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음식 시 모음 5

효림♡ 2017. 12. 1. 09:00

* 고방(庫房) -백석

낡은 질동이에는 갈 줄 모르는 늙은 집난이같이 송구떡이 오래도록 남어 있었다
오지항아리에는 삼춘이 밥보다 좋아하는 찹쌀탁주가 있어서
삼춘의 임매를 내어가며 나와 사촌은 시큼털털한 술을 잘도 채어먹었다
제삿날이면 귀머거리 할아버지가 예서 왕밤을 밝고 싸리꼬치에 두부산적을 꿰었다
손자 아이들이 파리 떼같이 모이면 곰의 발 같은 손을 언제나 내어둘렀다
구석의 나무말쿠지에 할아버지가 삼는 소신 같은 짚신이 둑둑이 걸리어도 있었다
옛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 하였다

-

집난이 -출가한 딸을 친정에서 부르는 말.

나무말쿠지 -나무로 만든 옷걸이.

임내 -흉내

둑둑이 -많이 있다

 

* 밥해주러 간다 - 유안진
적신호로 바뀐 건널목을 허둥지둥 건너는 할머니
섰던 차량들 빵빵대며 지나가고
놀라 넘어진 할머니에게
성급한 하나가 목청껏 야단친다

나도 시방 중요한 일 땜에 급한 거여
주저앉은 채 당당한 할머니에게
할머니가 뭔 중요한 일 있느냐는 더 큰 목청에

취직 못한 막내 눔 밥해주는 거
자슥 밥 먹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게 뭐여?
구경꾼들 표정 엄숙해진다. *

 

* 밥 생각 - 김기택
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올 오만가지 잡생각
머릿속이 뚱뚱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 *

 

* 논산 백반집 - 문태준
논산 백반집 여주인이 졸고 있었습니다
불룩한 배 위에 팔을 모은 채
고개를 천천히, 한없이 끄덕거리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며 왼팔을 긁고 있었습니다
고개가 뒤로 넘어가 이내
수양버들처럼 가지를 축 늘어뜨렸습니다
나붓나붓하게 흔들렸습니다
나는 값을 쳐 술잔 옆에 놔두고
숨소리가 쌔근대는 논산 백반집을 떠나왔습니다 *

* 문태준시집[먼 곳]-창비

 

* 어떤 부름 - 문태준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

* 문태준시집[먼 곳]-창비

 

* 맛있는 밥 - 박성우  
밥벌이한답시고 달포 넘게 비운 집에 든다


아내는 딴소리 없이 아이한테 젖을 물린다
허기진 나는 양푼 가득 밥을 비벼 곱절의 밥을 비운다
젖을 다 먹인 아내가 아이를 안고 몸져눕듯 웃는다
우리 아가 똥기저귀통에 비벼먹으니깐 더 맛있지?


아기도 소갈머리 없는 나도 잘 먹었다고 끄으으, 트림을 한다 *

 

* 보리밥 - 김준태

나는 뜨끈뜨끈하고도 달작지근한 보리밥이다
남도 끝의 툇마루에 놓인 보리밥이다
금이 가고 이 빠진 황토빛 툭사발을
끼니마다 가득 채운 넉넉한 보리밥이다
파리떼 날아와 빨기도 하지만
흙 묻은 입속으로 들어가는 보리밥이다
누가 부러워하고 먹으려 하지 않은
노랗디 노오란 꺼끌꺼끌한 보리밥이다
누룽지만도 못하다고 상하로 천대를 받는
푸른 하늘 밑에 서러운 보리밥이 아닌가
개새끼야 에그후라이를 먹는 개새끼야
물결치는 청보리밭 너머 폐허를 가려면
나를 먹어다오 혁대를 풀어제쳐
땀나게 맛있게 많이 씹어다오
노을녘 한참 때나 눈치 채어 삼키려는
저 엉큼한 놈들의 무변의 혓바닥을 눌러앉아
하늘 보고 땅을 보며 억세게 울고 싶은데
아이구머니나, 어느 흉년이 찾아 들어
누가 참 오랜만에 나를 먹으려 한다
보리밥인 나를 어둑어둑한 뒷구멍으로
재빨리 깊숙이 사정없이 처넣더니
그칠 줄 모르는 방귀만 잘 새어나온다고
돌아서서 다시 퉤퉤 뱉어버린다 *

