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날밤 - 오상순
어이 밤은 깊어
화촉동방의 촛불은 꺼졌다.
허영의 의상은 그림자마저 사라지고.....
그 청춘의 알몸이
깊은 어둠 바닷속에서
어족인 양 노니는데
홀연 그윽이 들리는 소리 있어,
아야....야!
태초에 생명의 비밀 터지는소리,
한 생명 무궁한 생명으로 통하는 소리,
열반의 문 열리는 소리,
오오 구원의 성모 현빈(玄牝)이여!
머언 하늘의 뭇 성좌는
이 밤을 위하여 새로 빛날진저!
밤은 새벽을 배고
침침히 깊어간다. *
* 오상순시집[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시인생각,2012
* 방랑의 마음 1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ㅡ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바다 없는 곳에서
바다를 연모(戀慕)하는 나머지에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바다를 그려 보다
가만히 앉아서 때를 잃고.....
옛 성 위에 발돋움하고
들 너머 산 너머 보이는 듯 마는 듯
어릿거리는 바다를 바라보다
해 지는 줄도 모르고ㅡ
바다를 마음에 불러 일으켜
가만히 응시하고 있으면
깊은 바닷소리
나의 피의 조류(潮流)를 통하여 우도다.
망망(茫茫)한 푸른 해원(海原)ㅡ
마음눈에 펴서 열리는 때에
안개 같은 바다와 향기
코에 서리도다.*
* 오상순시집[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시인생각,2012
* 의문
백발의
팔순 늙은 할머니
걸음발 겨우 떼어 놓는
초치(初齒)의 어린 아이
면(面)과 면을 서로 대하고
눈과 시선이 서로 마주칠 때
나는 묻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당신은 그 아이를 아시나이까!
나는 묻고 싶었다
어린아이에게
너는 저 할머니를 아느냐고.....
* 가위
바느질하던 나의 누이
[오라버니, 그거웨그러오 ?]
10년전에 어머니 쓰시던
가위를 들어 코에 대었다네
어머니 살내음
혹시나 남아있을까 하고
무심중에----.
* 한 잔 술
나그네 주인이여 평안하신고
곁에 앉힌 술단지 그럴 법허이
한 잔 가득 부어서 이리 보내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저 달 마시자
오늘 해도 저물고 갈 길은 머네
꿈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이거 어인 일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끝도 없거니
심산유곡 옥천(玉泉)샘에 홈을 대었나
지하 천 척 수맥에 줄기를 쳤나
바다는 말릴망정 이 술단지사
꿈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좋기도 허이
수양(垂楊)은 말이 없고 달이 둥근데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채우는 마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비우는 마음
길가)에 피는 꽃아 서러워마라
꿈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한 잔 더 치게
한 잔 한 잔 또 한 잔 한 잔이 한 잔
한 잔 한 잔 또 한 잔 석 잔이 한 잔
아홉 잔도 또 한 잔 한 잔 한없어
한없는 잔이언만 한 잔에 차네
꿈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나그네 주인이여 섧기도 허이
속 깊은 이 한 잔을 누구와 마셔
동해바다 다 켜도 시원치 않을
끝없는 나그넷길 한 깊은 설움
꿈인 양 달래보는 하염없는 잔
꿈같은 나그넷길 멀기도 허이! *
* 오상순시집[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시인생각,2012
* 나와 시와 담배
나와 시와 담배는
이음(異音) 동곡(同曲)의 삼위일체
나와 내 시혼은
곤곤히 샘솟는 연기
끝없는 곡선의 선율을 타고
영원히 푸른 하늘 품속으로
각각 물들어 스며든다. *
* 오상순시집[아시아의 마지막 밤 풍경]-시인생각,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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