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구름 시 모음

효림♡ 2014. 8. 11. 08:30

* 구름 - 이재무  

구름으로 잠옷이나 한 벌 해 입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나무 밑

이마까지 그늘 끌어다 덮고

잠이나 잘까 영일 없었던 날들

마음속 심지 싹둑 자르고

생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적막의 심해 속 들어앉아

탈골이 될 때까지 실컷 잠이나 잘까
한 잎 이파리로 태어나

천년 바람이나 희롱하며 살까 *

 

* 구름 - 문인수  

저러면 참 아프지 않게 늙어갈 수 있겠다.

 

딱딱하게 만져지는, 맺힌 데가 없는지

제 마음, 또 뭉게뭉게 뒤져보는 중이다. *

* 문인수시집[달북]-문학의전당,2014

 

* 구름같이 - 노천명
큰 바다의 한 방울 물만도 못한
내 영혼의 지극히 작음을 깨닫고
모래 언덕에서 하염없이
갈매기처럼 오래오래 울어보았소.

어느 날 아침이슬에 젖은
푸른 밤을 거니는 내 존재가
하도 귀한 것 같아 들국화 꺾어들고
아름다운 아침을 종다리처럼 노래하였소.

허나 쓴웃음 치는 마음
삶과 죽음 이 세상 모든 것이
길이 못 풀 수수께끼이니
내 인생의 비밀인들 어이 아오.

바닷가에서 눈물짓고
이슬언덕에서 노래불렀소.
그러나 뜻 모를 인생
구름같이 왔다 가나보오.

 

* 구름 - 유치환

다시 한 번 우러러 구름을 보소

 

인정의 고움을 가리어 구름

노래인양 저렇게 세상을 수놓았나니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책장처럼 넘어가는 푸른 조석(朝夕)인데도

 

그대 곰곰이 마음 지쳤을 때는

나의 꿈꾸고 두고 간 저 구름을

 

다시 한번 조용히 우러러 보소 *

 

* 구름 - 김춘수
  구름은 딸기밭에 가서 딸기를 몇 개 따먹고 "아직 맛이 덜 들었군!"하는 얼굴을 한다.
  구름은 흰 보자기를 펴더니, 양털 같기도 하고 무슨 헝겊쪽 같기도 한 그런 것들을 늘어놓고, 혼자서 히죽이 웃어 보기도 하고 혼자서 깔깔깔 웃어 보기도 하고ㅡ
  어디로 갈까? 냇물로 내려가서 목욕이나 하고 화장이나 할까 보다. 저 뭐라는 높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서 휘파람이나 불까 보다. 

 그러나 구름은 딸기를 몇 개 따먹고 이런 청명한 날에 미안하지만 할 수 없다는 듯이, "아직 맛이 덜 들었군!"하는 얼굴을 한다.

 

* 구름과 장미 - 김춘수
저마다 사람은 임을 가졌으나

임은

구름과 장미되어 오는 것

 

눈뜨면

물위에 구름을 담아 보곤

밤엔 뜰 장미와

마주 앉아 울었노니

 

참으로 뉘가 보았으랴?

하염없는 날일수록

하늘만 하였지만

임은

구름과 장미되어 오는 것 *

 

* 구름 - 천상병
저건 하늘의 빈털터리 꽃
뭇 사람의 눈길 이끌고
세월처럼 유유하다.

갈 데만 가는 영원한 나그네
이 나그네는 바람 함께
정처 없이 목적 없이 천천히

보면 볼수록 허허한 모습
통틀어 무게 없어 보이니
흰색 빛깔로 상공(上空) 수놓네.

 

* 구름층 - 정현종

맑은 날

언뜻 언뜻 푸른 하늘이 보이는

저 구름층은 얼마나 시원한가.

가령 건물의 십팔층이나 육십오층에 비해

또 사람 세상의 이런 층 저런 층에 비해

얼마나 가볍고 환한가.

