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 허형만 * 山行 - 허형만 흰구름 흩어진 곳에 청산만 남느니 무르녹은 햇살 몇 줌과 귀 시려운 물소리만 남느니 천천히, 허무의 등불 하나 꺼지지 않게 어깨에 짊어진 바람도 흩날리지 않게 좋아하는 詩 2008.09.28
달밤 - 임길택 * 달밤 - 임길택 창이 훤해 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서니 열여드렛 달이 별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서로 서로를 비춰주며 땅내를 맡는 깊은 밤 숲으로 싸인 조그만 하늘 그 하늘 속 달빛 별빛에 기대어 온 골짜기에 잠 못 이룰 생각에 서성이다가 서성이다가 좋아하는 詩 2008.09.25
난초 - 이병기 * 난초 4 - 이병기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래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두고 미진(微震)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받아 사느니라 * * 꽃 꽃을 보려하고 봄 오기를 바랐.. 좋아하는 詩 2008.09.25
갈대 - 신경림 * 갈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ㅡ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좋아하는 詩 2008.09.24
다시 꿈꿀 수 있다면 - 박라연 * 다시 꿈꿀 수 있다면 - 박라연 다시 꿈꿀 수 있다면 개미 한 마리의 손톱으로 사천오백 날쯤 살아낸 백송, 뚫고 들어가 살아보는 일 나무 속에 살면서 제 몸의 일부를 썩히는 일 제 혼의 일부를 베어내는 순간을 닮아보는 일 향기가 악취 되는 순간을 껴안는 일 다시 꿈꿀 수 있다면 제것.. 좋아하는 詩 2008.09.20
[스크랩]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 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 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아주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 나뭇가지에 얼음이 잔.. 좋아하는 詩 2008.09.19
농무 - 신경림 * 농무(農舞) - 신경림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 좋아하는 詩 2008.09.19
형님 - 김지하 * 형님 - 김지하 희고 고운 실빗살 청포잎에 보실거린 땐 오시구려 마누라 몰래 한바탕 비받이 양푼갓에 한바탕 벌여놓고 도도리장단 좋아 헛맹세랑 우라질 것 보릿대춤이나 춥시다요 시름 지친 잔주름살 환히 펴고요 형님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한가지 도동동당동 우라질 것 놉시.. 좋아하는 詩 2008.09.18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 좋아하는 詩 2008.09.17
가을에 - 김정환 * 가을에 - 김정환 우리가 고향의 목마른 황토길을 그리워 하듯이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은 그대가 내게 오래오래 긴직해준 그대의 어떤 순결스러움 때문 아니라 다만 그대 삶의 전체를 이루는 아주 작은 그대의 몸짓 때문일 뿐 이제 초라히 부서져 내리는 늦가을 뜨락에서 나무들의 헐.. 좋아하는 詩 2008.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