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꽃이 피는 너에게 - 김수복

효림♡ 2013. 12. 19. 13:49

* 꽃이 피는 너에게 - 김수복
사랑의 시체가 말했다//


가장 잘 자란 나무 밑에는//
가장 잘 썩은 시체가 누워 있다고//
가장 큰 사랑의 눈에는//
가장 깊은 슬픔의 눈동자가 있다고//
봄나무에게서 꽃이 피는 너에게 *

 

* 달의 눈빛을 보았다 

배가 배 위에 떠 있다 몸이

출렁일 때마다 가라앉았다가 떠오른다

 

허공이다!

 

다시 배가 배 위로 올라간다

해를 배 위로 올려놓는 바다,

 

죽음이 끓어넘치는 바다,

해가 죽어서 배 위에서 내려온다

 

기뻐서 죽겠다는 듯이 깊이 가라앉아

벌겋게 달아오른 달의 눈빛을 보았다 *

 

* 모항 

잠이 들지 않는

갯벌을 들여다보는 밤

 

칠산 앞바다

젖을 빨아대는,

 

새벽에 깨어서 젖을 보채는

초승달에게도

슬며시 젖을 갖다 물려주는,

 

보름달 우리들 엄니 *

 

* 봄 나무속으로 걸어들어간다

아무에게나 자꾸 말을 걸고 싶어지는,

불을 끄고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혼자가 아닌 우리로 피어나고 싶은 눈망울이 보이는,

어디선가 새들의 한숨 섞인 휘파람 길게 들리는,

지층을 뚫고 발바닥이 뜨거워지기를 기다리는,

청천벽력이 지나가는,

막막한 어둠의 눈에 눈동자가 되는,

너의 등을 끌어안고 활짝 웃는,

두 눈을 감고 한없이 호수의 밑바닥으로 내려가서

눈을 뜨고 죽고 싶었던,

겨울에서

이제는 한없이 바람에게 말을 걸고 싶은

봄 나무속으로 걸어서 들어간다 * 

 

* 동백꽃 지는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시가 태어나듯이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꽃들이 기뻐하듯이

가슴과 가슴사이에서 달이 떠오르듯이

절규와 절규사이에서

종소리가 울리듯이

하늘과 땅사이

천둥이 지나가듯이

 

* 겨울 메아리

죽고 //

다시 사는 일이란 //

아침에서 저녁으로 건너가는, //

이 나무에게서 저 나무에게로 건너가는, //

나의 슬픔에서 너의 슬픔으로 건너가는, //

너에게서 나에게로 //

나에게서 너에게로 //

죽음에서 이승으로 건너오는 일인 걸 //

새벽 눈발을 맞으며 //

새벽 산허리에 감기는, //

훨훨, 죽음을 넘나드는 눈발이 되어 //

한 며칠 눈사람이 되어 깊이 잠드는 일인 걸 *

 

* 외박

좀 더 쉬었다 갈게요. 하느님! //

늦게 핀 들꽃도 꽃이잖아요. //

골목 안, 평생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핀 //

이 개망초꽃 두고 갈까요? //

저 분도 바르지 않은 눈물 보이지 않으세요? //

전 이 골목 안, 저 오래된 국숫집 담 밑에 핀 //

어머니 살아 돌아오신 꽃 //

사람과 사람 사이에 //

하느님 좋아하시는 사람꽃도 피었네요. //

아직도 갈 곳 없어 다가오는 구름도, //

아, 그 아득한 첫사랑 파도도 아직 피어 있잖아요. //

저 해가 바다 너머 고요히 //

잠들기 전에 가지 않을래요. //

아무리 부르셔도 이 골목 안 //

저 사람꽃 질 때까지 //

복종하지 않을래요 //

하루만,  //

딱 하루만 사람꽃으로 피어 있을래요! *

 

* 서풍이 되어

내 모든 걸 너에게 바친다

내 말의 뿌리도

내 말의 흙도

내 말의 메마른 가슴도

내 말의 풍요한 사랑도

그 목을 바친다

꽃을 피우지 않고 바람이 되어 바친다

재를 피워 다시 꽃을 바친다 *

 

* 김수복시집[외박]-창비,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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