그 가벼움의 높이와

그 환함의 밀도의

폭발적인 시원함에 겨워.....

 

* 구름 - 오세영

구름은

하늘 유리창을 닦는 걸레,

쥐어짜면 주르르

물이 흐른다.

입김으로 훅 불어

지우고 보고, 지우고

다시 들여다보는 늙은 신의

호기심어린 눈빛. *
 

* 독거(獨居) - 안도현
나는 능선을 타고 앉은 저 구름의 독거(獨居)를 사랑하련다//

염소떼처럼 풀 뜯는 시늉을 하는 것과 흰 수염을 길렀다는 것이 구름의 흠이긴 하지만,//
잠시 전투기를  과자처럼 깨물어먹다가 뱉으며, 너무 딱딱하다고, 투덜거리는 것도 썩 좋아하고//
그가 저수지의 빈 술잔을 채워주는 데 인색하지 않은 것도 좋아한다, 떠나고 싶을 때 능선의 옆구리를 발로 툭 차버리고 떠나는 것도 좋아한다.//
이 세상의 방명록에 이름 석 자 적는 것을 한사코 싫어하는,//
무엇보다 위로 치솟지 아니하며 옆으로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대통령도 수도승도 아니어서 통장의 잔고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저 구름,//
보아라, 백로 한 마리가 천천히 허공이 될 때까지 허공이 더 천천히 저녁 어스름에게 자리를 내어줄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바라보기만 하는//
저 구름은, 바라보는 일이 직업이다//
혼자 울어보지도 못하고 혼자 밤을 새보지도 못하고 혼자 죽어보지도 못한 나는 그래서 끝끝내,//
저 구름의 독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

* 안도현시집[간절하게 참 철없이]-창비

 

* 구름 - 이성선
구름은 허공이 집이지만 허공엔 그의 집이 없고
나무는 구름이 밟아도 아파하지 않는다

바람에 쓸리지만 구름은 바람을 사랑하고
하늘에 살면서도 마을 샛강에 얼굴 묻고 웃는다

구름은 그의 말을 종이 위에 쓰지 않는다

꺾어 흔들리는 갈대 잎새에 볼 대어 눈물짓고
낙엽 진 가지 뒤에 기도하듯 산책하지만

그의 유일한 말은 침묵
몸짓은 비어 있음

비어서 그는 그리운 사람에게 간다
신성한 강에 쓰고 나비 등에 쓰고
아침 들꽃의 이마에 말을 새긴다

구름이 밟을수록 땅은 깨끗하다

 

* 구름과 바람의 길 - 이성선 
실수는 삶을 쓸쓸하게 한다.
실패는 생(生) 전부를 외롭게 한다.
구름은 늘 실수하고
바람은 언제나 실패한다.
나는 구름과 바람의 길을 걷는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구름은 항상 쓸쓸히 아름답고
바람은 온 밤을 갈대와 울며 지샌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길
구름과 바람의 길이 나의 길이다.  

 

* 흰 구름의 마음 - 이생진
사람은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도
땅에서 살다
땅에서 가고

구름은
아무리 낮은 구름이라도
하늘에서 살다
하늘에서 간다

그래서 내가
구름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구름은 작은 몸으로
나뭇가지 사이를 지나갈 때에도
큰 몸이 되어
산을 덮었을 때에도
산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간다

 

* 뜬구름 - 김용택
구름처럼 심심하게 하루가

간다
아득하다
이따금 바람이 풀잎들을 건들고 지나가지만
그냥 바람이다

유리창에 턱을 괴고 앉아
밖을 본다. 산, 구름, 하늘, 호수, 나무
운동장 끝에서 창우와 다희가 이마를 마주대고 흙장난을 하고 있다

호수에 물이 저렇게 가득한데
세상에, 세상이
이렇게 무의미하다니.

