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오장환 시 모음

효림♡ 2013. 2. 20. 16:53

* The Last Train - 오장환 
저무는 역두(驛頭)에서 너를 보냈다.
비애야!

개찰구에는
못 쓰는 차표와 함께 찍힌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
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 간다.

대합실에 남은 사람은
아직도
누굴 기다려

나는 이곳에서 카인을 만나면
목놓아 울리라.

거북이여! 느릿느릿 추억을 싣고 가거라
슬픔으로 통하는 모든 노선이
너의 등에는 지도처럼 펼쳐 있다. *

 

* 소야(小夜) 의 노래
무거운 쇠사슬 끄으는 소리 내 맘의 뒤를 따르고
여기 쓸쓸한 자유는 곁에 있으나
풋풋이 흰눈은 흩날려 이정표 썩은 막대 고이 묻히고
더런 발자국 함부로 찍혀
오직 치미는 미움
낯선 집 울타리에 돌을 던지니 개가 짖는다.

어메야, 아직도 차디찬 묘 속에 살고 있느냐.
정월 기울어 낙엽송에 쌓인 눈 바람에 흐트러지고
산짐승의 우는 소리 더욱 처량히
개울물도 파랗게 얼어
진눈깨비는 금시에 내려 비애를 적시울 듯
도형수(徒刑囚) 발은 무겁다. *


* 나의 노래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가슴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새로운 묘에는
옛 흙이 향그러//
단 한 번
나는 울지도 않았다.//
새야 새 중에도 종다리야
화살같이 날아가거라//
나의 슬픔은
오직 님을 향하여//
나의 과녁은
오직 님을 향하여//
단 한 번
기꺼운 적도 없었더란다.//
슬피 바래는 마음만이
그를 좇아
내 노래는 벗과 함께 느끼었노라.//
나의 노래가 끝나는 날은
내 무덤에 아름다운 꽃이 피리라. *

 

* 성탄제(聖誕祭)
산 밑까지 내려온 어두운 숲에
몰이꾼의 날카로운 소리는 들려오고,
쫓기는 사슴이
눈 위에 흘린 따뜻한 핏방울.//
골짜기와 비탈을 따라 내리며
넓은 언덕에
밤 이슥히 횃불은 꺼지지 않는다.//
뭇 김승들의 등 뒤를 쫓아
며칠씩 산속에 잠자는 포수와 사냥개,
나어린 사슴은 보았다
오늘도 몰이꾼이 메고 오는
표범과 늑대.//
어미의 상처를 입에 대고 핥으며
어린 사슴이 생각하는 것
그는
어두운 골짝에 밤에도 잠들 줄 모르며 솟는 샘과
깊은 골을 넘어 눈 속에 하얀 꽃 피는 약초.//
아슬한 참으로 아슬한 곳에서 쇠북 소리 울린다.
죽은 이로 하여금
죽는 이를 묻게 하라.//
길이 돌아가는 사슴의
두 뺨에는
맑은 이슬이 내리고
눈 위엔 아직도 따듯한 핏방울..... *

* 고향 앞에서
흙이 풀리는 내음새
강바람은
산짐승의 우는 소릴 불러
다 녹지 않은 얼음장 울멍울멍 떠내려간다.

진종일
나룻가에 서성거리다
행인의 손을 쥐면 따뜻하리라.

고향 가차운 주막에 들러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양귀비 끓여다 놓고
주인집 늙은이는 공연히 눈물지운다.

간간이 잰나비 우는 산기슭에는
아직도 무덤 속에 조상이 잠자고
설레는 바람이 가랑잎을 휩쓸어 간다.

예제로 떠도는 장꾼들이여!
상고(商賈)하며 오가는 길에
혹여나 보셨나이까.

