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죄 시 모음

효림♡ 2019. 1. 15. 09:00

* 웃은 罪 - 김동환

지름길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한모금 달래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기 웃고 받았지요

 

平壤城에 해 안뜬대두

난 모르오

웃은 罪밖에 *

 

* 죄 - 김용택

들자니 무겁고

놓자니 깨지겠고

 

무겁고 깨질 것 같은 그 독을 들고 아둥바둥 세상을 살았으니

산 죄 크다

 

내 독 깨뜨리지 않으려고

세상에 물 엎질러 착한 사람들 발등 적신 죄

더 크다. *

 

* 고백성사 - 김종철
못을 뽑습니다

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

여간 흉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성당에서

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

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

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

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

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

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

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

 

* 못을 뽑으며 - 주창윤
이사를 와서 보니

내가 사용할 방에는

스무여 개의 못들이 필요 이상으로 박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어디에라도 못을 박는 일

내가 너에게 못을 박듯이

너도 나에게 못을 박는 일

벽마다 가득 박혀 있는 못들을 뽑아낸다

창 밖으로 벽돌 지고 가는 사람들도 보인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못자국

그 깊이에 잠시 잠긴다

뽑음과 박음, 못을 뽑는 사람과

못을 박는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못을 뽑고 벽에 기대어 쉬는데

벽 뒤편에서 누가 못질을 한다. *

* 죄 - 함민복
불완전한 인간을 만든

신의 아프터써비스는 용서다

 

* 죄 - 함민복

오염시키지 말자
죄란 말
칼날처럼 

섬뜩 빛나야 한다
건성으로 느껴
죄의 날 무뎌질 때
삶은 흔들린다
날을 세워
등이 아닌 날을 대면하여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구분하며 살 수 있게
마음아
무뎌지지 말자
여림만으로 세울 수 있는
강함만으로 지킬 수 있는
죄의 날
빛나게

푸르게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겁처럼 신성한
죄란 말
오염시키지 말자

* 함민복시집[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2005


* 먹은 죄 - 반칠환
새끼들에게 줄 풀벌레 잡아오던
지빠귀를 새매가 나꾸어 갔다
가까스로 허물 벗은 날개 말리던
잠자리를 물총새가 꿀꺽 삼켜 버렸다
오전에 돋은 새싹을 다람쥐가 갉아 먹는다
그러나 어느 유족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다 먹은 죄가 있기 때문이다.

 
한 없이 슬퍼도 적막한, 푸른 숲 속의 일이다.

 

* 죄 - 이기철 

요컨대 내 생은 밥숟갈을 위한 노역이었다

나는 누굴 위해 살지 않았고

철저히 나를 위해 살았다

나는 내 월급을 데어 남에게 주지 않았다

그리하여 모든 밥숟갈은 아세였고 곡학이었다

 

나는 남을 사랑할 시간이 없었다

내 안에 꽃피는 시간들이 나를 죄짓게 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용서받아야 하는가

다리가 아프도록 서서 읽은 편지

대합실에서 읽던 시

 

그런데 나는 왜 눈물 흘리는 새에 대해서는

한 줄도 안 썼는가

서리의 예감에 몸을 더는 나무에 대해서는?

안 굽어지려고 기를 쓰는 분재묘목에 대해서는?

바닥이 즐거운 넙치에 대해서는?

아,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그리운 바보가 된 사람을 위해서는? *

이기철시집[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서정시학


* 그리운 죄 - 고재종 
산 아래 사는 내가
산속에 사는 너를 만나러
숫눈 수북이 덮힌 산길을 오르니
산수유 고 열매 빨간 것들이
아직도 옹송옹송 싸리울을 밝히고 서 있는
네 토담집 아궁이엔 장작불 이글거리고
너는 토끼 거두러 가고 없고
곰 같은 네 아내만 지게문을 빼꼼이 열고
들어와 몸 녹이슈! 한다면
내 생의 생생한 뿌리가 불끈 일어선들
그 어찌 뜨거운 죄 아니랴
포르릉, 어치가 날며 흩어놓은
눈 꽃의 길을 또한 나는 안다.

 

* 사랑이 죄지 - 이정하

걷다 보니 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러지 않기로 수없이 다짐해 놓고
오늘 또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대는 난처한 얼굴로 돌아서지만
내가 무슨 죄입니까,

사랑이 죄지.

그대여,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랑을 탓 하십시오.

 

* 속죄 - 정호승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나는 그만 돌을 들어 그 여자를 치고 말았다

 

오늘도 새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고 간다 *

 

* 용서의 의자 - 정호승

나의 지구에는
용서의 의자가 하나 놓여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용서할 수 있고 용서 받을 수 있는
절대 고독의 의자 하나
쌩떽쥐뻬리의 어린 왕자가

해질녘
어느 작은 별에 앉아 있던 의자도 아니고
법정 스님이 오대산 오두막에 홀로 살면서
손수 만드신 못생긴 나무의자도 아닌데
못이 툭 튀어나와 살짝 엉덩이를 들고 앉아야 하는
앉을 때마다 삐걱삐걱 눈물의 소리가 나는
작은 의자 하나
누군가가 만들어놓고
다른 별로 떠났다. *

* 정호승시집[밥값]-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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