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비 시 모음

효림♡ 2015. 7. 12. 18:05

* 비 - 백석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

 

* 비 - 천양희 
쏟아지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구에겐가 쏟아지고 싶다.
퍼붓고 싶다.

퍼붓고 싶은 것이
비를 아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
누군에겐가 퍼붓고 싶다.
쏟아지고 싶다. *

* 비 1 - 이성복 

가라고 가라고 소리쳐 보냈더니
꺼이꺼이 울며 가더니
한밤중 당신은 창가에 와서 웁니다

창가 후박나무 잎새를 치고
포석을 치고
담벼락을 치고 울더니

창을 열면 창턱을 뛰어넘어
온몸을 적십니다

 

* 비 2   - 이성복 
머리맡에 계시는 것 같아 깨어보면 바깥에 계십니다 창을 열고 내다보면
빗줄기 너머에 계십니다 지금 빗줄기 사이로 달려가면 나 없는 사이 당신은
내 방에 들어와 뽀오얗게 한숨이나 짓다가 흐트러진 옷가지랑, 이부자리랑
가지런히 매만지다가 젖어 돌아오는 내 발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가요?

 

* 비 - 최영철

비 내린다

하늘에서

내린다

물은 더

필요 없다고

내린다

너희들 먹으라고

내린다

땅이 맛있게

받아먹는다

오늘은 먹고 남아

아래로 아래로

보낸다

여기도 되었다고

쨍쨍 해 편에

돌려보낸다

 

* 이 비 - 이준규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지금 빗살무늬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너를 향하고 있다. 이 비는 지금 좋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지금 너를 향해 내리고 있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탄천에 내린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다리를 꼬고 있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순록이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겨울이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너를 위해 세운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지금 중랑천을 때린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관사를 버리고.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허기를 향한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향기인가.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지금 울고 있는가.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그치지 않는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너를 향한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너를 향했을 뿐이다. 이 비는 좋다. 이 비는 좋다. *

 

* 밤비 - 오세영 
밤에
홀로 듣는 빗소리.

비는 깨어 있는 자에게만
비가 된다.

잠든 흙 속에서
라일락이 깨어나듯
한 사내의 두 뺨이 비에 적실 때
비로소 눈뜨는 영혼.

외로운 등불
밝히는 밤.
소리 없이 몇천 년을 흐르는 강물.

눈물은
뜨거운 가슴속에서만
사랑이 된다.
 

 

* 비 - 정일근 
오랜 가뭄 끝에 듣는 즐거운 빗소리
소리에도 樂이 있어, 오동 넓은 잎에 푸른 웃음이
어린 새우마냥 톡톡 튀며 달아난다
나이 마흔 가까워서야 귀는 바늘귀만큼씩 열리고
극락암 삼소굴 추녀의 모난 각들이 땅으로 떨어지며
둥글게 풀어지는 화음 듣는다
그 화음에 말린 잎들 환하게 펴지는 소리
자연이 착한 혀를 또르르르 풀며
화답하는 소리
듣는다

 

* 여름비 - 정일근 
은현리 대숲이 비에 젖는다
책상 위에 놓아둔 잉크병에
녹색 잉크가 그득해진다
죽죽 죽죽죽 여름비는 내리고
비에 젖는 대나무들
몸의 마디가 다 보인다
사랑은 건너가는 것이다
나도 건너지 못해
내 몸에 남은 마디가 있다
젖는 모든 것들
제 몸의 상처 감추지 못하는 날
만년필에 녹색 잉크를 채워 넣는다
오랫동안 보내지 않은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사람
푸른 첫줄 뜨겁게 적어놓고
내 마음 오래 피에 젖는다 *

 

* 비 개인 여름 아침 - 김광섭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녹음(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시(詩)를 쓴다 *

 

* 비의 냄새 끝에는 - 이재무  

여름비에는 냄새가 난다
들쩍지근한 참외 냄새 몰고 오는 비
멸치와 감자 우려낸 국물의
수제비 냄새 몰고 오는 비
옥수수기름 반지르르한
빈대떡 냄새 몰고 오는 비
김 펄펄 나는 순댓국밥 내음 몰고 오는 비
아카시아 밤꽃 내 흩뿌리는 비
청국장 냄새가 골목으로 번지고
갯비린내 물씬 풍기며 젖통 흔들며 그녀는 와서
그리움에 흠뻑 젖은 살 살짝 물었다 뱉는다
온종일 빈집 문간에 앉아 중얼중얼
누구도 알아듣지 못할 혼잣소리 내뱉다
신작로 너머 홀연 사라지는 하지(夏至)의 여자 *


* 북 - 박권숙

물의 집에 당도한 짧은 저녁나절 비는
단모음만 돋았다 이응받침 반쯤 맺은
마지막 입말소리로
소고를 치고 있다

가두고 가둔 한 음절씩 아픔에 겨운 혀가
회산방죽 허공의 귀를 둥글게 밀어내는
물방울 소고 앞에서
오, 죽음이 소란하다 *

 

