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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물 - 김명리

효림♡ 2013. 5. 31. 23:16

* 냇물 - 김명리

 

지천의 봄빛들은 한결, 서쪽으로 떠서 동쪽으로 기우는 것 아닐까
젖은 산마루 눈 녹는 허리께에 비끼는 저 엷은 발걸음
겨우내 전나무 솔가지에 움츠리던 멧새떼,
그 아래 너럭바위 음각된 반야경(般若經) 한 소절 제 흥으로 응얼대듯
오는 사월은, 우리 사는 마을의 꽃가루 암술 붉은 푸른 잎사귀에
접어둔 뭇세간의 알싸한 소문들을 한달음에 퍼뜨리려 오지
내 사는 변두리 임대 아파트 손바닥만한 화단에도
모란, 작약, 떨기꽃들
색색의 고깔처럼 돋아오르니
지천의 봄꽃들, 수천 수만의 햇빛 알타리 녹아드는
저 음률, 저 탱탱한, 탱탱거리는 생명의 바알간 고명 속 좀 보아
우리 어느 날 덕소(德沼) 못미처 경기도 와부읍 율곡리 백천정사(栢泉精舍)
꽃그늘 분홍 물소리에 함께 발 빠뜨리고
추녀 끝 그렁그렁 밤풍경 뱃놀이에 봄빛 여위는 줄 몰라
그러고 보면, 저무는 사월도 이리 우거진 봄빛도
왼갓 날것들이 물어다 놓은 저 밤하늘,
저 무한무한 반짝거리는 펑 뚫린 무한고도의 우중명월(雨中明月) 아닐까 몰라
율패교(橋) 지나서 스무여드레
지천의 봄빛들은 저다지, 저다지도 깊은 물소리로 떠서 *

 

* 김명리시집[적멸의 즐거움]-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