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국수 시 모음

효림♡ 2017. 10. 25. 09:00

* 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음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 

* 이상국시집[집은 아직 따뜻하다]-창비


 

* 옛날 국수 가게 - 정진규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 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

* 정진규시집[본색]-천년의시작  

 

* 국수 - 이재무

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 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

* 이재무시집[저녁 6시]-창비

 

* 국수 - 박후기

늦은 밤

눈 내리는 포장마차에 앉아

국수를 말아먹는다

국수와 내가

한 국자

뜨거운 국물로

언 몸을 녹인다

얼어붙은 탁자 위에서

주르륵

국수 그릇이 미끄러지고

멸치국물보다

싱거운 내가

나무젓가락의 가랑이를 벌리며

승자 없는 싸움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

부침개처럼

술판이 뒤집어진다

엎어진 김에

쉬어가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막차가 도착하기 전

미혹에 걸려 넘어진 마음

다시

일으켜세워야 한다

 

* 잔치국수 - 이해인

삶은 하나의 축제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잔치국수를 먹다 보면

외로운 이웃을 불러 모아

큰 잔치를 하고 싶네

우정의 길이를 더 길게 늘려서

넉넉한 미소로 국수를 삶아

대접하고 싶네

쫄깃쫄깃 탄력 있는

기쁨과 희망으로

이웃을 반기며

국수의 순결한 길이만큼

오래 오래 복을 빌어주고 싶네 *

 

* 부여 옛날 국수집 - 유종인 

흰 버들가지 같은 면발들 건조대에 내걸렸다
저 안에서 어떤 허기가
수렴청정하듯 배부른 말을 가르치실까

 

옛날에 나는 오늘을 살 줄 알았을까 보다
옛사람도 출출하여 오늘을 다 못 사셨을까 보다
뱃구레가 꺼져버린 지 언젠데
출출함은 죽음도 내치지 못한 몸종인 듯
그예 국숫집 골목으로 곡두 양반들 걸어든다

국숫집 쥔장은 묵묵하다 익반죽만 한다
아내의 새색시 적 부끄러운 속살을 넣고 치대도
옛날은 옛날이라 호시절은 잘 뽑아지지 않는다
국숫집 주인은 잘 마른 국수 다발에
드륵드륵 칼을 들이댄다

그예 소식이 없던 당신도
부여 국숫집 문간에
옛날 돈을 들고 서 있다

 

* 국수집 - 윤의섭  
말간 국수집 강릉 가는 길가에 갑자기 솟아난 섬처럼 놓여 있는
국수나무 바람에 잠깐씩 깨어나는 마당 인적 없어도
한 방 가득 복작거리는 천지간 국수집
질긴 면발은 가장 늙은 지층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에선 국수비가 쏟아지는가
희뿌옇게 김 서린 유리창 너머
한 입 가득 국수를 머금은 채 웃고 있는 사람
덩그렇게 앉아 있는 하얀 소복 국수사리
곧 폭설이 몰아칠 것이다

여기 와서야 넋 놓고 겨울 진경을 보자 했구나
동지 석 달은 한 그릇 말아 벌써 먹어 치웠어
길이 끊기겠지
한 가닥 모질게 남은 면발이 아직 이어져 있는 것도 같아
선한 눈매가 지워지지 않은 얼굴이었다
오랜만이지

누가 어디 다녀왔냐길래
소스라치게 놀란다
바람이 한 꺼풀 걷혔지만 설산은 그대로였고
말간 국물에 한소끔 먹먹히 잠겨 있는 저녁나절 *

* 윤의섭시집[마계]-민음사 

 

* 국수 - 강대실 

고향 찾아 갈 때는

관방제 초입 포장 친 집에 들러

국수 한 대접 하고 간다

처마 밑 비집고 들어서

틈서리 목로에 자리 잡고 앉으면

국수 한 그릇 꼬옥 먹고 잡더라만

그냥 왔다 시며

허리춤에 묻어 온 박하사탕

몰려 든 자식들에게 물리시던 어머니

흔흔한 미소 뒤에 갈앉힌

허기진 그 모습

원추리 새순처럼 솟아

국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배고픔 대신 채우고 간다 *

 

* 칼국수 - 김종제

불같이 화가 나서

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는데

칼국수만한 게 어디 있을까

밀가루를 얇게 반죽을 해서

칼로 죽죽 찢어 한 냄비 끓이면서

굵은 바지락 몇 개 집어넣고

파 숭숭 잘라넣고

잘게 썰은 매운 고추에

붉은 고춧가루를

한 숟가락 풍덩 빠뜨린 다음에

흐물흐물해진 칼을 후후 불면서

방금 버무린 김치와 엮어

입안으로 넘기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인데

굳었던 혀가 얼얼해지고

뻣뻣한 뒷목이 허물어지면서

얼굴에 땀방울이 돋아나기 시작하는데

그릇을 통째 들고

뜨겁게 달아오른 저 붉고 푸른 국물을

목구멍으로 한 모금 넘기면

눈앞이 환해지면서

온몸에 칭칭 감긴 쇠사슬이 풀어지는데

뼈가 나긋나긋해지고

눈물이 절로 나는 것인데

칼국수 다 비우고

뜨거워진 마음을

빈 그릇에 떡 하니 올려놓는 것이다

 