* 시래기국밥 - 정윤천  

우리 할머니

염천 뙤약볕 가슴으로 거둔 산답배미 콩밭

콩밭의 콩알들일랑은 그렇게

훗날의 한 장독 가득 간장도 된장도 되고

또 우리 어머니

품 들여서 손톱 깎을 일이라곤 없었던

갈쿠손 세워 이룬 뒷전 남새밭

남새밭의 청무 푸른 잎들은

애초부터 한 줄기도 버릴 일이라곤 없어

처마귀 몇 다발의 시래기도 되고

그렇게 아둥바둥 등거리 대고 살아온

저 행색도 대물림 받은 꼬장한 고부지간에

험난한 세월의 뒤엉킴과도 같이

푸진 국솥 안에 끓고 넘쳤던

사발도 드높은 흥건한 국물 속의 

시래기 국밥 한 그릇은

그때 누구나 다 허한 속으로 건너가야 했었던

질척이는 한겨울 밤의 지난함을

쬐금은 덜 힘들게 하곤 그랬었는데

그 밥상머리가에 얽힌 식구들의 추억이

후제까지 여영 따뜻하고 그랬었는데. * 

*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시선200

 

* 시래기를 위하여 - 복효근
고집스레 시래깃국을 먹지 않던 날들이 있었다
배추나 무의 쓸데없는 겉잎을 말린 것이 시래기라면
쓰레기와 시래기가 다른 게 무엇인가
노오란 배춧속을 감싸고 있던
너펄너펄 그 퍼런 잎들
짐승 주기는 아깝고 있는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것
그 중간 아래 영하의 바람 속에서
늘 빳빳하게 언 채 널려있던 추레한 빨래처럼
궁색의 상징물로 처마에 걸려있던 시래깃두름이
부끄러워서였는지도 모른다
난 시래기로나 엮일 겉잎보다는
속노란 배춧속이거나 매끈한 무 뿌리이기만을 꿈꾸었을 것이다
세상에 되는 일 많지 않고 어느새
진입해보지도 않은 중심에서 밀려나 술을 마실 때
술국으로 시래기만한 것이 없음을 안다
내가 자꾸 중심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뛰고 있을 때
묵묵히 시래기를 그러모아
한 춤 한 춤 묶는 이 있었으리라
허물어가는 흙벽 무너지는 서까래 밑을 오롯이 지키며
스스로 시래기가 된 사람들 있었으리라
알찬 배춧속을 위해 탄탄한 무 뿌리를 위해서
시래기를 배운다
시래기는 쓰레기가 아닌 것이다

 

* 밥 먹는 법 - 정호승 

밥상 앞에

무릎을 꿇지 말 것

눈물로 만든 밥보다

모래로 만든 밥을 먼저 먹을 것

 

무엇보다도

전시된 밥은 먹지 말 것

먹더라도 혼자 먹을 것

아니면 차라리 굶을 것

굶어서 가벼워질 것

 

때때로

바람 부는 날이면

풀잎을 햇살에 비벼 먹을 것

그래도 배가 고프면

입을 없앨 것 *

 

* 식사법 - 김경미

콩나물처럼 끝까지 익힌 마음일 것
쌀알빛 고요 한 톨도 흘리지 말 것
인내 속 아무 설탕의 경지 없어도 묵묵히 다 먹을 것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떼어버리지 말 것
성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일 것

 

새삼 괜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제 명에나 못 죽는 건 아닌지 
두려움과 후회의 돌들이 우두둑 깨물리곤 해도
그깟거 마저 다 낭비해버리고픈 멸치똥 같은 날들이어도
야채처럼 유순한 눈빛을 보다 많이 섭취할 것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도 생선처럼 미끈하게

빠져나와
한 벌의 수저처럼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할 것

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의 삶, 을
잘 넘길 것 *

* 김경미시집[쉿, 나의 세컨드는]-문학동네,2006

 

* 청어구이 - 정진규 

알을 가득 밴 여치, 그 알들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그 속이 다 들여다 뵈는, 연녹색 여치를 말한 일본 사람 요시노 히로시를 오늘 아침 우리집 식탁에서 확인했다 그의 연녹색 목소리는 가벼웠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청어구이를 먹다가 청어의 알들이 청어의 대가리까지, 아가미 바로 밑까지 가득 차오른 것을 나는 보았다 목이 메어서 밥을 먹는 일을 그만두었다 물고기는 목구멍까지가 아니라 대가리까지이다 대가리는 영혼의 장소라고 믿는 버릇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뱃속까지만 차오르게 하신,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에 대하여 우리는 은총이라 할 것인가 다른 까닭이 있다 할 것인가 사람에겐! *

 