* 안다미로 듣는 비는 - 오태환 

 처마맡에 널어 말린 동지(冬至)께 무청처럼 간조롱히 뿌리는 비는

 

 한 치 두 치 나비 재며 한 냥쭝 두 냥쭝 저울에 달며 는실난실 날리는 비는

 

 일껏 발품이나 팔며 그늘마다 구름 기슭 볕뉘처럼 움트는 비는

 

 전당포(典當鋪)도 못 가본 백통 비녀 때깔로 새들새들 저무는 비는

 

 꺼벙아 꺼벙아 애꾸눈서껀 엿장수서껀 칠삭둥이서껀

 

 안다미로 눈칫밥 멕이다가 나무거울로 낯짝 가리고 내리는 비는 *

 

* 젖지 않는 마음 -편지 3 - 나희덕

여기에 내리고
거기에는 내리지 않는 비
당신은 그렇게 먼 곳에 있습니다
지게도 없이
자기가 자기를 버리러 가는 길
길 가의 풀들이나 스치며 걷다 보면
발 끝에 쟁쟁 깨지는 슬픔의 돌멩이 몇개
그것마저 내려놓고 가는 길
오로지 젖지 않는 마음 하나
어느 나무그늘 아래 부려두고 계신가요
여기에 밤새 비 내려
내 마음 시린 줄도 모르고 비에 젖었습니다
젖는 마음과 젖지 않는 마음의 거리
그렇게 먼 곳에서
다만 두 손 비비며 중얼거리는 말
그 무엇으로도 돌아오지 말기를
거기에 별빛으로나 그대 총총 뜨기를

 

* 비가 온다 - 김민호

비가 온다.


이쯤에서

너도 왔으면 좋겠다.


보고 싶다.
 

* 비오는 날의 일기 - 이정하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요.
하루 종일 난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 보았습니다.

 

이런 날 내 마음은
어느 후미진 찾집의 의자를 닮지요.
비로소 그대를 떠나 나를 사랑할 수 있지요.

 

안녕 그대여.....
난 지금 그대에게 이별을 고하려는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의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려는 것이지요.


당신을 만난 그날 비가 내렸고,
당신과 헤어진 날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으니.....

 

안녕, 그대여.....
비만 오면, 소나기라도 뿌리는 이런 밤이면
그 축축한 냄새로 내 기억은 한없이 흐려집니다.
그럴수록 난 당신이 그리웁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안녕 그대여.....
그대가 날 부르지 않았나요.
비가 오면 왠지 그대가 꼭 나를 불러줄 것 같아요.

 

* 빗방울 - 오규원

빗방울이 개나리 울타리에 솝-솝-솝-솝 떨어진다

빗방울이 어린 모과나무 가지에 롭-롭-롭-롭 떨어진다

빗방울이 무성한 수국 잎에 톱-톱-톱-톱 떨어진다

빗방울이 잔디밭에 홉-홉-홉-홉 떨어진다

빗방울이 현관 앞 강아지 머리통에 돕-돕-돕-돕 떨어진다 *

 

* 폭우 - 황인숙

여름 한낮의 복판을 질주하여

폭우가 쏟아진다.

나무들이 서슬 푸르게 폭우의 질주를 들려준다.

천둥이 울린다.

이웃 아이들이 신나라 소리친다.

빠방! 꽈광! 빠방!

덩달아 컹컹! 개가 짖는다.

목소리가 굵다. 덩치 큰 검은 개일 것이다.

빠방! 꽈광! 빠방!

아이들이 소리지른다.

천둥이 울리고, 폭우가 신나라 쏟아진다.

의자에 앉아 졸던 나는 멍하니 깨어나

정신없이 단빵을 물어뜯는다.

빠방! .꽈과과광! 빠방!

폭우가 쏟아진다 .

하늘 해방군의 집중 포격이다.   

 

* 신이 세상을 세탁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 윌리엄 스티저 
지난밤에 나는
하늘에서 부드러운 비를 내려
신이 이 세상을 세탁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고 아침이 왔을 때
신이 이 세상을 햇볕에 내걸어
말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모든 풀줄기 하나
모든 떨고 있는 나무들을 씻어 놓으셨다

산에도 비를 뿌리고
물결 이는 바다에도 비질을 하셨다

지난밤에 나는 신이 이 세상을
세탁하고 있음을 보았다

아, 신이 저 늙은 자작나무의 깨끗한
밑동처럼 내 혼의 오점도 씻어 주지
않으시려는지....

 

* 음호상초청우(飮上湖初晴雨) - 소식

水光潋滟晴方好  수광염렴청방호

山色空蒙雨亦奇  산색공몽우역기

欲把西湖比西子  욕파서호비서자

淡妝濃抹總相宜  담장농모총상의

-호수에서 술 마시노라니 맑다가 비가 오네

수면이 반짝반짝 맑을 때가 좋더니
산빛이 어둑어둑 비가 와도 멋지네.
서호는 월서시(西)
옅은 화장, 짙은 분 아무래도 어울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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