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자전거 - 김명국

효림♡ 2014. 9. 29. 08:30

* 자전거 - 김명국

 

자전거를 하나 갖고 싶다
차를 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를 비웃을지 모르지만
바퀴와 페달만 괜찮다면 브레이크만 이상 없다면
헌 자전거라도 상관없으리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얼굴이 잘생긴 것은 아니지만
눈이 노루처럼 선한
긴 생머리의 여자라면 더욱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
그 여자가 사는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날이 늘어간다면
나는 더 행복해질 수도 있으리
내가 나를 잊어버리게 참 하늘빛이 곱고도 맑은,
그녀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써서
책갈피에 꽃아두는 날도 생기게 되리

 

멀리서 본 그 여자, 복숭아꽃을 닮은 여자
새참 때 미리 맞춰 광주리 머리에 이고
논둑길 따라 걸어가는
들꽃 이름을 나보다도 더 많이 아는 여자

 

갈수록 보리가 푸르러갈 때,
저문 마을길을 자전거를 타고 내가 지나간다면
빨랫줄에 널어둔 마른 빨래를 개며
앉아서도 들길이 훤히 다 내다보이는 툇마루에서
그 여자 무슨 생각을 할까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오르는 유채꽃밭에서
유채를 꺾어먹던 시절부터
당신을 좋아했노라고, 편지에 쓸 수는 없으리
나비가 훨훨 날아드는 모습을 보고
당신 생각이  간절해졌다고,
소쩍새 우는 밤하늘에 은하수 별이 되고 싶다고
분홍색 편지지에 적을 수는 없으리

 

그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다
짐받이 뒤에 그녀를 태우고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아, 갈 수만 있다면
구름이 뭉실뭉실한 산마루 언덕까지라도
다 달려가고 싶지만
산죽밭 끼고 강물 돌아 흐르는 물가까지 가서
소풍처럼 그녀와 점심을 먹으리라

 

이것이 내 평화라고, 유토피아라고
강물에다 대고 물수제비를 띄우며
까르르, 소리지를 수도 있으리

 

자전거를 하나 갖고 싶다
그녀가 살던 엣집 마당에도 살구꽃 피고
달빛 환하게 감꽃이 털리는 밤,

 

어디든 달려갔다가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출 수 있는,
안마당에 괴어놓은 자전거 한 대가 바로
나의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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