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그리운 나무 - 정희성

효림♡ 2013. 12. 5. 09:11

* 그리운 나무 - 정희성 

나무는 그리워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애틋한 그 마음 가지로 벋어

멀리서 사모하는 나무를 가리키는 기라

사랑하는 나무에게로 갈 수 없어

나무는 저리도 속절없이 꽃이 피고

벌 나비 불러 그 맘 대신 전하는 기라

아아, 나무는 그리운 나무가 있어 바람이 불고

바람 불어 그 향기 실어 날려 보내는 기라 *

 

* 시인

그대에게 가닿고 싶네

그리움 없이는 시도 없느니

시인아, 더는 말고 한평생

그리움에게나 가 살아라 *

 

* 한로(寒露)

찬 이슬 내렸으니 상강(霜降)이 머지않다

귀뚜라미 울음소리 벽 사이에 들리겠네

지금쯤 벼 이삭 누렇게 익었으리

아, 바라만 보아도 배부를 황금벌판!

허기진 내 사람아, 어서 거기 가야지 *

 

* 교감

전깃줄 위에 새들이 앉아 있다

어린아이가 그걸 보고서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만

"내려와아, 위험해애" *

 

* 벗이 보내온 유자를 받아들고

이사 가 짐 정리도 못했을 벗님이

보길도 집 마당 유자를 따 보냈네

임진년 동지섣달은 유난도 해서

마음 춥고 쓸쓸해 어찌 살꼬 싶은데

기산영수 어디인가 볕바른 남녘

유자 향 그윽한 겨울이 깊어가는가 *

 

* 정희성시집[그리운 나무]-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