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꽃밭 시 모음

효림♡ 2014. 8. 19. 08:30

* 꽃밭 - 김수복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힘이 자꾸 빠지는 흐린 봄날에는

작은 꽃밭 하나만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

이리저리 벌떼들이 잉잉거리는 오후

바람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갖고 싶다.

물을 뿌리고 희망을 키우는

절망하지 않는 작은 꽃밭 하나를

흐린 봄날에는 갖고 싶다.

 

* 꽃밭 - 정채봉 

하늘나라 거울로 본다면
지금 내 가슴속은
꽃으로 만발해 있을 것이다

너를
가슴 가득 사랑하고 있으니...

 

* 꽃밭의 독백 -사소단장(娑蘇斷章) -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山돼지, 매(鷹)로 잡은 山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門에 기대섰을 뿐이다.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門 열어라 꽃아. 門 열어라 꽃아. *

 

* 꽃밭 - 이상교

채송화 옆에

봉숭아,

봉숭아 옆에

백일홍,

백일홍 옆에

맨드라미,

맨드라미 옆에

접시꽃,

접시꽃 옆에

나팔꽃,

나팔꽃 옆에

해바라기,

해바라기 옆에

돌담장.

 

돌담장에

잠자리 한 마리

졸고 앉았다. *

 

* 극진한 꽃밭 - 안도현

봉숭아꽃은

마디마디 봉숭아의 귀걸이, 

 

봉숭아 귓속으로 들어가는 말씀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일 먼저 알아들으려고 매달려 있다가

달량달량 먼저 소리를 만들어서는 귀속 내실로 들여보내고 말 것 같은,

마치 내 귀에 여름 내내 달려 있는 당신의 말씀 같은, 

 

귀걸이를 달고 봉숭아는

이 저녁 왜 화단에 서서 비를 맞을까

왜 빗소리를 받아 귓불에 차곡차곡 쟁여두려고 하는 것일까  

 

서서 내리던 빗줄기는

왜 봉숭아 앞에 와서 얌전하게 무릎을 꿇고 앉는 것일까

빗줄기는 왜 결절도 없이

귀걸이에서 튀어오른 흙탕물을

빗방울의 혀로 자분자분 핥아내게 하는 것일까 

 

이 미칠 것 같은 궁금증을 내려놓기 싫어

나는 저녁을 몸으로 받아들이네 

 

봉숭아와 나 사이에,

다만 희미해서 좋은 당신과 나 사이에,

저녁의 제일 어여쁜 새끼들인 어스름을 데려와 밥을 먹이네 * 

* 안도현시집[북항]-문학동네

 

* 꽃밭 - 도종환 

내가 분꽃씨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내가 아장아장 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
내 발걸음마다 채송화가 기우뚱거리며 따라왔고
무엇을 잡으려고 푸른 단풍잎 같은 손가락을
햇살 속에 내밀 때면
분꽃이 입을 열어 나팔소리를 들려주었다

 

왜 내가 처음 본 것이 검푸른 바다 빛이거나
짐승의 윤기 흐르는 잔등이 아니라
과꽃이 진보랏빛 향기를 흔드는 꽃밭이었을까

 

민들레만하던 내가 달리아처럼 자라서
장뜰*을 떠나온 뒤에도 꽃들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사나운 짐승처럼 도시의 골목을 치달려갈 때면
거칠어지지 말라고 꽃들은 다가와 발목을 붙잡는다
슬픔에 잠겨 젖은 얼굴을 파묻고 있을 때면
괜찮다고 괜찮다고 다독이며
꽃잎의 손수건을 내민다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눈을 열어 세상을 보았을 때
거기 꽃밭이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지금도 내 옷 소매에 소박한 향기가 묻어 있는 것이 *

*장뜰-충북 증평읍의 옛이름

 

* 꽃밭을 바라보는 일 - 장석남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 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으면서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 도망온 별 몇을
꼭 나처럼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 같네.

 

* 꽃밭에는 - 문정희  
꽃밭에는
철마다 약속이 피어난다.

너는 봄에 피는 꽃
(봄꽃들은 어김없이 봄에 핀다.)

너는 폭양을 이고
여름을 사는 꽃, 또는

시인처럼 가을길에
서 있는 꽃, 너는

그렇지, 건초들과 함께
떠나가는 꽃, 너는
(갈꽃들은 어김없이 돌아간다.)

