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 오상순

효림♡ 2018. 2. 26. 09:00

* 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 -아시아의 진리는 밤의 진리다 - 오상순

 

아시아는 밤이 지배한다. 그리고 밤을 다스린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의 상징이요, 아시아는 밤의 현실이다.
아시아의 밤은 영원의 밤이다. 아시아는 밤의 수태자(受胎者)이다.
밤은 아시아의 산모요, 산파이다.
아시아는 실로 밤이 낳아준 선물이다.
밤은 아시아를 지키는 주인이요, 신이다.
아시아는 어둠의 검이 다스리는 나라요, 세계이다.

아시아의 밤은 한없이 깊고 속 모르게 깊다.
밤은 아시아의 심장이다. 아시아의 심장은 밤에 고동한다.
아시아는 밤의 호흡기관이요, 밤은 아시아의 호흡이다.
밤은 아시아의 눈이다. 아시아는 밤을 통해서 일체상(一切相)을 뚜렷이 본다.
올빼미처럼
밤은 아시아의 귀다. 아시아는 밤에 일체음(一切音)을 듣는다.
밤은 아시아의 감각이요, 감성이요, 성욕이다.
아시아는 밤에 만유애(萬有愛)를 느끼고 임을 포옹한다.
밤은 아시아의 식욕이다. 아시아의 몸은 밤을 먹고 생성한다.
아시아는 밤에 그 영혼의 양식을 구한다.

맹수처럼.....
밤은 아시아의 방순(芳醇)한 술이다. 아시아는 밤에 취하여 노래하고 춤춘다.

밤은 아시아의 마음이요, 오성(悟性)이요, 그 행(行)이다.
아시아의 인식도 예지도 신앙도 모두 밤의 실현이요, 표현이다.
오ㅡ 아시아의 마음은 밤의 마음.....

아시아의 생리계통과 정신체계는 실로 아시아의 밤의 신비적 소산인저ㅡ,
밤은 아시아의 미학이요, 종교이다.
밤은 아시아의 유일한 사랑이요, 자랑이요, 보배요, 그 영광이다.
밤은 아시아의 영혼의 궁전이요, 개성의 터요, 성격의 틀이다.
밤은 아시아의 가진 무친장의 보고이다. 마법사의 마술의 보고(寶庫)와도 같은ㅡ.
밤은 곧 아시아요, 아시아는 곧 밤이다.
아시아의 유구한 생명과 개성과 성격과 역사는 밤의 기록이요.
밤 신(神)의 발자취요, 밤의 조화요, 밤의 생명의 창조적 발전사ㅡ.

보라! 아시아의 산하대지와 물상과 풍물과 격(格)과 문화ㅡ.
유상(有相) 무상(無相)의 일체상(一切相)이 밤의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이 있는가를,


아시아의 산맥은 아시아의 물의 리듬을 상징하고 아시아의 물의 리듬은 아시아의 밤의 리듬을 상징하고.....
아시아의 말들의 칠흑빛 같은 머리의 흐름은 아시아의 밤의 그윽한 호흡의 리듬.

한 손으로 지축을 잡아 흔들고 천지를 함토(含吐)하는 아무리 억세고 사나운 아시아의 사나이라도 그 마음 어느 구석인지

숫처녀의 머리털과 같이 끝 모르게 감돌아드는 밤물결의 흐름 같은 리듬의 곡선은 그윽이 서리어 흐르나니ㅡ.

 그리고 아시아의 아들들의 자기를 팔아 술과 미와 한숨을 사는
호탕한 방유성(放遊性)도 감당키 어려운 이 밤 때문이라 하리라.
밤에 취하고, 밤을 사랑하고, 밤을 즐기고, 밤을 탄미(嘆美)하고, 밤을 숭배하고

밤에 나서 밤에 살고, 밤 속에 죽는 것이 아시아의 운명인가.

 아시아의 침묵과 정밀(靜謐)과 유적(幽寂)과 고담(枯淡)과 전아(典雅)와 곡선과 여운과

현회(玄晦)와 유영(幽影)과 후광과 또 자미(滋味), 제호미(醍醐味)는 아시아의 밤신들의 향연의 교향곡의 악보인저ㅡ.
오ㅡ 숭엄하고 유현(幽玄)하고 신비롭고 불가사의한 아시아의 밤이여!

태양은 연소(燃燒)하고 자격(刺激)하고 과장하고 오만하고 군림하고 명령한다.
그리고 남성적이요, 부격(父格)이요, 적극적이요, 공세적이다.
따라서 물리적이요, 현실적이요, 학문적이요, 자기중심적이요 투쟁적이요, 물체적이요, 물질적이다.
태양의 아들과 딸은 기승하고 질투하고 싸우고 건설하고 파괴하고 돌진한다.
백일하에 자신있게 만유를 분석하고 해부하고 종합하고 통일하고
성(盛)할 줄만 알고 쇠(衰)하는 줄 모르고 기세 좋게 모험하고 제작하고 외치고 몸부림치고 피로한다.
차별상(差別相)에 저회(低廻)하고 유(有)의 면(面)에 고집한다.
여기 뜻 아니 한 비극의 배태(胚胎)와 탄생이 있다.

 

달은 냉정하고 침묵하고 명상하고 미소하고 노래하고 유화(柔和)하고 겸손하고 애무하고 포옹한다.