 

* 구름에 깃들어 - 천양희

누가 내 발에 구름을 달아 놓았다
그 위를 두 발이 떠다닌다
발 어딘가, 구름에 걸려 넘어진다
生이 뜬구름같이 피어오른다 붕붕거린다

이건 터무니없는 낭설이다
나는 놀라서 머뭇거린다
하늘에서 하는 일을 나는 많이 놓쳤다
놓치다니! 이젠 구름 잡는 일이 시들해졌다
이 구름,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구름기둥에 기대 다짐하는 나여
이게 오늘 나의 맹세이니
구름은 얼마나 많은 비를
버려서 가벼운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나를
감추고 있어서 무거운가
구름에 깃들어
허공 한 채 업고 다닌 것이
한 세기가 되었다

 

* 구름의 주차장 - 함민복

구름의 주차장에서

구름을 기다렸네

구름은 오다

구름을 버리고 흩어졌네

눈알을 달래

마음을 풀었네

눈알과 마음을 믿은 죄로

세월은 가고 나는 늙어

구름에서 멀어지고 있네

나는

나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네 *

* 함민복시집[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창비

 

* 구름 꽃 - 박종영 
봄을 보내고 동동한 8월 맞아
흰 꽃, 자주 꽃,
한 줄 무지개무늬로 웃고 있는 저거,

별빛 모아 핀 탓일까?
자욱한 안개로 솟아 하느작 거린다

칠월칠석 오작교 난간에 서린
서러운 이슬 마시고 우는가?
저토록 시린 빛깔 더 고우니
어찌 초롱꽃 시샘을 나무라랴

달빛아래 옷고름 풀고 팔랑대는
하얀 몸뚱이
너 도라지 꽃이여!
네 가슴빌려 내 임 하면 어떠랴,
갸륵한 구름 꽃아.
 

 

* 구름 - 김수복
저 구름은, 그리운 물푸레나무 머리 위에 앉았다가도 다시 햇살이 되어 해바라기 눈속에 들어가 해바라기가 되었다가 다시 해일이 되어 먼 섬 하나 들어올렸다가도 그리운 사람 마음속 무지개 되었다가, 굽이치다가, 서러운 강물 위에 누웠다가, 퍼지게 누웠다가, 몸속과 몸밖을 드나들며 한 세월 살다가 흘러가는 사람

 

* 바람과 구름 그리고 농담 - 하린 

바람과 구름을 우려먹는 기술이 필요하다 만질 수 없는 것을 갖고 노는 비법이 필요하다 이성적인 혀와 몽롱한 감각이 만들어내는 혼종의 판타지가 필요하다 바람에게는 근사한 취미가 필요하고 구름에게는 우호적인 솜사탕이 필요하다 구름의 심장을 훔치거나 바람의 목덜미를 만지는 자질이 필요하다 구름의 목구멍에 손을 넣어 박힌 가시를 꺼내고 바람의 아래턱과 윗 턱 사이에 얼굴을 집어넣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으니 나는 구름과 바람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는 시인이다 수시로 바람과 구름을 식재료로 볶고 지지고 삶고 찌는 방식이 필요하다 바람의 소문과 구름의 험담을 구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구름을 살해하고 바람을 수배하고 바람 속에 무덤을 만들고 구름의 사상을 읽어내는 경지가 필요하다 바람의 초대나 구름의 청혼을 듣는 귀가 필요하다

 

나는 언제쯤 바람의 시인 구름의 시인이라는 계급을 획득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바람 빠진 시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구름의 썩어 문드러진 살점을 삼키고 있다

바람과 구름도 모르는 백만 가지 사용법이 나에겐 필요하다
리토피아 2012년 여름호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스모스 시 모음  (0) 2014.08.25
꽃밭 시 모음  (0) 2014.08.19
젊은 시 모음 5  (0) 2014.08.07
폭포 시 모음  (0) 2014.07.29
자장가 시 모음  (0) 201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