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석류(石榴) 시 모음

효림♡ 2015. 8. 3. 09:00

 

* 석류 - 이윤학 
올해도 열리지 않은 석류를 상상했지요
아주 오래전에 심은 것 같으나
몇 년 지나지 않은 석류나무 주위를 맴돌았지요

어느 해 봄날에
그대와 내가 심어놓은 석류나무
꽃 필 무렵엔 오지 못하고
열매 익을 무렵에 찾아와 주위를 맴돌았지요

콩새가 지저귀던 석류나무가지
내가 다가가자 콩새는 날아가고
벌어진 석류 안에
콩새가 지저귀던 소리
담겼으리라 믿었지요 * 

 

* 石榴 - 정지용 

薔微꽃 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숫불,
立春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 겨울 지난 石榴열매를 쪼기여
紅寶石 같은 알을 한알 두알 맛 보노니,

 

透明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金붕어 처럼 어린 녀릿 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 해 시월 상ㅅ달 ,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것이어니.

 

자근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조름 조는 옥토끼가 한쌍.

 

옛 못 속에 헤염치는 힌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銀실, 銀실,

 

아아 石榴알을 알알히 비추어 보며 

新羅千年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

* 정지용 전집 1 시 - 민음사 2013

 

* 석류 - 김용호

안타까이

기다리다 못해

 

그리움이 북닫쳐 터진

너 가슴속에

 

누구를 줄 양으로

그처럼 그처럼

 

사무친 알알을

감추어 두었더냐

 

* 석류 - 이영도

다스려도 다스려도

못 여밀 가슴 속을

알 알 익은 (고독)

기어이 터지는 (추청)

한 자락 가던 구름도

추녀 끝에 머문다. *

 

* 석류꽃 - 이해인  
지울 수 없는
사랑의 화인(火印)
가슴에 찍혀

오늘도
달아오른
붉은 석류꽃

황홀하여라
끌 수 없는
사랑

초록의 잎새마다
불을 붙이며 
꽃으로 타고 있네 * 

 

* 石榴꽃 - 서정주

春香이

눈썹

넘어

廣寒樓 넘어

다홍치마 빛으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비 개인

아침 해에

가야금 소리로

피는 꽃을 아시는가

茂朱 南原 石榴꽃을.....

 

石榴꽃은

永遠으로

시집가는 꽃.

구름 넘어 永遠으로

시집가는 꽃.

 

우리는 뜨내기

나무 기러기

소리도 없이

그 꽃가마

따르고 따르고 또 따르나니... *

 

* 석류 - 안도현 

마당가에 석류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서

나도 지구 위에다 나무 한 그루를 심었노라,

나는 좋아서 입을 다물 줄 몰랐지요

그때부터 내 몸은 근지럽기 시작했는데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석류나무도 제 몸을 마구 긁는 것이었어요

새 잎을 피워 올리면서도 참지 못하고 몸을 긁는 통에

결국 주홍빛 진물까지 흐르더군요

그래요, 석류꽃이 피어났던 거죠

나는 새털구름의 마룻장을 뜯어다가 여름내 마당에 평상을 깔고

눈알이 붉게 물들도록 실컷 꽃을 바라보았지요

나는 정말 좋아서 입을 다물 수 없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가을이 찾아왔어요

나한테 보라는 듯이 입을 딱, 벌리고 말이에요

가을도, 도대체 참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

* 안도현시집[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

 

* 석류 - 이가림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

 

석류(石榴) - 조운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

 

* 석류 - 상희구

아무래도 전생에
치과의사가 저이 아부지였나 보다
어쩌면 “이박음”이 이리도 촘촘할까.
이 작고도 견고한 질서.
내가 만약 빼어난 과학자라면
요 촘촘한 것들의 줄기세포만
몽땅 뽑아서
시골 꼬부랑 할망구
듬성듬성한 이빨들 싸그리 그쳐놓으리

 

* 석류 - 김민부 

불 타오르는 정열에
앵도라진 입술로
남 놀래 숨겨온
말 못할 그리움아
이제야 가슴 뻐개고
나를 보라 하더라 
*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입선작


* 석류 - 폴 발레리

알맹이들의 과잉에 못 이겨

방긋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아,

숱한 발견으로 파열한

지상(地上)의 이마를 보는 듯하다!

 

너희들이 감내해 온 나날의 태양이,

오 반쯤 입 벌린 석류들아,

오만으로 시달림받는 너희들로 하여금

홍옥의 칸막이를 찢게 했을지라도,

 

비록 말라빠진 황금의 껍질이

어떤 힘의 요구에 따라

즙 든 붉은 보석들로 터진다 해도,

 

이 빛나는 파열은

내 옛날의 영혼으로 하여금

자신의 비밀스런 구조를 꿈에 보게 한다. *

 

* 석류를 보며 - 박재삼 
한여름 내내

속으로 속으로만

익어 왔던 석류가

이 가을

하늘이 높고 햇빛이 눈부시고

바람까지 서늘한 때를 택하여

그 가슴을 빠개 놓고

다 익은 속열매를 보여

아름답기만 하구나

 

그러나 임이여

내 가슴은 보일 것이 없어

더 없이 쓸쓸하구나

 

