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친구 시 모음

효림♡ 2018. 12. 17. 08:30

* 첫 친구에게 - 이해인
네가 늘
내 곁에 있음을
잠시라도 잊고 있으면
너는 서운하지? 친구야

기쁠 때보다
슬플 때
건강할 때보다
아플 때
네 생각이 더 많이 나는 게
나는 좀 미안하다, 친구야

아무런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아서 좋은 친구야

네 앞에서 나는
언제 철이 들지 모르지만

오늘도 너를 제일 사랑한다
네가 나에게 준 사랑으로
나도 다시 넉넉한 기쁨으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
* 이해인시집[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마음산책

 

* 벗 하나 있었으면 - 도종환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 그리메처럼 어두워 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

* 도종환시집[당신은 누구십니까]-창비,1995

 

친구 - 천양희
좋은 일이 없는 것이 불행한 게 아니라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다행한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이나 원망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더러워진 발은 깨끗이 씻을 수 있지만
더러워지면 안 될 것은 정신인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투덜대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자기 하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은
실상의 빛을 가려버리는 거야.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습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세상에 발길질이나 하던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 우화의 강 1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

 

친구처럼 - 문정희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누가 몰랐으랴.

아무리 사랑하던 사람끼리도
끝까지 함께 갈 순 없다는 것을.

진실로 슬픈 것은 그게 아니었지.
언젠가 이 손이 낙엽이 되고
산이 된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언젠가가
너무 빨리 온다는 사실이지.

 

미처 숨 돌릴 틈도 없이
온몸으로 사랑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하루
잠시 잊었던 친구처럼
홀연 다가와
투욱! 어깨를 친다는 사실이지. *


* 서울 사는 친구에게 - 안도현 

세상 속으로 뜨거운 가을이 오고 있네
나뭇잎들 붉어지며 떨어뜨려야 할 이파리들 떨어드리는 걸 보니
자연은 늘 혁명도 잘하구나 싶네
풍문으로 요즈음 희망이 자네 편이 아니라는 소식 자주 접하네
되는 일도 되지 않는 일도 없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싶거든,이리로 한 번 내려오게
기왕이면 호남선 통일호 열차를 타고 찐계란 몇 개
소금 찍어 먹으면서 주간지라도 뒤적거리며 오게
금주의 운세에다 마음을 기대보는 것도 괜찮겠고,
광주까지 가는 이를 만나거든 망월동 가는 길을 물어봐도 좋겠지
밤 깊어 도착했으면 하네, 이리역 광장에서 맥주부터 한잔 하고
나는 자네가 취하도록 술을 사고 싶네
삶보다 앞서가는 논리도 같이 데리고 오게
꿈으로는 말고 현실로 와서 걸판지게 한 잔 먹세
어깨를 잠시 꽃게처럼 내리고, 순대국이 끓는
중앙시장 정순집으로 기어들 수도 있고, 레테라는 집도 좋지
밤 12시가 넘으면 포장마차 로진으로 가 꼼장어를 굽지
해직교사가 무슨 돈으로 술타령이냐 묻고 싶겠지만
없으면 외상이라도 하지, 외상술 마실 곳이 있다는 것은
세상이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는가
날이 새면 우리 김제 만경 들녘 보러 가세
지평선이 이마를 치는 곳이라네, 자네는 알고 있겠지
들판이야말로 완성된 민주대연합이 아니던가
갑자기 자네는 부담스러워질지 모르겠네, 이름이야 까짓껏
개똥이면 어떻고 쇠똥이면 어떻겠는가
가을이 가기 전에 꼭 오기만 하게

 

* 친구 - 이정하
당신에게는 아무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주고, 웃고 싶을 때 함께 웃어 줄 친구가
몇 명이나 있는지요?

저녁 퇴근 무렵, 문득 올려다본 서편 하늘에서
온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며 지는 노을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올 때,
눈 내리는 겨울밤 골목길 구석에서 모락모락 김이나는 포장마차를 지나칠 때,
뜻하지 않은 영화초 대권이 몇 장 생겼을 때
전화수화기를 서슴없이 들 수 있는 친구가 당신에겐 진정 있는지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내 주위에 있다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고독하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의 삶이 이렇게 쓸쓸하지는 않을 겁니다.