* 비빔국수를 먹으며 - 목필균

동대문 시장

옷가게와 꽃가게 사이

비좁은 분식집에서

비빔국수를 먹는다

혼자 먹는 것이 쑥스러워

비빔국수만 쳐다보고 먹는데

푸른빛 상추, 채질된 당근

시큼한 김치와 고추장에 버물려진

국수가 맛깔스럽다

버스, 자가용,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뒤엉킨 거리

옷감 파는 사람과 박음질하는 사람

단추, 고무줄, 장식품을 파는

크고 작은 상점이 빼곡한 곳

가난과 부유가 버물려져 사는

동대문 시장

가족과 동료, 시댁과 친정

세월의 수레바퀴 속에

나와 버물려져 사는 사람들

새콤하고 달콤하고 맵고

눈물 나고 웃음 나고

화나고 삐지고 아프고

그렇게 버물려진 시간들

울컥 목구멍에 걸린다

 

* 황홀한 국수- 고영민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 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은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 갔으면 좋겠다

 

* 봉평에서 국수를 먹다 - 이상국
봉평에서 국수를 먹는다
삐걱이는 평상에 엉덩이를 붙이고
한 그릇에 천원 짜리 국수를 먹는다
올챙이처럼 꼬물거리는 면발에
우리나라 가을 햇살처럼 매운 고추
숭숭 썰어 넣은 간장 한 숟가락 넣고
오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며 국수를 먹는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들
또 어디선가 살아본 듯한 세상의
장바닥에 앉아 올챙이국수를 먹는다
국수 마는 아주머니의 가락지처럼 터진 손가락과
헐렁한 티셔츠 안에서 출렁이는 젖통을 보며
먹어도 배고픈 국수를 먹는다
왁자지껄 만났다 흩어지는 바람과
흙 묻은 안부를 말아 국수를 먹는다 

 

* 국수 - 장석주

지느러미도 깃털도 없는 나를 위해

노모가 점심 식사를 내오셨다.

직립인의 고요한 식욕에 부응하는 이것,

뼈도 근육도 없는 이것,

비늘을 가졌거나 가시를 가진 것도 아닌 이것,

두드리고 때려 단련시켰건만

물과 만나 허수히 무너지는 이것,

여럿이되 하나고

단순하되 극적인 이것,

한 끼니의 편이,

미끈거리는 촉감의 허영심,

오랜 명망과 혁명의 동지들,

가느다란 養生의 꿈들!

 

* 뚝방 국수 - 손택수

대나무 가지에 국수 줄기를 널어말린다

 

멸치 육수 우리는 냄새에 강물도 둑을 넘을 때는 꼴깍

침 넘기는 소리를 내며 흐르는 뚝방

 

소쿠리 팔러다니는  할미와

어린 손주아이가 부은 발을 어루만지며 기다리던 음식이다

 

먼 항구로 일 나간 내 아비와 어미가

두고 온 아이를 생각하며 먹던 국수

 

팔려가는 어미를 따라온 송아지 젖꼭지를 물고 울던 천변엔

그치지 않는 물소리가 있다

 

뚝, 막을 수 없는 설움까지 몇 그릇씩 뚝딱

비워내던 강둑이 있다

 

관방제림 그늘 긴 식도 따라 후루룩 빨려들어간다

나뭇가지에 감긴 강물도 면발처럼 미끈하게 흘러내리는 뚝방 국수

 

* 칼국수 - 문인수 

어머니, 여름날 저녁 칼국수 반죽을 밀었다
둥글게 둥글게 어둠을 밀어내면
달무리만하게 놓이던 어머니의 부드러운 흰 땅
나는 거기 살평상에 누워 별 돋는 거 보았는데
그때 들에서 돌아온 아버지 어흠 걸터앉으며
물씬 흙 냄새 풍겼다 그리고 또 그렇게
솥 열면 자욱한 김 마당에 깔려.....아 구름 구름밭
부연기와 추녀 끝 삐죽히 날아 오른다


이 가닥 다 이으면 통화가 될까
혹은 긴 긴 동앗줄의 길을 놓으며
나는 홀로 무더위의 지상에서 칼국수를 먹는다 *
* 문인수시집[홰치는 산]-천년의 시작

 

'시인 詩 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초 시 모음   (0) 2017.12.20
음식 시 모음 5  (0) 2017.12.01
지리산 시 모음 2  (0) 2017.10.10
사랑 시 모음 2   (0) 2017.09.29
짧은 시 모음 6  (0) 2017.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