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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초 캐는 사람 - 이동훈

효림♡ 2014. 10. 2. 18:50

* 약초 캐는 사람 - 이동훈

언젠가 일 없는 봄이 오면
약초 캐는 산사람을 따라가려 해.
짐승이 다니는 길로만 가는 그를
안간힘으로 따라붙으면
물가 너럭바위 어디쯤 쉬어가겠지.
버섯이나 풀뿌리 얼마큼을 섞어
근기 있는 라면으로 배를 불리면
마른 노래 한 소절이라도 읊게 될 것만 같아.
볕에 그을린 몸이 단단해지고
비탈을 평지처럼 걷게 되면
약초 이름도 더러 외게 되겠지.
외운 만큼 곁을 주는 건
산 아래와 다르지 않을 거고.
장마 지는 날엔
화전민 움막에 나란히 앉아
그리운 것들을 빗물로 내려 보내고
산안개 따라 도리바리 울음이라도 들릴라치면
경건한 묵상에 빠지기도 하겠지.
이따금 장터에 내려서서
도매로 물건을 넘길 때
축농증 앓는 둘째를 위해
효험 있다는 약초를 따로 챙길 것이고
어디론가 송금이 끝난 그도
술 한 잔 받아줄 것이기에
한나절, 구름처럼 둥둥 떠 있게 될 거야.
언젠가 일 놓는 봄이 오면
그 누군가를 위해
약초 캐는 사람이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