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파도 시 모음

효림♡ 2018. 8. 1. 09:00

* 파도 - 신달자
누가 저렇게 푸른 종이를 마구잡이로 구겨 놓았는가
구겨져도 가락이 있구나
나날이 구겨지기만 했던
생의 한 페이지를
거칠게 구겨 쓰레기통에 확 던지는
그 팔의 가락으로
푸르게 심줄이 떨리는
그 힘 한 줄기로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궁극의 힘 *

 

* 파도 - 강은교
모래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바닷가
나는 보았습니다.
파도들이 달려올 때는 옆 파도와 단단히
어깨동무한다는 것을
손에 쥔 하얀 거품이
모래밭을 덮는다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온몸을 하얀 거품 손에 감춘다는 것을
파도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 파도 - 신경림
어떤 것은 내 몸에 얼룩을 남기고
어떤 것은 손발에 흠집을 남긴다
가슴팍에 단단한 응어리를 남기고
등줄기에 푸른 상채기를 남긴다
어떤 것은 꿈과 그리움으로 남는다
아쉬움으로 남고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고통으로 남고 미움으로 남는다
그러다 모두 하얀 파도가 되어 간다
바람에 몰려 개펄에 내팽개쳐지고
배다리에서는 육지에 매달리기도 하다가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수평선 너머
그 먼 곳으로 아득히 먼 곳으로
모두가 하얀 파도가 되어 간다

 

* 파도 - 정호승
마른 멸치처럼 구부러진

구순의 아버지

팔순의 어머니하고

멸치를 다듬는다

떨리는 손으로

파도에 넘어지면서

멸치 대가리는 떼라는데

왜 자꾸 안 떼느냐며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팔고 있느냐고

구박을 받으면서

파도에 자꾸 넘어지면서 * 
 

* 파도와 놀다 - 정호승
라면을 끓여먹고 맨발로 저녁 바닷가로 나갔다
해가 떠오르듯 수평선 너머로 두둥실 보름달이 떠오른다
파도에 발을 담그자 달빛이 발가락까지 와서 잔잔히 부서진다
흰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주머니들이 촛불을 켜놓고 북을 치면서
바다를 향해 자꾸 절을 한다
엄마 없는 나는 밤새도록 파도와 혼자 놀았다 

 

* 파도 - 이명수

쓰러지는 사람아 바다를 보라

일어서는 사람아 바다를 보라

쓰러지기 위해 일어서는

일어서기 위해 쓰러지는

현란한 반전

슬픔도 눈물도 깨어 있어야 한다 *

* 이명수시집[백수광인에게 길을 묻다]-책만드는집

 

* 파도 - 이경림   

내사 천날만날 내 혼자 설설 기다가

절절 끓다가 뒤로 벌렁 자빠지다가

엉덩짝이 깨지도록 엉덩방아를 찧어보다가

꾸역꾸역 다시 일어서다가

오장육부 쥐어뜯으며 해악도 부려보다가 급기야는

절벽 같은 세상 지 대가리 찧으며 대성통곡도 해 보지만

우짜겠노 남는 건 뿌연 물보라 뿐인기라

일년하고 삼백날 출렁이지 않는 날 메날이나 되것노마는

그래도 우짜다 함뿍 거짓처럼 바람자고 쨍한 햇살에 바스스

젖은 가슴 꺼내 말리는 날 있어

이 싯푸른 희망 한 둥치 놓을 길 없나니 *

 

* 파도 - 조오현 
밤늦도록 불경(佛經)을 보다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먼 바다 울음소리를
홀로 듣노라면
천경(千經) 그 만론(萬論)이 모두
바람에 이는 파도란다 *

 

파도 - 신석정  

갈대에 숨어드는

소슬한 바람

9월이 깊었다.  

철 그른

뻐구기 목멘 소리

내가 잦아 타는 노을

 

안쓰럽도록

어진 것과

어질지 않은 것을 남겨 놓고

이대로

차마 이대로

눈 감을 수도 없거늘

 

살을 닮아

입을 다물어도

자꾸만 가슴이 뜨거워

오는 날은

 

소나무 성근 숲너머

파도 소리가

유달리 달려드는 속을

 

부르르 떨리는 손은

주먹으로 달래 놓고

파도 밖에 트여 올 한 줄기 빛을 본다.

* 양병호저[그리운 詩, 여행에서 만나다]-박이정

 

* 파도 - 김현승  

아, 여기 누가
술 위에 술을 부었나
이빨로 깨무는
흰 거품 부글부글 넘치는
춤추는 땅―바다의 글라스여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언어는 선박처럼 출렁이면서
생각에 꿈틀거리는 배암의 잔등으로부터
영원히 잠들 수 없는
아, 여기 누가 가슴을 뿌렸나
 

아, 여기 누가
性보다 깨끗한 짐승들을 몰고 오나
저무는 도시와
병든 땅엔
머언 수평선을 그어 두고
오오오오 기쁨에 사나운 짐승들을
누가 이리로 몰고 오나 
 

아, 여기 누가
죽음 위에 우리의 꽃들을 피게 하나
얼음과 불꽃 사이
영원과 깜짝할 사이
죽음의 깊은 이랑과 이랑을 따라
물에 젖은 라일락의 향기―
저 파도의 꽃떨기를 칠월의 한 때
누가 피게 하나 *

* 김현승시집[가을의 기도]-미래사 

 

* 산맥과 파도 - 도종환

능선이 험할수록 산은 아름답다
능선에 눈발 뿌려 얼어붙을수록
산은 더욱 꼿꼿하게 아름답다
눈보라 치는 날들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은
외설악의 저 산맥 보이는가
모질고 험한 삶을 살아온 당신은
그 삶의 능선을 얼마나 아름답게
바꾸어 놓았는가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 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 놓았는가

 

* 물결도 없이 파도도 없이 - 도종환

그리움도 설렘도 없이 날이 저문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얼굴엔 검버섯 피는데
눈물도 고통도 없이 밤이 온다

빗방울 하나에 산수유 피고 개나리도 피는데
물결도 파도도 없이 내가 저문다

 

* 파도여 당신은 - 이해인 

파도여 당신은
누워서도 잠들지 않는
바람의 집인가

어느 날 죽어 버린
나의 꿈을 일으키며
산이 되는 파도여

오늘도 나는
말을 잃는다

신(神)의 모습을 닮아
출렁이는 당신이
그리 또한 태연한가

사랑하지 않고는
잠시도 못 견디는
시퍼런 고뇌의 당신이

언젠가 통째로 나를 안을 하느님
파도여 당신은
누워서도 잠 못 드는 기다림인가

* 파도의 말 - 이해인 

울고 싶어도
못 우는 너를 위해
내가 대신 울어줄게
마음놓고 울어줄게

 

오랜 나날
네가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은
모든 기억들
행복했던 순간들

 

푸르게 푸르게
내가 대신 노래해줄게


일상이 메마르고
무디어질 땐
새로움의 포말로
무작정 달려올게 *

* 이해인시집[외딴 마을의 빈집이 되고 싶다]-열림원

 

*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 파란 돛 - 장석남

바다는  
어디서부터 가져온 파도를 
해변에, 하나의 사소한 소멸로써 
부려놓은 것일까 
누군가의 내부를 향한 
응시를 이 세계의 
경계에 부려놓는 것일까 

바다는 질문만으로 살아오르고 
함성을 감춘 질문인 채 그대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천상 돛을 하나 가져야 하겠기에 
쉬지 않고 사랑을 하여 
파란 돛을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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