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가리 -아버지학교 7 - 이정록
저수지 비탈 둑에서 뛰어다니던 왜가리 때문에 엄청 웃은 적 있지? 메뚜기 잡아다 새끼 주랴 제 헛헛한 허구리 채우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술 취한 막춤을 보며 박장대소했지. 부리나케 일어나서는, 밀친 놈 없나? 비웃는 놈 없나? 두리번거리던
꼬락서니에, '술 좀 줄여요, 왜가리 꼴로 훅 가는 수가 있어요.' 내게 쏠리던 눈초리가 떠오르는구나.
왜가리도 가을 지나 겨울 오면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 물고기를 기다리지. 사내란 저런 구석이 있어야 해. 시린 발에 온
정신을 집중시키고 지느러미가 전해주는 미세한 떨림을 읽는거지. 눈은 시린 구름 너머에 던져놓고 의젓한 품새로 뒷짐
지고 말이여. 물고기가 가까이 다가오면 단 한 번 고개 숙이고는 다시 먼 하늘이나 바라보지. 물속 하늘은 가짜라서 진짜
하늘을 보며 살아야 한다는 거 아니겄어?
사내란 탁한 세상에서 탁발을 하고는 구름 너머 시린 하늘로 마음을 씻지. 식구들 뱃속 채워주는 일이라면 시궁창에
발 담가도 되는 거여. 사내는 자고로 연지(蓮池) 수렁에 서 있는 왜가리 흰 연꽃이여. *
* 금강 하구 -아버지학교 8
살다가, 정말이지 몸이 내 몸 같지 않을 땐 금강 하구에 가거라. 요 모양으로 싱겁게 살았구나,
갯물 들이켜는 강을 보아라. 이리 짜게만 출렁댔구나, 맹물 들이켜는 바다 보아라.
그래도, 내 맘이 내 맘 같지 않을 땐 금강 하구에 가서 절 올려라.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다고,
고개 숙여 들끓는 속마음 들여다보아라. 백팔배, 귀 기울여 애끓는 곡절 들어보아라.
살다가, 정말이지 오갈 데 없는 마음일 땐 눈물 콧물 질질 짜는 강물 보아라.
겨릅대 같은 갈매기 다리만 스쳐도, 바위너설 조개껍데기만 만나도 칭얼대는, 금강 하구 바다 보아라. *
* 연탄 -아버지학교 13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둔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
* 이정록시집[아버지학교]-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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