전나무 우거진 마을
집집마다 누룩을 디디는 소리, 누룩이 뜨는 내음새..... *

 

* 귀촉도(歸蜀途) -廷柱에게 주는 시
파촉(巴蜀)으로 가는 길은
서역 삼만 리.
뜸부기 울음 우는 눈두렁의 어둔 밤에서
갈라래비 날려보는 외방 젊은이,
가슴에 깃든 꿈은 나래 접고 기다리는가.

흙먼지 자욱히 이는 장거리에
허리끈 끄르고, 대님 끄르고, 끝끝내 옷고름 떼고,
어두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서
창 너머 뜨는 달, 상현달 바라다보면 물결은 이랑 이랑
먼 바다의 향기를 품고,
파촉의 인주(印朱)빛 노을은, 차차로, 더워지는 눈시울 안에ㅡ

풀섶마다 소해자(小孩子)의 관들이 널려 있는 뙤의 땅에는,
너를 기다리는 일금 칠십원야의 샐러리와 죄그만 STOOL이 하나
집을 떠나고, 권속마저 뿌리이치고,
장안 술 하롯밤에 마시려 해도
그거사 안 되지라요, 그거사 안 되지라요.

파촉으로 가는 길은
서역 하늘 밑.
둘러보는 네 웃음은 용천병의 꽃 피는 울음
굳이 서서 웃는 검은 하늘에
상기도, 날지 않는 너의 꿈은 새벽별 모양,
아 새벽별 모양, 빤작일 수 있는 것일까. *

* 길손의 노래
입동철 깊은 밤을 눈이 내린다. 이어 날린다.
못 견디게 외로웁던 마음조차
차차로이 물러앉는 고운 밤이여!

석유불 섬벅이는 객창 안에서
이해 접어 처음으로 내리는 눈에
램프의 유리를 다시 닦는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 그리움일레
연하여 생각나는
날 사랑하던 지난날의 모든 사람들
그리운 이야
이 밤 또한 너를 생각는 조용한 즐거움에서
나는 면면한 기쁨과 적요에 잠기려노라.

모든 것은 나무램도 서글픔도 또한 아니나
스스로 막혀오는 가슴을 풀고
싸늘한 미닫이 조용히 열면
낯선 집 봉당에는 약탕관이 끓는 내음새

이 밤 따라
가신 이를 생각하옵네
가신 이를 상고하옵네. *

 

* 모촌(暮村)
추레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붙던 밤, 지붕 밑 양주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

* 황혼
직업소개에는 실업자들이 일터와 같이 출근하였다. 아무 일도 안 하면 일할 때보다는 야위워진다.

검푸른 황혼은 언덕 알로 깔리어오고 가로수와 절망과 같은 나의 긴 그림자는 군집(群集)의 대하(大河)에 짓밟히었다.

바보와 같이 거무러지는 하늘을 보며 나는 나의 키보다 얕은 가로수에 기대어 섰다. 병든 나에게도 고향은 있다.
근육이 풀릴 때 향수는 실마리처럼 풀려나온다. 나는 젊음의 자랑과 희망을, 나의 무거운 절망의 그림자와 함께,
뭇사람의 웃음과 발길에 채우고 밟히며 스미어오는 황혼에 맡겨버린다.

제 집을 향하는 많은 군중들은 시끄러이 떠들며, 부산히 어둠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나는 공복의 가는 눈을 떠, 희미한 노등(路燈)을 본다.
띄엄띄엄 서 있는 포도(鋪道)위에 잎새 없는 가로수도 나와 같이 공허하고나.

고향이여! 황혼의 저자에서 나는 아리따운 너의 기억을 찾아 나의 마음을 전서구(傳書鳩)와 같이 날려보낸다.
정든 고샅. 썩은 울타리. 늙은 아베의 하얀 상투에는 몇 나절의 때묻은 회상이 맺어 있는가.
우거진 송림 속으로 곱게 보이는 고향이여! 병든 학(鶴)이었다. 너는 날마다 야위어가는.....


