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난초 시 모음

효림♡ 2017. 12. 20. 08:30

 * 난초(蘭草) - 서정주

하늘이

하도나

고요하시니

 

난초는

궁금해

꽃 피는 거라 *

 

* 난초 잎 - 도종환 

난초 잎은 휘어져도

품격이 있다

꽃으로 화려하려 하지 않고

잎으로 청초하게 한 생을 살다 가는데

열 잎이 꼿꼿해도

한두 잎은 휘곤 한다

그러나 휘어져도 격을 잃지 않는다

휘어져도

저를 키운 시간을

다 버리지 않는다 *

 

* 난초 잎 - 조운

눈을 파헤치고

난초(蘭草)잎을 내놓고서

 

손을 호호 불며

드려다보는 아이

 

빨간 손

푸른 잎사귀를

움켜쥐고 싶고나 *

 

* 난초 4 - 이병기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震)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 고향난초(故鄕蘭草) - 서정주

내 고향 아버님 산소 옆에서 캐어온 난초에는
내 장래를 반도 안심 못하고 숨 거두신 아버님의
반도 채 다 못감긴 두 눈이 들어 있다.
내 이 난초 보며 으시시한 이 황혼을
반도 안심 못하는 자식들 앞일 생각타가
또 반도 눈  안 감기어 멀룩 멀룩 눈감으면
내 자식들도 이 난초에서 그런 나를 볼 것인가.

아니, 내 못 보았고, 또 못볼 것이지만
이 난초에는 그런 내 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의 눈,
또 내 아들과 손자 증손자들의 눈도
그렇게 들어 있는 것이고, 들어 있을 것인가. *

 

* 난초(蘭草) - 정지용

난초닢은
차라리 수묵색(色).//

난초닢에
엷은 안개와 꿈이 오다.//

난초닢은
한밤에 여는 담은 입술이 있다.//

난초닢은
별빛에 눈떴다 돌아 눕다.//

난초닢은
드러난 팔구비를 어쨔지 못한다.//

난초닢에
적은 바람이 오다.//

난초닢은
칩다 *

 

* 난초 - 정호승

난초에 꽃이 피지 않는다고
아버지는 불만이시다
하루는 나더러
물을 안 주고 학대하면
꽃이 핀다고
이제 난초에 물을 그만 주라고 하신다
그래도 나는

난초에 물을 자꾸 주었다
아버지 몰래 *

 

* 기쁨 - 나태주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이 흐른다. *

 

* 난초 - 
난초는
얌전하게 뽑아올린 듯 갸륵한 잎새가 어여쁘다

난초는
건드러지게 처진 청수한 잎새가 더 어여쁘다

난초는
바위틈에서 자랐는지 그윽한 돌 냄새가 난다
 
난초는
산에서 살든 놈이라 아모래도 산 냄새가 난다
 
난초는
예운림(倪雲林)보다도 고결한 성품을 지니었다

난초는
도연명보다도 청담한 풍모를 가추었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를 보고 살고 싶다

그러기에
사철 난초와 같이 살고 싶다

 

* 유령난초 - 김선우 
  향기도 빛깔도 거두고 땅밑을 흐르는 바람을 홀로 매만져주고 있을 당신 가끔 햇빛이 톰방거리며 물 건너오는 소리 그리워지는 걸 보면 땅밑에서 잎 틔우는 당신의 아름다운 독, 내 속으로 흘러들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젯밤 내 꿈 밖을 서성이다 돌아간 당신, 당신 삶은 땅밑으로 오고 내 삶은 땅 위로 오기에 뛰어나가 당신을 맞지 못했습니다 죽은 네 오빠가 흙을 헤치고 다시 나올 것만 같구나, 당신의 안부를 영영 잃을까 경계에서 피고 저무는 어머니는 올해 더욱 야위었습니다 땅밑 깊은 꽃대궁 속으로 어머니가 긴 숨을 몰아쉴 때 세계가 슬픔으로 멈칫하였습니다 몇년 만에 한번씩 당신은 땅밑에서 꽃을 피운다지요. 어머니 젖무덤에서 부화하던 바람은 언제쯤 당신의 어두운 방 앞에서 문 두드렸을까 애써 모르는 척 당신은 방문을 닫아걸고 아직 피지 않은 꽃잎 속 실핏줄을 후후 불어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태양을 등진 식물인 당신 햇빛과 물을 향해 나아가지 않도록 당신이 꿈 밖에서 어머니 맨발에 입맞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햇빛을 가리며 물밥을 던지고 나는 문 안쪽으로 숨죽였습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독을 지녔으니 내 영혼의 음지로 흘러든 독을 모아 등잔을 띄웁니다 긴 독백을 이기고 환한 등 하나 당신의 기약 없는 꽃대궁에 가 맺힐 수 있을까요 당신이 두고 간 발자국 하나 하나 따뜻한 흙으로 덮어가는 어머니의 새벽 염불소리 멈추지 않습니다

 

* 난(蘭) - 마종기

친구가 생일 선물로 놓고 간

양난(洋蘭)을 우연히 본다.

갈색이든가, 청색이든가,

어제도 우연히 보이고

내일도 우연히 보인다.

 

작은 꽃, 큰 꽃, 고운 꽃,

귀여운 꽃, 탐스런 꽃, 가녀린 꽃 중에서

색깔과 향기와 모양과 표정을 풀고

서 있는 꽃, 앉아 있는 꽃.

그 많은 전생(前生)의 기억 속에서도

언제부터 이렇게 혼자 있는 꽃.

 

볼수록 더 조용해지는 .

자기도, 나도, 그 사이도 조용해지는

세상의 모든 잊혀짐.

몇 달쯤 그 꽃잎에 누워

편안하고 긴 잠을 자고 싶은 꽃.

 

* 招凉洗蒸 - 鄭板橋[청] 

春雨春風洗妙顔 - 춘우춘풍세묘안

一辭瓊島到人間 - 일사경도도인간 

如今究竟無知己 - 여금구경무지기
打破烏盃更入山 - 타파오배경입산
-
봄비 봄바람에 아름다운 얼굴 씻고
신선의 섬 한번 떠나 인간세상에 왔네
끝내 지기를 찾지 못하면
검은 화분 깨버리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리 *

 

* 분란(蘭) - 鄭板橋[청]

春蘭​未了夏蘭開 - 춘란미료하란개 

萬事催人莫要呆 - 만사최인막요매

閱盡榮枯是盆盎 - 열진영고시분앙​

幾回拔去幾回栽 - 기회발거기회재

- 난초 화분

봄에 꽃이 핀 난초 다하기도 전에 여름 난초가 피고

세상만사가 사람을 재촉해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네

꽃 피고 시드는 것은 화분 속의 일인데

몇 번을 뽑아 버리고 또 몇 번을 심는가.

 

* 난초를 그리며(題錦城女史藝香畵蘭) - 신위(申緯)

畵人難畵恨

畵難蘭畵香

畵鄕兼畵恨

應斷畵時腸

-

사람 그림에 한(恨) 그리기 어렵고

난초 그림에 그 향기 그리기 어렵네

향기 그리고 한도 그렸으니

이 그림 그릴 때 애간장 응당 끊겼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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