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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을 기리는 노래 - 정현종

효림♡ 2013. 6. 26. 16:55

* 천둥을 기리는 노래 - 정현종

 

여름날의 저

천지 밑 빠지게 우르렁대는 천둥이 없었다면

어떻게 사람이 그 마음과 몸을

씻었겠느냐,

씻어

참 서늘하게는 씻어

문득 가볍기는 허공과 같고

움직임은 바람과 같아

왼통 새벽빛으로 물들었겠느냐

 

천둥이여

네 소리의 탯줄은

우리를 모두 신생아로 싱글거리게 한다

땅위의 어떤 것도 일찍이

네 소리의 맑은 피와

네 소리의 드높은 음식을

우리한테 준 적이 없다

무슨 이념, 무슨 책도

무슨 승리, 무슨 도취

무슨 미주알고주알도

우주의 내장을 훑어내리는 네

소리의 근육이 점지하는

세상의 탄생을 막을 수 없고

네가 다니는 길의 눈부신

길 없음을 시비하지 못한다

 

천둥이여, 가령
내 머리와 갈비뼈 속에서 우르릉거리다
말다 하는 내 천둥은
시작과 끝에 두려움이 없는 너와 같이
천하를 두루 흐르지 못하지만, 그래도
이 무덤 파는 되풀이를 끊고
이 냄새 나는 조직을 벗고
엉거주춤과 뜨뜻미지근
마음 없는 움직임에 일격을 가해
가령 어저께 나한테 "선생님
요새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떠도는 꽃씨 비탈에 터잡을까
망설이는 목소리로 딴죽을 건
그 여학생 아이의
파르스름 과분(果粉) 서린 포도알 같은 눈동자의
참 그런 열심이 마름하는 치수로 출렁거리고도 싶거니

 

하여간 항상 위험한 진실이여
죽음과 겨루는 그 나체여, 그러니만큼
몸살 속에서 그러나 시와 더불어
내 연금술은 화끈거리리니
불순한 비빔밥 내 노래와 인생의
주조(主調)로 흘러다오 천둥이여
가난한 번뇌 입이 찢어지게
우르릉거리는 열반이여

네 소리는 이미 그 속에
메아리도 돌아다니고 있느니
이 신생아를 보아라 천둥벌거숭이
네 소리의 맑은 피와
네 소리의 드높은 음식을 먹으며
네가 다니는 길의 눈부신
길 없음에 놀아난다. 우르릉.....*

 

* 한국문학선집[시]-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