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詩

배꽃 - 곽재구

효림♡ 2018. 3. 2. 09:00

* 무화과 - 곽재구

먹감색의
작은 호수 위로
여름 햇살
싱싱하다
어릴 적엔 햇살이 나무들의 밥인 줄 알았다
수저도 없이 바람에 흔들리며 천천히 맞이하는 나무들의 식사시간이 부러웠다
엄마가 어디 가셨니?
엄마가 어디 가셨니?
별이 초롱초롱한 밤이면
그중의 한 나무가
배고픈 내게 물었다 *

* 곽재구시집[와온 바다]-창비,2012

 

* 배꽃 

배꽃들은 황토산 자락에

연분홍 첫사랑의 숨결을 토해놓지

 

포옹하는 법

입맞춤하는 법

한없이 서툴어도

가슴의 뜨거움 하나로

황토산 자락 억세게 끌어안지

 

한번 들어봐

무릎 꿇고

귀 깊게 대고

어디서 피가 끓는지

어디서 슬픔의 그늘이 드리우는지

누구의 뼈가 제일 먼저 강을 건너는지

 

바보 같은 웃음

바보 같은 사랑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행복한 것인지

 

어깨 으스러질 듯

못생긴 산과 하늘 부둥켜안으며

배꽃들은

황토산 자락에

연분홍 첫사랑의 숨결을 토해놓지. 

곽재구시집[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

 

* 민들레 꽃씨들은 어디로 -연화리 시편9   
그 날
당신이 높은 산을
오르던 도중
후,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릴없이
무너지는 내 마음이
파, 하고 바람에 날려보낸
그 많은
민들레 꽃씨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곽재구시집[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

 

* 백합 -연화리 시편27   

당신이 고통으로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당신이 주체할 수 없는 정신의 방황으로

아름다운 긴 머리칼마저 흐트러뜨릴 때

내 마음의 뜨거운 골짜기에서

진실로 순결한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어느 날

당신은 나를 떠나겠지요

내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찬란한 바다

모든 파도가 슬픔으로 술렁이는

그날도 내 마음의 깊은 골짜기에

백합 한 송이 피어납니다. *

곽재구시집[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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