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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다 저녁 때의 초록 호수 - 고재종

효림♡ 2013. 6. 17. 14:10

* 여름 다 저녁 때의 초록 호수 - 고재종  

 

이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지만

아직도 숲속 골짜기에는

산 절로 물 절로 하는 호수들이 있긴 있는

것이다. 마을 뒷산 속에 있는

그 중 하나를 나는 황혼 무렵이면 찾는데

늘 산영이 잠겨 푸르게 물들어버린

호수 위로 우선 밀잠자리며 실잠자리들

편대지어 날아오르고

아무런 욕심이 없어야만 열릴 것 같은

깊고 그윽하고 투명한 숲속의 호수는

물위에서 제 몸을 잽싸게 튀기는

소금쟁이로도 잔물결 가득 일으킨다.

어디 그뿐인가, 온몸이 남빛인 물총새는

쏜살같이 물속에 뛰어들어 첨벙!

소리가 채 나기도 전에 물 밖으로 나오는데

그 긴 부리에는 이미 노란 버들치나

은빛 피라미가 물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삐르르삐르르 하고 우는

호반새들이 이따금 노래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런 것들이 온갖 살아 있는 움직임이라고

떠벌릴 것까지는 정말 없지만

호숫가 갈대를 헤치며 다니는 물뱀들이

스르르 옆으로 미끄러져 오자

순간 푸드드득, 창공으로 차고 오르는

물오리떼의 그 찬연한 비상과

이윽고 다시 고요를 찾은 수면에

은비늘 금비늘 마구 뿌려 대는 저녁 햇살은

정말 그 누구의 조화 속이 아니고서

무엇이던가, 이윽고 숲바람 일렁이면

온갖 살아 있는 것들이 진저리치도록

싱그러운 오르가슴에 떨고 마는

여름 다저녁 때, 내가 이 숲속의

산 절로 물 절로 하는 호숫가에서

이제라도 시인으로 숲으로 오라고 한다면

저기 암수가 나란히 물을 미는

원앙처럼, 어딘가에서 우리네 연인들도

벌써 서로의 생명의 입 속으로

뜨거운 혀를 밀고 있긴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