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1월 시 모음

효림♡ 2019. 1. 29. 09:00

* 신춘 - 이문구

1월의 딴 이름은
신춘(新春)이야.
소한 추위 대한 추위
다 들어 있는
엄동 설한
겨울도 한복판이지만
땅바닥의
작은 질경이 씨 하나
더 작은 채송화 씨 하나도
얼어 죽지 않았잖아.
새봄이 눈보라 속에
숨어 오기 때문이고
그래서 신춘이라
부르는 거야. *

* 이문구시집[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창비,2003

 

* 1월 - 이외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위에 내가 서 있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겠다
한밤중에 바람은 날개를 푸득거리며 몸부림치고
절망의 수풀들 무성하게 자라 오르는 망명지
아무리 아픈 진실도
아직 꽃이 되지 않는다

내가 기다리는 해빙기는 어디쯤에 있을까
얼음 밑으로 소리 죽여 흐르는 불면의 강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날카로운 파편으로 추억을 살해한다
모래바람 서걱거리는 황무지 얼마나 더 걸어야
내가 심은 감성의 낱말들 해맑은 풀꽃으로 피어날까

오랜 폭설 끝에 하늘은 이마를 드러내고
나무들 결빙된 햇빛의 미립자를 털어내며 일어선다
백색의 풍경 속으로 날아가는 새 한 마리
눈부시다 * 

 

* 1월 - 오세영 
1월이 색깔
이라면
아마도 흰색
일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의 발성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
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
하는
눈부신 함성 *

 

* 정월 - 문인수

농촌 들녘을 지나는데 춥고 배고프다.
저 노인네 시린 저녁이 내 속에서
등 달 듯 등 달 듯 불을 놓는다.
꽃 같은 불 쪽으로 빈 들판이 몰린다.
거지들 거뭇거뭇 둘러앉는 것 같다.
발싸개 벗어 말리며 언 발 녹이며
구운 논두렁도 맛있겠다.
그 뱃속 깊은 데 실낫 같은 도랑물 소리,
참 남루한, 어두운 기억을 돌아오는데도 피를 맑히는
이 땅의 神이옵신 그리움이여. *

* 새해의 노래 - 정인보 

온 겨레 정성덩이 해 돼 오르면
올 설날 이 아침야 더 찬란하다
뉘라셔 겨울더러 춥다더냐
오는 봄만 맞으려 말고 내 손으로 만들자

깃발에 바람 세니 하늘 뜻이다
따르자 옳은 길로 물에나 불에
뉘라셔 세월더러 흐른다더냐
한이 없는 우리 할 일을 맘껏 펼쳐 보리라 *

 

* 신년 기원 - 이성부 

시인들이 노래했던
그 어느 아름다운 새해보다도
올해는
움츠린 사람들의 한해가
더욱 아름답도록 하소서  

차지한 자와 영화와
그 모든 빛나는 사람들의 메시지보다도
올해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소망이
더욱 열매맺도록 하소서  

세계의 모든 강력한 사람들보다도
쇠붙이보다도
올해는
바위 틈에 솟는 풀 한포기,
나목을 흔드는 바람 한점,


새 한마리,
억울하게 사라져가는 한사람,
또 한사람,
이런 하잘것없는 얼굴들에게
터져 넘치는 힘을 갖추도록 하소서  

죽음을 태어남으로,
속박을 해방으로,
단절을 가슴 뜨거운 만남으로
고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모든 우리들의 한해가 되도록 하소서
역사 속에 그리움 속에
한점 진하디진한 언어를 찍는
한해가 되도록 하소서 * 

* 이성부시집[야간 산행]-창비,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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