 

* 그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不義)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 유영석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 나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난 오늘도 그 친구에게 가 잃어버린 내 사랑 얘기를 했습니다

그 친구 말없이 내 얘기를 들어 주었구요 갑자기 눈물이 흐르더군여

그는 내일이면 다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생각했습니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지난밤에도 당신은 내게로 와서 또다시 잃어버린 사랑 얘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그 아픔을 이겨내야 할지 당신은 내 어깨에 머리를 묻고 울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눈물을 닦아 주며 내일이면

다시 누군가 새로운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마침내 당신은 마음이 가라앉아 내 뺨에 입맞추고는 그렇게

당신의 세계로 돌아갔습니다

 

텅빈 아파트를 둘러봅니다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연인들을 바라보며 홀로 걷던 공원의 산책을

나 혼자뿐인 아침식사를 그리고 혼자 보던 영화를 머리에 떠올립니다

TV 가이드로 손을 뻗으며 나는 얼굴을 적시며 흐르는 한 줄기 눈물을 느낍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대올 어깨라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홀로 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인가 봅니다. *

 

* 친구들 -마구간 시절 - 김사인
신용카드 한 장 변변찮은 헌털뱅이들이다
헌털뱅이 파카나 걸치고
이번엔 누구를 약올려줄까
눈에 개구가 반짝반짝 올라서들 온다
개구진 헌털뱅이들은 화투도 반은 입으로 친다
판에 오천원 내기 바둑이 하도나 꼬수워
낄낄낄 어쩔 줄을 모른다
구경하는 치들도 낄낄낄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쇠죽 쑤는 아랫목인 듯
그 낄낄낄 위로 모두 같이 등을 지진다
푹 삶은 누룽지처럼 서로를 한 대접씩 마시고
속을 데우는 것이다

오늘도 수세미수염에 부스스한 머리들을 해가지고 나타날 것이다
담배 냄새를 구수하게 풍기며 이 어둑한 구석으로
옛날 아버지들처럼 모여들 것이다 

 

* 친구야 - 조태일
친구야,
폭우가 쏟아진다.
폭우 속으로 가자.

 

친구야,
폭설이 내린다.
폭설 속으로 가자.

 

친구야,
달이 뜬다.
달빛 속으로 가자.

 

친구야,
해가 뜬다.
햇빛 속으로 가자.

 

친구야,
산천이 퍼덕인다.
산천으로 스며들자.

* 조태일시집[가거도]-창비,1983

 

* 먼 곳으로 간 친구는 낮달이 되어 떠돌고 - 이시영
  창백한 얼굴을 가리며 너는 숨는다. 부끄러워 너는 돌아와 갈 수 없
다고 눈 부릅떠 보지 않겠다고. 몸을 떠는 바람. 발각된 저 대낮의 함
성. 스러지는 그림자. 서녘으로는 가지 않겠다고. 이 악물며 다시는
않겠다고 뿌리치는 달. 거부하는 바다. 않겠다고 않겠다고 손짤린 흰
새벽. 물 속에서 가지 않는 달이 하나 떠올라, 끝내 이 땅의 어깨를
껴안고 떠올라 곳곳을 떠도는구나. 

* 이시영시집[만월]-창비,1976

 

* 내 친구 선미 - 박성우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피아노도 치고 싶고

시도 쓰고 싶다는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머리 감고 거울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선미,

잠에서 깨어

뭉텅뭉텅 빠진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주워 버리는 아침이

가장 서글프다는 선미,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글씨 한 자 한 자를 쓸 때마다

진땀이 뻘뻘 난다는 선미,

선미는 몸이 좀 불편한 내 여자 친구다

 

편지 한통을 쓰고 나면

온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면서도

또박또박 삐뚤빼뚤 눌러 쓴 손 편지를

꼬박꼬박 보내오는 선미,

 

피아노도 치고

가끔은 시도 쓰는 선미,

 

선미는 내 여자 친구다 *

* 박성우시집[난 빨강]-창비,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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