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봄 시 모음 4

효림♡ 2013. 3. 21. 12:22

* 봄 - 곽재구
다시 그리움은 일어
봄바람이 새 꽃가지를 흔들 것이다
흙바람이 일어 가슴의 큰 슬픔도
꽃잎처럼 바람에 묻힐 것이다
진달래 꽃편지 무더기 써갈긴 산언덕 너머
잊혀진 누군가의 돌무덤 가에도
이슬 맺힌 들메꽃 한 송이 피어날 것이다
웃통을 드러낸 아낙들이 강물에 머리를 감고
오월이면 머리에 꽂을 한 송이의
창포꽃을 생각할 것이다
강물 새에 섧게 드러난 징검다리를 밟고
언젠가 돌아온다던 임 생각이 깊어질 것이다
보리꽃이 만발하고
마실가는 가시내들의 젖가슴이 부풀어
이 땅 위에 그리움의 단내가 물결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곁을 떠나가주렴 절망이여
징검다리 선들선들 밟고 오는 봄바람 속에
오늘은 잊혀진 봄 슬픔 되살아난다
바지게 가득 떨어진 꽃잎 지고
쉬엄쉬엄 돌무덤을 넘는 봄. *

 

* 느닷없이 봄은 와서 - 김종해  

봄은 화안하다

봄이 와서 화안한 까닭을 나는 알고 있다

하느님이 하늘에다 전기 스위치를 꽂기 때문이다

30촉 밝기의 전구보다 더 밝은 꽃들이

이 세상에 일시에 피는 것을 보면

헐, 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믿는다

봄은 눈부시고 화안하다

사람과 세상이 제 모습을 감추고 있는

긴 긴 겨울밤은

하느님이 아직 스위치를 꽂지 않으셔서

어둡다고 생각한다

오늘 아침 느닷없이 봄은 와서

내 눈을 부시게 한다

 

* 초봄 - 정완영

내가 입김을 불어 유리창을 닦아 내면

새 한 마리 날아가며 하늘빛을 닦아 낸다

내일은 목련꽃 찾아와 구름빛도 닦으리. *

 

 

* 초봄 - 정완영

햇살 보풀보풀 풀어내는 보푸라기

흙살은 흠씬 자고 눈 비비는 아기 속살

목련꽃 온다는 소문 온 골안에 떠돌아 *

 

* 봄 - 김기림

사월은 게으른 표범처럼

인제사 잠이 깼다.

 

눈이 부시다

가려웁다

소름친다

등을 살린다.

 

주춤거린다

성큼 겨울을 뛰어 넘는다. *

 

* 봄 - 박영근

하나, 둘 흩날리는 눈송이였다

뒷골목에 몰려 쌓여가는 눈더미였다

흙먼지와 그을음, 쓰레기를 쓰고

한밤중 온통 얼어가는 얼음덩어리였다

어떤 뜨거운 말들이 치웠는지 나는 모른다

맨땅에 선연한 침묵의 빛을 본다. *

* 박영근시집[저 꽃이 불편하다]-창비

 

* 봄 - 오탁번

소쩍새는

밤 이슥토록 울고

조롱조롱 금낭화

붉은 꽃잎이 짙다//

너비바위 틈에 피어난

개미딸기

오종종 오종종

노란 꽃잎이 여리다//

하늘 높이 뜬

솔개 눈씨에

참새도 오목눈이도

찔레넝쿨 사이로 숨는다//

하느님이

수염에 묻은 황사를 턴다

붕어들이 알 낳느라

몸을 떨며 피 흘린다 *

 

* 봄 - 오탁번

겨우내 살이 오른 딱정벌레 작은 알이
봄 아침 눈을 뜨고 나무 밑둥 간질일 때
그리움 가지 끝마다 새잎 나며 보챈다

버들개지 실눈 뜨는 여울목 아지랑이
눈물겨운 물거울로 꿈결 속에 반짝일 때
이제야 견딜 수 없는 꽃망울이 터진다
 

 

* 봄 - 정지용

외ㅅ가마귀 울며 나른 알로

허울한 돌기둥 넷이 스고,

이끼 흔적 푸르른데

황혼이 붉게 물든다.

 

거북 등 솟아오른 다리

길기도 한 다리,

바람이 수면에 옴기니

휘이 비껴 쓸리다.

 

* 봄 - 최윤진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 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 *

 

* 꽃과 꽃나무 - 오규원

노오란 산수유꽃이

폭폭, 폭,

박히고 있다

자기 몸의 맨살에 *

 

* 봄비 - 노천명
강에 얼음장 꺼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 가슴속 어디서 나는 소리 같습니다

봄이 온다기로
밤새것 울어 새일 것은 없으련만
밤을 새워 땅이 꺼지게 통곡함은
이 겨울이 가는 때문이었습니다

한밤을 즐기차게 서러워함은
겨울이 또 하나 가려 함이었습니다

화려한 꽃철을 가져온다지만

이 겨울을 보냄은
견딜 수 없는 비애였기에
한밤을 울어울어 보내는 것입니다

 

* 봄의 말 - 헤르만 헤세

어느 소년 소녀들이나 알고 있다.
봄이 말하는 것을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새싹을 움트게 하라.
몸을 던져 삶을 두려워 말아라!

노인들은 모두 봄이 소곤거리는 것을 알아듣는다.
노인이여, 땅속에 묻혀라.
씩씩한 아이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몸을 내던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라!

 

* 봄 - 곽해룡

봄은 틀림없이

힘이 셀 거야

 

할머니한테 끌려다니던 염소

뿔 두 개 달더니

할머니를 끌고 다니잖아

 

틀림없이 봄은

고집이 셀 거야

 

봄이란 글자를 잘 봐

뿔 달린 염소처럼

몸 위에 뿔 두 개 달았잖아 *

 

* 차 한잔 -금당다회 - 박남준

매화가 핀다고

연꽃이 곱다고

산국처럼 물들고 싶다고

눈꽃이 못내 그리웁다고

솔숲 맑은 바람 다관(茶館)에 우려내면

찻잔에 어느새

푸른 하늘 담기네

 

* 물소리를 꿈꾸다 - 이정록 

번데기로 살 수 있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한겨울에도, 뿌리 끝에서 우듬지 끝까지
줄기차게 오르내리는 물소리
고치의 올 올을 아쟁처럼 켜고
나는 그 소리를 숨차게 쟁이며
분꽃 씨처럼 늙어갈 것이다
고치 속이, 눈부신 하늘인양
맘껏 날아다니다 멍이 드는 날갯죽지
세찬 바람에 가지를 휘몰아
제 몸을 후려치는 그의 종아리에서
겨울을 나고 싶다, 얼음장 밑 송사리들
버드나무의 실뿌리를 젖인 듯 머금고
그 때마다 결이 환해지는 버드나무
촬촬, 물소리로 울 수 있다면
날개를 달아도 되나요? 슬몃 투정도 부리며
버드나무와 한 살림을 차리고 싶다
물오른 수컷이 되고 싶다 *

 

* 참 맑은 물살 -회문산에서 - 곽재구 

참 맑은 물살

발가락 새 헤적이네

애기 고사리순 좀 봐

사랑해야 할 날들

지천으로 솟았네

어디까지 가나

부르면 부를수록

더 뜨거워지는 너의 이름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출렁거리는 산들의

부신 허벅지 좀 봐

아무 때나 만나서

한몸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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