어디를 가도 사람보다 일 잘하는 기계는 나날이 늘어나 가고, 나는 병든 사나이.

야윈 손을 들어 오랫동안 타태(墮怠)와, 무기력을 극진히 어루만졌다.
어두워지는 황혼 속에서, 아무도 보는 이 없는, 보이지 않는 황혼 속에서, 나는 힘없는 분노와 절망을 묻어버린다. *

* 종가(宗家)
돌담으로 튼튼히 가려놓은 집 안엔 검은 기와집 종가가 살고 있었다.

충충한 울 속에서 거미알 터지듯 흩어져 나가는 이 집의 지손(支孫)들.
모두 다 싸우고 찢고 헤어져 나가도 오래인 동안 이 집의 광영을 지키어주는 신주(神主)들

들은 대머리에 곰팡이가 나도록 알리어지지는 않아도

종가에서는 무기처럼 아끼며 제삿날이면 갑자기 높아 제상 위에 날름히 올라앉는다.
큰집에는 큰아들의 식구만 살고 있어도 제삿날이면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들
 오조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손주며느리 칠촌도 팔촌도 한테 얼리어 닝닝거린다.
시집갔다 쫓겨 온 작은딸 과부가 되어온 큰고모 손꾸락을 빨며 구경하는 이종언니 이종오빠.
한참 쩡쩡 울리던 옛날에는 오조할머니 집에서 동원 뒷밥을 먹어왔다고
오조할머니 시아버니도 남편도 동네 백성들을 곧잘 잡아들여다 모말굴림도 시키고 주릿대를 앵기었다고.
지금도 종가 뒤란에는 중복사나무 밑에서 대구리가 빤들빤들한 달걀귀신이 융융거린다는 마을의 풍설.
종가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 일을 안 해도 지내왔었고 대대손손이 아무런 재주도 물리어받지는 못하여 종가집 영감님은
근시안경을 쓰고 눈을 찝찝거리며 먹을 궁리를 한다고 작인들에게 고리대금을 하여 살아나간다. *

* 산협(山峽)의 노래
이 추운 겨울 이리떼는 어디로 몰려다니랴.
첩첩이 눈 쌓인 골짜기에
재목을 싣고 가는 화물차의 철로가 있고
언덕 위 파수막에는
눈 어둔 역원이 저녁마다 램프의 심지를 갈고.//
포근히 눈은 날리어
포근히 눈은 내리고 쌓이어
날마다 침울해지는 수림(樹林)의 어둠 속에서
이리떼를 근심하는 나의 고적은 어디로 가랴.//
눈보라 휘날리는 벌판에
통나무 장작을 벌겋게 지피나
아 일찍이 지난날의 사랑만은 다스하지 아니하도다.//
배낭에는 한 줌의 보리이삭
쓸쓸한 마음만이 오로지 추억의 이슬을 받아 마시나
눈부시게 훤한 산등을 내려다보며
홀로이 돌아올 날의 기꺼움을 못가졌노라.//
눈 속에 쌓인 골짜기
사람 모를 바위틈엔 맑은 샘이 솟아나고
아늑한 응달녘에 눈을 헤치면
그 속에 고요히 잠자는 토끼와 병든 사스미.//
한겨울 내린 눈은
높은 벌에 쌓여
나의 꿈이여! 온 산으로 벋어나가고
어디쯤 나직한 개울 밑으로
훈훈한 동리가 하나
온 겨울, 아니 온 사철
내가 바란 것은 오로지 다스한 사랑.//
한동안 그리움 속에
고운 흙 한줌
내 마음에는 보리이삭이 솟아났노라. *

* 도종환지음[도종환의 오장환 詩 깊이 읽기]-실천문학사

 

* 오장환시인
-1918년~1951년 충북 보은,
백석, 이용악과 더불어 193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
-1933년 [조선문학]에 시 [목욕간] 발표
-시집 [성벽] [헌사] [병든 서울] [나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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