* 아구 - 김영석 

온통 입뿐이어서

웃음이 절로 나는 그놈을

저녁거리 삼아 배를 갈랐다

기분 나쁘게 미끈거리는

그 어둡고 답답한 내장 속에

아주 작고 이쁜 입을 가진

통통하게 살오른 참조기 한 마리가

온전히 통째로 들어있지 않은가
큰 입 작은 입 보글보글 함께 끓여서

오랜만에 째지게 맛있는 저녁을

아귀아귀 먹어 치우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득

저 텅 빈 허공의

주린 뱃속을 둘러보면서

더없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본다

저 광대한 허기 속에서

우리들은 시원하게 숨쉴 수도 있고

모두가 공평하게

아주 서서히 소화되는 동안

이렇게 맛있는 것들을 즐기면서

아직 살찔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 흑산도집 - 장옥관 

홍어회는 흑산도産이 제격얼치기 홍어회에 속아 본 사람들은 모두 흑산도집을 찾는다 어둠이 폐사뭉치로 굴러오는 변두리 시장

골목 덜컹거리는 유리문을 밀면 뿌연 수증기 속 맵고 찝찔한 공기, 급한 소주 몇 잔에 벌써 불콰해진 사람들 연탄 화덕의 가스가

취기를 부추긴다 주점 밖엔 구죽죽한 늦은 봄비, 흐린 불빛 밖으로 열려진 연장통 안 밀려난 어둠이 웅크리고 있다  

며칠씩 삭혀야 제 맛 난다는 홍어를 구하러 어저께 주인은 목포로 갔다 경상도 구미 땅에서 제바닥 홍어회를 먹기가 그리 쉬운 일인감 취객들은 모두 기다리는 데 이력난 사람들 오줌처럼 지린 입맛을 찾아 저녁마다 몰려든다 얼마나 삭아야 제 맛이 나는 걸까

짝 없는 젓가락이 술상 밑에 뒹글고 환풍기는 쉴 새 없이 어둠을 뿜어 낸다 두 손으로 말아 쥔 술잔 속 출렁이는 비린 바다 탁한 물결 홍어를 구하러 다로 간 주인은 아직 돌아오지 않고 더러는 고개 꺾어 제 속에 코를 박고썩어 가는 익숙한 냄새에 취하기도 한다

고향 떠난 남도 사람드는 공단 변두리 흑산도집 위엔 밤마다 홍어 떼 무리져 날아다닌다 *

 

* 복어 - 이형기 

복어는 늘 화를 내고 있다.
최근의 화는 아직 부글부글 끓고 있다.
부글부글 메탄 가스처럼
그 때문에 우스꽝스럽게 북배가 튀어나온
만화 같은 불평분자
그러나 끓고 끓어서
청산가리 13배로 농축된 그 알맹이는
창자 속에 또는 핏속에 차갑게 간직된다.
사람들은 그 진짜는 질색이다.  

세심한 주의로 모조리 제거하고
무해무득(無害無得)한 부분에만 입맛을 다신다.
그래도 속이 확 풀어진다니 천만 다행이다.
겨우 술꾼들의
속이나 풀어 주는 그 속은 아랑곳없는
이 인공(人工)의 국물 한 그릇,
오 형제여 위선의 독자여
어릴 때 나는
쓰레기통에 버려진 복어 대가리가
밤내 파란 인광을
뿜고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 *

 

* 소문난 가정식 백반 - 안성덕 
식탁마다 두서넛씩 둘러앉고
외따로이 외톨박이 하나,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내와 나를
반 어거지로 짝 맞춰 앉힌다
놓친 끼니때라 더러 빈자리가 보이는데도
참, 상술 한 번 기차다

소문난 게 야박한 인심인가 싶다가
의지가지없는 타관에서
제 식구 아닌 낯선 아낙이 퍼주는 밥을
꾸역꾸역 우겨넣으며
울컥 목이 멜지도 모를 심사를
헤아린 성싶다고 자위해본다

정읍 시외버스터미널 뒷골목 소문난 밥집
어머니뻘 늙은 안주인의 속내가
집밥 같다
잘 띄운 청국장 뚝배기처럼 깊고
고등어조림의 무 조각처럼 달다
달그락달그락,
겸상한 두 사내의 뻘쭘한 밥숟가락 소리

삼 년 묵은 갓김치가 코끝을 문득
톡, 쏜다 *  

 

* 팥죽(豆粥) - 이색(李穡)
冬至鄕風豆粥濃 - 동지향풍두죽농

盈盈翠鉢色浮空 - 영영취발색부공

調來崖蜜流喉吻 - 조래애밀류후문

洗盡陰邪潤腹中 - 세진음사윤복중

-

나라 풍속 동지에, 콩팥죽 짙게 쑤어

비취빛 주발에 그득 담으니 빛깔이 공중에 뜨는구나.

언덕에서 딴 꿀을 섞어 목구멍에 넘기면

삿된 기운 다 씻어내어 뱃속을 따뜻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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