* 어, 석류가 익었네 - 정유화 

  석류네 집 창문이 열리자 알알이 영글은 석류알들의 눈빛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윤기가 반들반들하게 빛나던지 그 눈망울 보기 위해 나뭇가지로 오르던 나의 마음도 가다 말고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석류네 집 창문에는 한 다발의 이야기가 동그랗게 매달려 있습니다. 석류네 집으로 이사를 한번 가 보고 싶습니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재미나는 이야기가 없는 이 아파트 골목을 떠나 몸만 챙겨서 이사하고 싶었습니다. 발을 들여놓을 자리라도 없다면 문간방이라도 얻어 가을 한철을 월세로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석류알 가족 중에서 어느 한 놈이 철없이 집을 뛰쳐나가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다리는 것이 재미를 지어낼 줄 아는 호젓한 그리움의 시간입니다. *

 

* 石榴나무 곁을 지날 때면 - 장석남

지난 봄에는 石榴나무나 한 그루 

심어 기르자고, 봄을 이겼다

내년이나 보리라 한 꽃이 문득 잎사귀 사이를 스며나오고는 해서

그 앞에 함부로 앉기 미안하였다

꽃 아래는 모두 낭자한 빛으로 흘러 어디 담아둘 수 없는 것이 아깝기도 했음을,

그 욕심이, 내 숨결에도 지장을 좀 주었을 듯

 

그중 다섯이 열매가 되었는데,

열매는 내 드나드는 쪽으로 가시 달린 가지들을 조금씩 휘어 내리는게 아닌가

그래 어느 날부터인가 석류나무 곁을 지날 때는

옷깃을 여미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중 하나가 깨어진 채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안팎을 다해서 깨어진 뒤라야 완성이라는 것이, 위안인, 아침이었다

그 곁을 지나며 옷깃을 여미는 자세였다는 사실은 다향한 일이었으니

스스로 깨어지는 거룩을 생각해보는 아침이었다 *

 

* 석류가 웃네 - 최승리 
석류가 웃네!

석류가 여인처럼 웃고 있네
입에 있는 것이 쏟아질 듯 위태롭지만
웃네! 웃고 웃네! 멈출 수도, 멈추게 할 수도 없네
석류가 웃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같이 웃다가도
어느새 눈물이 다 나오네 한 번 나오는 웃음을
난들 어떻게 하겠나 까짓 거 같이 거나하게
막걸리처럼 한 사발 마셔보세
밥그릇에, 국그릇에, 양푼에, 세숫대야에, 바가지에, 양동이에
담아 잔끼리 키스 한번 시켜주고 원샷!
아, 웃음 맛 한번 좋구나아~ 얼쑤―
추임새 좋고, 기분도 좋고, 얼쑤―
아, 자네도 한잔하시게 그러나
구석에 앉아서 꺼이꺼이 울고만 있지 말고
"형님들, 집안일만 하느라 웃을 일 하나 없는
우리 집사람이 생각나서 그렇다오, 이 거나한
웃음을 집사람에게 주고 싶어 그렇다오"
아, 분위기가 우울해지는데 이 일을 어째!
허허, 이 사람아!
꽃바구니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소
석류 웃음 한 바구니 갖다가 아내에게 바치면
그거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일세 아니들 그런가 하하하
어이, 이보게 그렇게 웃고만 있을 때가 아니야
웃음 나무 한 그루가 사라지고 없다네
누군가가 웃음을 뿌리째 가져갔다네
이보게, 뿌리째 웃음을 가져갔으니
그 사람 올해도 웃음은 풍년일걸세
자, 우리 거나하게 마셔보세 얼씨구나!

 

* 꽃 지는 날 - 안도현

뜰 안에 석류꽃이 마구 뚝뚝 지는 날, 떨어진 꽃이 아까워 몇 개 주워 들었더니 꽃이 그냥 지는 줄 아나? 지는 꽃이 있어야 피는 꽃도 있는 게지 지는 꽃 때문에 석류 알이 굵어지는 거 모르나? 어머니, 어머니, 지는 꽃 어머니가 나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시고, 그나저나 너는 돈 벌 생각은 않고 꽃 지는 거만 하루종일 바라보나? 어머니, 꽃 지는 날은 꽃 바라보는 게 돈 버는 거지요

석류 알만한 불알 두쪽 차고앉아 나, 건들거리고 * 

 

* 안석류(安石榴) - 최항(崔恒) 
安石香風度紛墻
緬榬擄使遠傳芳
封君肯要謨澊利
多子應順表吉祥
錦穀乍開排玉粒
金房重隔貯瓊漿
望來己失文園渴
萬點星懸映曉霜
-

석류 향기 바람 타고 담 넘어 오자
꽃 소식 전하는 이 먼 여정부터 생각하네
그대에게 맡김이 어찌 이재만을 꾀함이겠는가
자식이 많다는 것 또한 무엇보다 좋은 일이지
비단 주머니 열고 보니 옥구슬 가득하고
황금방마다 겹겹이 꿀맛을 저장했구나
바라보는 것만 즐기다 글쓰기마저 잊었는데
수많은 별 매달려 새벽 서리에 반짝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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