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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 - 최서해

효림♡ 2015. 4. 2. 09:30

* 시골 소년이 부른 노래 - 최서해

 

나는
봄이면은 아버지 따라
소 끌고 괭이 메고
저 종달새 우는
들로 나갑니다.

아버지는 갈고
나는 파고
둥그런 달님이
저 산 위에 솟을 제
시내에 발 씻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어머니가 지어 놓으신
따뜻한 조밥
누이동생 끓여 놓은
구수한 된장찌개에
온 식구는 배를 불립니다.
고양이 개까지....

여름이면은 아버지 따라
호미 메고 낫 들고
저 불볕이 뜨거운
밭으로 갑니다.

아버지는 풀을 매고
나는 가라지 뽑고
한낮 몹시 뜨거운 때면
누이동생 갖다 주는
단 감주에 목 축이고
버들 그늘 냇가에서
고기도 낚습니다.

석양이면은 돌아올 때
소 먹일 꼴 한 짐
잔뜩 베어 지고 옵니다.

저녁에는
어머니가 짜서 지은
시원한 베옷 입고
온 식구 모깃불 가에
모여 앉아
농사 이야기에
밤 가는 줄 모릅니다.

이러하는 새에
앞산에 단풍이 들지요.
들에는 황금 물결이

넘쳐 흐릅니다.
아버지의 늙은 낯은
웃음에 붉고
어머니는 술 빚기에
분주합니다.
누이동생 나까지도
두루두루 기쁩니다.

머리 드린 장한 벼를
말끔 베어 치워 놓으면
누런 벼알이
많기도 많습니다.
그러나 땅 임자에게 몇 바리 실리면은
오오, 우리는 또 도로
조밥을 먹게 됩니다.

일 년내 흘린 피땀
거름 삼아 지은 벼는
도리어 사 먹게 되지요.
그리고 눈발이 흩날릴 때
어머니는 무명 매고
아버지는 신 삼고
누이동생 밥 짓고
나는 나무하고....

이리하여
아버지도 늙고
어머니도 늙고
누이동생 시집가고
나는 장가 못 들고....

아아 이것이
봄부터 겨울까지
겨울로 봄 또 겨울
내가 하는 일입니다. *

 

-가라지:강아지풀

-바리:소나 말에 싣는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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