여성적이요, 자모적(慈母的)이요, 수동적이요, 수세적이요, 몽환적이요, 심령적이다.

따라서 현실에 양보하고 몰아적(沒我的)이요, 희생적이요, 예술적이요, 정신적이요, 애타적(愛他的)이요, 평화적이다.

달의 아들과 딸은 시고 떫고 멋지고 집지고 야취(野趣)있고 운치있고 아치(雅致)있고

천친하고 청초하고 전아(典雅)하고 윤택하고 공상(空想)하고 회의하고 반성하고 사랑하고 생산한다.

일체를 정리하고 조절하고 조화하고 영원히 피로를 모른다.

차별상(差別相)에 고답(高踏)하고 혼융(渾融)하고, 그리고 무(無)의 바다에 유영(游泳)하고 소일한다.

아시아의 미가 전적이요, 단적(端的)이요, 고답적이요, 착고(蒼古)하고 몽환적임은

아시아의 밤의 달빛이 스며 있는 까닭이다.

 

밤과 달을 머금은 미가 아시아의 미다.

 

태양이 지배하는 나라의 버드나무가 태양의 열(熱)을 받고 그 기운에 끄을려 하늘을 꿰뚫을 듯이

넓고 넓은 벌판에 씩씩하게 소리치며 향상(向上)하고 엄연히 서 있을 제

수변(水邊)에 기도드리듯이 머리 숙이고 경건히 서 있는 동방의 버드나무를 보라.

밤의 정기(精氣)와 달빛과 이슬의 사랑에 젖어

묵묵히 감사드리며 물의 흐름을 따라 땅으로 땅으로 드리운다.

 

아시아의 마음은 일광 밑에 용솟음치는 화려한 분수보다도 밤 어둠 속에 어디서인지 모르게 들릴 듯 말 듯,

그윽이 잔잔히 흐르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즐겨하고,

서리는 향수보다도, 물속에 천 년 묵은 침향(沈香)을 사랑하며

꽃을 보고 그 아름다운 색에 취하기보다 꽃의 말 없는 말을 들으려 하고,

흙의 냄새를 맡고 숨은 정욕을 느끼기보담, 흙의 마음을 만지려 한다.

 

장엄한 해나 달ㅡ 그것에 보다도 오월 신록의 나뭇잎을 세며 미풍에 고히 흔들려 어른거리며 노니는

따위의 일광의 그림자나 월광의 그림자의 춤의 운율과 여운에, 그 심장이 놀라며 영혼이 잠 깨는 아시아의 마음ㅡ.

낮에 눈 뜨기를 게을리하고 밤에 눈 뜨기를 부지런히 하나니, 사물의 진상, 마음의 실상(實相)ㅡ. 보는 자 자신을 보기 위함이라.

아시아의 마음은

태양보다 더 밝은 자를 어둠 속에 찾으려 하며

밑 없는 어둠의 밑을 꿰뚫으려 한다.

아시아의 안목은

태양에 눈 부시는 자도 아니요, 어둠에 눈 어둔 자도 아니요, 어둠에 조으는 자도 아니요, 실로 어둠 속에 잠 깨는 자이다.

 

어둠의 잠들 제 아시아는 타락한다.

지금의 아시아는 어둠에 잠들었다.

어둠의 육체적 고혹(蠱惑)에 빠져, 취생몽사하는 수면상태이다.

 

태양보다 더 밝은 자ㅡ 밤보다 더 어둔 자는 무엇이며, 그 정체는 무엇이며, 어디 있느냐.

이 물음이 실로 아시아의 교양이요, 학문이요, 영원한 숙제요, 과제이다.

 

아시아의 교양은 밤의 교양이요, 밤의 단련이요, 밤 자신의 자기극복이오 초극이다.

오, 밤 자신의 자기 해탈은 무엇이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현되고 실천되느냐ㅡ.

여기에 아시아의 교양의 중심안목(中心眼目)이 있다.

 

이는 자기가 밤 자신이 되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답할 최후구경(最後究竟)의 물음이다

이를 입으로 물을 때 묻는 자의 입은 찢어지고

이를 마음으로 답할 때 답하는 자의 마음은 부서진다.

여기 아시아의 비극적 기적적 운명이 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냐.

오, 이 무엇이란 무엇을 폭파하라.

그 무엇의 벽력으로 이 문(問)과 답을 동시에 쳐부수라. 이에 묻는 자는 곧 답하는 그 자이다.

 

오, 아시아의 비극적 기적!

그리 아니 하려 하되 아니할 수 없고, 이리 아니 되려 하되 아니 될 수 없음이, 곧 아시아의 어찌할 수 없는 숙명이어니

용감히 대사일번(大死一番), 이 영원의 숙명을 사랑하자.

오, 무(無)의 상징인 기나긴 몽마(夢魔) 같은 아시아의 밤이여, 사라지라.

오, 유(有)의 상징인, 아니 무의 상징인 태양아 꺼지라.

아시아의 기적은 깨지고 불가사의의 비부(秘符)는 찢어진다.

보라! 이것이 아시아의 밤 풍경 제1장이다. *

 

* 오상순시집[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시인생각,2012

'좋아하는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꽃 - 곽재구  (0) 2018.03.02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 함형수  (0) 2018.02.28
비단 안개 - 김소월  (0) 2018.01.08
철길 - 김정환  (0) 2018.01.02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 황인숙  (0) 2017.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