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봄밤 시 모음

효림♡ 2018. 4. 6. 09:00

* 봄밤 - 박형준

달에서 아이를 낳고 싶다

누가 사다리 좀 다오

 

홀로 빈방에 앉아

앞집 지붕을 바라보자니

바다 같기도 하고

생각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물결 같기도 하고

 

달이 내려와

지붕에 어른거리는 목련,

꽃 핀 자국마다 얼룩진다

이마에 아프게 떨어지는 못자국들

누구의 원망일까

 

조용히

나무에 올라 발자국을 낳고 싶다 *

* 박형준시집[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창비,2002

 

* 봄밤 - 김소월

실버드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릿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 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았지 않는가.

소리도 없이 바람은 불며, 울며 한숨지어라
아무런 줄도 없이 섧고 그리운 새카만 봄밤
보드라운 습기는 떠돌며 땅을 덮어라.
*

* 김소월시집[진달래꽃]-미래사,1996

 

* 봄밤 - 이면우
늦은 밤 아이가 현관 자물통을 거듭 확인한다  
가져갈 게 없으니 우리집엔 도둑이 오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아이 눈 동그래지며, 엄마가 계시잖아요 한다  
그래 그렇구나, 하는 데까지 삼 초쯤 뒤 아이 엄마를 보니  
얼굴에 붉은 꽃, 소리없이 지나가는 중이다 *

 

* 봄밤 - 김수영(金洙映)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 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    

*[김수영 전집]-민음사

 

* 봄밤 - 안상학

안동 살 땐 친한 친구가 툭하면 서울 가는 것 같더만
서울 와서 살아보니 그 친구 자주 안 오네

서울 와 살아보니 서울 친구들도 다 이해가 가네
내 안동 살 땐 어쩌다 서울 오면
술자리 시작하기 바쁘게 빠져나가던 그 친구들
그렇게 야속해 보이더니만
서울 살아보니 나도 술자리 시작하기 무섭게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네

안동 어디 사과꽃 피면 술 마시자던 그 약속 올봄도 글렀네
사과꽃 내렸다는 소식만 날아드는 봄밤 *

 

* 봄밤 - 안도현

내 마음 이렇게 어두워도

그대 생각이 나는 것은

그대가 이 봄밤 어느 마당가에

한 그루 살구나무로 서서

살구꽃을 살구꽃을 피워내고 있기 때문이다

나하고 그대하고만 아는

작은 불빛을 자꾸 깜박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

* 봄밤안현미  

봄이고 밤이다

목련이 피어오르는 봄밤이다

 

노천까페 가로등처럼

덧니를 지닌 처녀들처럼

노랑 껌의 민트향처럼

모든 게 가짜 같은

도둑도 고양이도 빨간 장화도

오늘은 모두 봄이다

오늘은 모두 밤이다

 

봄이고 밤이다

마음이 비상착륙하는 봄밤이다

 

활주로의 빨간 등처럼

콧수염을 기른 사내들처럼

눈깔사탕의 불투명처럼

모든 게 진짜 같은  

연두도 분홍도 현기증도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오늘은 모두 비상이다

 

사랑에 관한 한 우리는 모두 조금씩 이방인이 될 수 있다

그해 봄밤 미친 여자가 뛰어와 내 그림자를 자신의 것이라 주장했던 것처럼 *

* 안현미시집[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창비,2014

 

* 봄 밤 - 김용택

말이 되지 않는

그리움이 있는 줄 이제 알겠습니다

 

말로는 나오지 않는 그리움으로

내 가슴은 봄빛처럼 야위어가고

 

말을 잃어버린 그리움으로

내 입술은 봄바람처럼 메말라갑니다

 

이제 내 피는

그대를 향해

까맣게 다 탔습니다 *

* 김용택시집[참 좋은 당신]-시와 시학사,2007

 

* 春夜 - 蘇軾  

春宵一刻直千金 - 춘소일각치천금          

花有淸香月有陰 - 화유청향월유음          

歌管樓臺聲寂寂 - 가관누대성적적          

楸韆院落夜沈沈 - 추천원락야침침 
* 봄밤 

봄밤 한순간은 천금의 가치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림자

풍악소리 들리던 누대는 고요하고

그네 타던 정원에는 밤이 깊이 깔리네 * 

* 김용택의 한시 산책-화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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