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둥을 기리는 노래 - 정현종
여름날의 저
천지 밑 빠지게 우르렁대는 천둥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이 그 마음과 몸을
씻었겠느냐,
씻어
참 서늘하게는 씻어
문득 가볍기는 허공과 같고
움직임은 바람과 같아
왼통 새벽빛으로 물들었겠느냐
천둥이여
네 소리의 탯줄은
우리를 모두 신생아로 싱글거리게 한다
땅위의 어떤 것도 일찍이
네 소리의 맑은 피와
네 소리의 드높은 음식을
우리한테 준 적이 없다
무슨 이념, 무슨 책도
무슨 승리, 무슨 도취
무슨 미주알고주알도
우주의 내장을 훑어내리는 네
소리의 근육이 점지하는
세상의 탄생을 막을 수 없고
네가 다니는 길의 눈부신
길 없음을 시비하지 못한다
천둥이여, 가령
내 머리와 갈비뼈 속에서 우르릉거리다
말다 하는 내 천둥은
시작과 끝에 두려움이 없는 너와 같이
천하를 두루 흐르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무덤 파는 되풀이를 끊고
이 냄새 나는 조직을 벗고
엉거주춤과 뜨뜻미지근
마음 없는 움직임에 일격을 가해
가령 어저께 나한테 "선생님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떠도는 꽃씨 비탈에 터잡을까
망설이는 목소리로 딴죽을 건
그 여학생 아이의
파르스름 과분(果粉) 서린 포도알 같은 눈동자의
참 그런 열심이 마름하는 치수로 출렁거리고도 싶거니
하여간 항상 위험한 진실이여
죽음과 겨루는 그 나체여, 그러니만큼
몸살 속에서 그러나 시와 더불어
내 연금술은 화끈거리리니
불순한 비빔밥 내 노래와 인생의
주조(主調)로 흘러다오 천둥이여
가난한 번뇌 입이 찢어지게
우르릉거리는 열반이여
네 소리는 이미 그 속에
메아리도 돌아다니고 있느니
이 신생아를 보아라 천둥벌거숭이
네 소리의 맑은 피와
네 소리의 드높은 음식을 먹으며
네가 다니는 길의 눈부신
길 없음에 놀아난다. 우르릉.....*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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