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제주 시 모음

효림♡ 2013. 1. 31. 18:16

* 연북정(戀北亭) - 정호승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다 여기로 오라
내 책상다리를 하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가끔은 소맷자락 긴 손을 이마에 대고
하마 그대 오시는가 북녘 하늘 바다만 바라보나니 
오늘은 새벽부터 야윈 통통배 한 척 지나가노라
새벽별 한두점 떨어지면서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고 가노라
오늘도 저 멀리 큰 섬이 가려 있어 안타까우나
기다리면 님께서 부르신다기에
기다리면 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기에 
연북정 지붕 끝에 고요히 앉은
아침 이슬이 되어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의 사랑도 일생에 한 번쯤은 아침 이슬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갖게 되기를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느냐 *

 

* 다랑쉬오름 - 이생진

간밤에 창문을 두들기던 달

날 밝으니 다랑쉬로 바뀌었네

내가 거기에 무엇을 놓고 왔기에

날이면 날마다 가고 싶은가...

 

* 제주의 D단조 -김종철에게 - 고은 
당신을 표현하기에는 언제나 형용사밖에는 없다.
바하로부터 바하까지 돌아온
G선상의 여수(旅愁)와 같다.
 
싱그러운 눈의 외로움
등뒤에서 비오는 소리
또한 햇무리 흐르는 계단의 정적

 
어떤 기쁨에라도 슬픔이 섞인다.
 
그러고는 아름다운 여자를 잉태한 젊은 어머니의 해변(海邊)
 
오늘, 저 하마유꽃(문주란)이라도 지는 흐린 날,
어제의 빈 몸으로 떠나는구나,
그러나, 아무것도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바람이 분다. *

 

* 백운편(白雲編) - 백호 임제(林悌)

하계(下)에선 흰 구름 높은 줄만 알고

흰 구름 위에 사람 있는 줄 모르겠지.

-

가슴속 울끈불끈 불평스런 일들은

하늘문을 두드리고 한번 씻어보리라.

 

* 한라산 등반기 - 이은상

높으나 높은 산에 흙도 아닌 조약돌을

실오라기 틈을 지어 외로이 피는 꽃이

정답고 애처로워라 불같은 사랑이 쏟아지네

 

한 송이 꺾고 잘라 품음 직도 하건마는

내게 와 저게 도로 불행할 줄 아옵기로

이대로 서러 나뉘어 그리면서 사오리다 *

 

* 한라산 - 고은

제주 사람은

한라산이 몽땅 구름에 묻혀야

그때 한라산을 바라본다

그것도 딱 한 번 바라보고 그만둬버린다

정작 한라산 전체가 드러나 있는 때는

그 커다란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한라산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괜히 어제오늘 건너온 사람들이 

해발 몇 미터의 한라산을 어쩌구저쩌구 한다

삼양리 검은 모래야

너 또한 한라산이지, 그렇지 *

 

* 사계리 발자국 화석 - 이대흠

다녀가셨군요..... 당신

당신이 오지 않는다고 달만 보며 지낸 밤이 얼마였는데

당신이 다녀간 흔적이 이렇게 선명히 남아 있다니요

물방울이 바위에 닿듯 당신은 투명한 마음 발자국을 남기었으니

그 발자국 몇번이나 찍혔기에 화석이 되었을까요

 

아파서 말을 잃은, ..... 당신

눈이 멀도록 그저 바라다보기만 하였을 당신

다녀갈 때마다 당신은 또 얼마나 울었을까요

몹쓸 바람 모슬포 바람에 당신 귀는 또 얼마나 쇠었을까요

사랑이 깊어지면 말을 잃는 법이라고

마음 벼랑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를 데려와

당신의 발자국 위에 세워봅니다

 

소금 간 들어 썩지 않을 그리움, 입 잃고 눈 먼 사랑 하나

당신이 남긴 발자국에 새겨봅니다

다녀가셨군요..... 당신 *

 

* 사려니 숲길 - 도종환
어제도 사막 모래언덕을 넘었구나 싶은 날
내 말을 가만히 웃으며 들어주는 이와
오래 걷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보다 다섯배 열배나 큰 나무들이
몇시간씩 우리를 가려주는 길
종처럼 생긴 때죽나무 꽃들이
오리 십리 줄지어 서서
조그맣고 짙은 향기의 종소리를 울리는 길
이제 그만 초록으로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산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것들을 주체하기 어려운 날
마음도 건천이 된 지 오래인 날
쏟아진 빗줄기가 순식간에 천미천 같은 개울을 이루고
우리도 환호작약하며 물줄기를 따라가는 길
나도 그대도 단풍드는 날 오리라는 걸
받아들이게 하는 가을 서어나무 길
길을 끊어놓은 폭설이
오늘 하루의 속도를 늦추게 해준 걸
고맙게 받아들인 삼나무 숲길
문득 짐을 싸서 그곳으로 가고 싶은
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 중산간
신역(神域)으로 뻗어 있는 사려니 숲길 같은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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