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여인숙 - 이정록 * 제비꽃 여인숙 - 이정록 요구르트 빈 병에 작은 풀꽃을 심으려고 밭두둑에 나가 제비꽃 옆에 앉았다 나잇살이나 먹었는지 꽃대도 제법이고, 뿌리도 여러 가닥이다 그런데 아니, 뿌리 사이에 굼벵이 한 마리 모로 누워 있다 아기부처님처럼 주무시고 있다 한 송이는 하늘 쪽으로 한 송이.. 좋아하는 詩 2009.07.30
이곳에 살기 위하여 - 정희성 * 이곳에 살기 위하여 - 정희성 한밤에 일어나 얼음을 끈다 누구는 소용이 없는 일이라지만 보라, 얼음 밑에서 어떻게 물고기가 숨쉬고 있는가 나는 물고기가 눈을 감을 줄 모르는 것이 무섭다 증오에 대해서 나도 알 만큼은 안다 이곳에 살기 위해 온갖 굴욕과 어둠과 압제 속에서 싸우다.. 좋아하는 詩 2009.07.30
매미 - 유응교 * 매미 - 유응교 사람들은 매미가 운다고 한다 그러나 결코 우는 게 아니다 오직 사랑을 위하여 생명이 다 할 때까지 노래할 뿐이다 7년 동안 기다려온 그 사랑을 위하여 울어야할 이유는 없다 아름답게 치열하게 노래할 뿐 그대라면 저토록 처절하게 울겠는가? 아니 하나의 사랑을 위하여.. 좋아하는 詩 2009.07.30
사랑하는 별 하나 - 이성선 * 물 속 빈 산 꽃피는 소리 - 이성선 달 하나 등에 지고 산도 하나 지고 둥그런 어둠 속을 밤 열어 길 열어 가는 사내 길바닥 드문드문 괸 빗물에 내려비친 하늘을 지켜보다 하늘 안으로 사라져 들어간 물 속 빈 산 꽃피는 소리 만나러 가는 사내 산에 닿아 짐 벗어놓고 돌아오지 않은 사내 *.. 좋아하는 詩 2009.07.30
춘추(春秋) - 김광규 * 춘추(春秋) - 김광규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좋아하는 詩 2009.07.29
담쟁이덩굴의 승리 - 김광규 * 담쟁이덩굴의 승리 - 김광규 대추나무와 후박나무, 단풍나무와 감나무가 몇 십 년 동안 뿌리 내리고 자라온 뒤뜰 장독대 근처에, 담쟁이덩굴이 느릿느릿 기어왔습니다. 벽돌담보다 더 높이 자라서 제각기 품위를 뽐내는 큰 키 나무들이 담쟁이덩굴을 측은하게 내려다보았습니다. 뱀처.. 좋아하는 詩 2009.07.29
밥그릇 경전 - 이덕규 * 밥그릇 경전 - 이덕규 어쩌면 이렇게도 불경스런 잡념들을 싹싹 핥아서 깨끗이 비워놨을까요 볕 좋은 절집 뜨락에 가부좌 튼 개밥그릇 하나 고요히 반짝입니다 단단하게 박힌 금강(金剛)말뚝에 묶여 무심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어슬렁 일어나 앞발로 굴리고 밟고 으르렁 그르렁 물어뜯.. 좋아하는 詩 2009.07.28
굴을 지나면서 - 문태준 * 굴을 지나면서 - 문태준 늘 어려운 일이었다. 저문 길 소를 몰고 굴을 지난다는 것은 빨갛게 눈에 불을 켜는 짐승도 막상 어둠 앞에서는 주춤거린다 작대기 하나를 벽면에 긁으면서 굴을 지나간다 때로 이 묵직한 어둠의 굴은 얼마나 큰 항아리인가 입구에 머리 박고 소리지르면 벽 부딪.. 좋아하는 詩 2009.07.28
바닥 - 문태준 * 바닥 - 문태준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 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 좋아하는 詩 2009.07.28
가재미- 가재미2,3 - 문태준 * 가재미 -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 좋아하는 詩 2009.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