리가 눈뜨지 않고 지내며
어머니의 나라에서 누워 듣던 우레가
지금 새로 우리를 설레게 하고 있다
눈이 와서 나무들마저 의식(儀式)의 옷을 입고
축복받는 날
아이들이 지껄이는 미래의 낱말들이
살아서 부활하는 직조(織造)의 방에 누워
내 동상(凍傷)의 귀는 영원한 꿈의 재단,
이 겨울날 조요로운 아내의 재봉 일을 엿듣고 있다

* 아내는 안해다 - 오탁번

토박이말사전에서 어원을 찾아보면

'아내'는 집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 란다

과연 그럴까?

화장실에서 큰거하고 나서

화장지 다 떨어졌을 때

화장지 달라면서

소리쳐 부를 수 있는 사람,

틀니 빼놓은 물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생일 선물 사줘도

눈꼽만큼도 좋아하지 않는

그냥 그런 사람.

있어도 되고

없으면 더 좋을 그런 사람인데

집안에 있는 해라고?

천만의 말씀!

어쩌다 젊은 시절 떠올라

이불 속에서 슬쩍 건드리면

─ 안 해!

하품 섞어 내뱉는 내 아내!

 

* 당신에게 - 오철수

겨울이 와도

당신에게 들려줄 노래 없네

그저 평범하게 사십을 살고

이제 여행이나 떠났음 좋을

며칠이 남았을 뿐

화사하게

난 당신에게 들려줄 꿈도 없네

출근하고 퇴근하고 얼굴 마주치면

좋지도 싫지도 않게 그저

빙긋 웃을 밖에

할 말 없네

이제 내 상상은 월급 봉투처럼 너무 평범해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네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뛰던

기다림의 긴긴 하루 없네

사람이 살던 곳에서 그저

당신을 사랑했던 기억과 아이들 얼굴

잊지 못할 몇 개의 추억만 담아 갈

맑아진 웃음밖엔

참으로 섦지도 않네

 

당신을 사랑하네, 졸다가 오간 말처럼 *

 

* 아내 - 김광섭 
손이 제일 더럽다면서 
씻고 들어가 
방 한 구석을 지키며 
한 집을 세워 나가던 사람 
늦이삭이지만 막 주우려는데 
인술의 칼끝에 숨통이 찔렸던가 
눈 뜨고 마지막 한 마디 없이 가니 
보이는 데마다 비고 
눈물이 고여 
이 봄 다하도록 
꽃 한 송이 못 봤네. 

* 수면사(睡眠寺) - 전윤호

초파일 아침
절에 가자던 아내가 자고 있다
다른 식구들도 일 년에 한 번은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자고 있다
엄마 깨워야지?
아이가 묻는다
아니 그냥 자게 하자
매일 출근하는 아내에게
오늘 하루 늦잠은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랴
나는 베개와 이불을 다독거려
아내의 잠을 고인다
고른 숨결로 깊은 잠에 빠진
적멸보궁
초파일 아침
나는 안방에 법당을 세우고
연등 같은 아이들과
잠자는 설법을 듣는다 *

 

* 아내의 봄비 - 김해화
순천 웃장 파장 무렵 봄비 내렸습니다.
우산 들고 싼거리 하러 간 아내 따라 갔는데
파장 바닥 한 바퀴 휘돌아
생선 오천원 조갯살 오천원
도사리 배추 천원
장짐 내게 들리고 뒤따라오던 아내
앞 서 가다보니 따라오지 않습니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 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 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횡단보도 건너와 돌아보았더니
꾸부정한 허리로 할머니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서있습니다
꽃 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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