우리처럼 버티는 일 하나도 없는
아, 아름다운 자연.

 

* 저녁 꽃밭 - 이향아

내가 지금 죽으면
꽃이 될 수 있을까요//
저녁 꽃밭에 마주서면
꼭 여기쯤에서
나도 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끓던 대낮도
차일 밑으로 돌아앉은
마당 귀퉁이
씀바귀는 씀바귀로
봉숭아는 봉숭아로
황후처럼 천천히
일어서는
저녁 꽃밭//
해일 속엔 듯 잠겨서
나도 꼭
여기 쯤에서
꽃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 꽃밭 - 윤석중

아기가 꽃밭에서
넘어졌습니다.
정강이에 정강이에
샛빨간 피
아기는 으아 울었습니다.

한참 울다 자세 보니
그건 그건 피가 아니고
새빨간 새빨간 꽃잎이었습니다.

* 도라지꽃밭 - 조향미

경상북도 동로에서 충청북도 단양으로
시외버스 털털거리는 고갯길
비탈밭 가득가득 도라지꽃 피어 있네
아 탄성보다 더 놀랍게
결 고운 산중의 햇살 아래
보랏빛 흰빛 도라지꽃
무리로 무리로 피어 있네

바위 벼랑에 걸린
한 송이 도라지꽃도 놀라운 기쁨이나
저렇게 와르르 한꺼번에
피어 있는 도라지 도라지 도라지꽃밭
모여 사는 것의 아름다움
함께 웃고 함께 흔들리는
무리의 감동

인적 드문 산비탈 넘치도록
보랏빛 흰빛 담백한 도라지꽃
기우는 여름 저녁 밝히네.
 

 

* 나 하나 꽃 피어 - 조동화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


* 꽃밭 - 김종길 

말없이

간절한 목숨들이 고개 들고 있는 곳//

아 한여름 개인 오전(午前)을,//

저마다의 꽃다움을 뽐내듯,

또는 수줍어하듯,

열정적으로,

또는 소담하게,

또는 애처롭게,//

저마다의 선명한 빛깔과 모양과 몸짓을 지니고,//

혹은 한 포기 외로이,

혹은 몇 포기씩 정다웁게,

한결같이 밝고, 아름답고, 싱싱하게,//

모두 다 실상 멋있게,

혹은 며칠을

혹은 하루 만에,

시새우듯,

겨루듯 피었다가 눈물도 없이 가버릴 것들, 꽃, 꽃, 꽃들.//

잠시 못 견딜 부러움으로

황홀히 바라다본,//

아 그것은 눈부신 교향악(交響樂), 그 한 분절에,

사실은 하잘것없는 나의 관조(觀照)의 한 분절에.//

외출하기 전 짐짓 웃음지으며,

너에게 흰 모자를 벗어든다.//

꽃밭. *

* 꽃시그림집[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랜덤하우스중앙

 

* 꽃밭에 서면 - 이해인
꽃밭에 서면 큰 소리로 꽈리를 불고 싶다
피리를 불듯이
순결한 마음으로

꽈리 속의 자디잔 씨알처럼
내 가슴에 가득 찬 근심 걱정
후련히 쏟아내며
꽈리를 불고 싶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동그란 마음으로
꽃밭에 서면

저녁노을 바라보며
지는 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다

남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나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받고 싶다

꽃들의 죄 없는 웃음소리
붉게 타오르는
꽃밭에 서면 * 

* 이해인꽃시집[꽃은 흩어지고 그리움은 모이고]-분도출판사

 

* 花園帶鋤 - 강희맹  

荷鋤入花底 - 하서입화저  

理荒乘暮回 - 이황승모회  

淸泉可濯足 - 청천가탁족  

石眼林中開 - 석안림중개  

- 

호미 메고 꽃 속에 들어가

김을 매고 저물 무렵 돌아오네

발 씻기에 참 좋은 맑은 물이

숲 속 돌 틈에서 솟아나오네 *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암사 시 모음  (0) 2014.09.01
코스모스 시 모음  (0) 2014.08.25
구름 시 모음   (0) 2014.08.11
젊은 시 모음 5  (0) 2014.08.07
폭포 시 모음  (0) 2014.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