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조지훈 시 모음

효림♡ 2009. 3. 30. 08:14

* 도라지꽃 - 조지훈  
기다림에 야윈 얼굴
물 위에 비초이며


가녀린 매무새
홀로 돌아앉다.


못 견디게 향기로운
바람결에도


입 다물고 웃지 않는
도라지꽃아. *
 

 

* 백접(白蝶)  


노래
볕섬겨
꽃피는밤
작은葬送譜
가슴가을되고
기쁜노래숨진뒤
조촐히사라진白蝶
너는갔구나잊히지않는
하이얀花瓣고운喪章아
병들거라아픈가슴
가슴에눈물지고
정가로운눈물
고요히지라
슬픈피리
불다가
꽃진

 

* 山中問答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 가 멍석자리 삽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데리고 낚는 맛을
자네 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되어 오는 놈 하나 없데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매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老人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뤄 주신다

[예 이 맛은 알 만합니더]

靑山 白雲아

할 말이 없다 * 

 

* 풀잎 단장(斷章)
무너진 城터 아래 오랜 세월을 風雪에 깎여 온 바위가 있다
아득히 손짓하며 구름이 떠 가는 언덕에 말없이 올라서서
한 줄기 바람에 조찰히 씻기우는 풀잎을 바라보며
나의 몸가짐도 또한 실오리 같은 바람결에 흔들리노라
 
아 우리들 太初의 生命의 아름다운 分身으로 여기 태어나
고달픈 얼굴을 마주 대고 나직이 웃으며 얘기하노니
때의 흐름이 조용히 물결치는 곳에 그윽히 피어오르는 한떨기 영혼이여 *

 

* 빛을 찾아가는 길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틈에 어리우는 물을 마시면 

 

살아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자운 피어나는 청동의 향로 

 

동해 동녘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받치는 설움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 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

 

* 행복론 (論)

1.

멀리서 보면

寶石인 듯

 

주워서 보면

돌멩이 같은 것

 

울면서 찾아갔던

산 너머 저 쪽

 

2.

아무데도 없다

幸福이란

 

스스로 만드는 것

마음 속에 만들어 놓고

 

혼자서 들여다 보며

가만히 웃음 짓는 것

 

3.

아아 !  이게 모두

과일나무였던가

 

웃으며 돌아온

草家 三間

 

가지가 찢어지게

열매가 익었네

 

* 화체개현(花體開顯)

실눈을 뜨고 벽에 기대인다
아무 생각할 수가 없다


짧은 여름밤은 촛불 한 자루도
못다 녹인 채 사라지기 때문에
섬돌 우에 문득 石榴꽃이 터진다

꽃망울 속에 새로운 宇宙가 열리는 波動!
아 여기 太古적 바다의 소리 없는 물보래가 꽃잎을 적신다

방안 하나 가득 石榴꽃이 물들어온다
내가 石榴꽃 속으로 들어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다

  

* 女人

그대의 함함이 빗은 머릿결에는
새빨간 동백꽃이 핀다

그대의 파르란 옷자락에는
상깃한 풀내음새가 난다

바람이 부는 것은 그대의 머리칼과
옷고름을 가벼이 날리기 위함이라

그대가 고요히 걸어가는 곳엔
바람도 아리따웁다 *

 

* 승무(僧舞)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네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庚)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 사모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눈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만 잊어달라지만
남자에게 있어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 그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은 밤에 울어 보리라
울다가 지쳐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그리고  한 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

 

* 思慕  

그대와 마조않으면
기인 밤도 짧고나

희미한 등불 아래
턱을 고이고

단둘이서 나누는
말 없는 얘기

나의 안에서
다시 나늘 안아주는

거룩한 光芒
그대 모습은

運命보담 아름답고
크고 밝아라

물들은 나무잎새
달빛에 젖어

비인 뜰에 귀또리와
함께 자는데

푸른 창가에
귀 기울이고

생각하는 사람 있어
밤은 차고나 *

 

* 고풍의상(古風衣裳)
하늘로 날을 듯이 길게 뽑은 부연 끝 풍경이 운다
처마끝 곱게 늘이운 주렴에 半月이 숨어
아른아름 봄밤이 두견이 소리처럼 깊어가는 밤
곱아라 고아라 진정 아름다운지고
파르란 구슬빛 바탕에
자지빛 호장을 받친 호장저고리
호장저고리 하얀 동정이 환하니 밝도소이다
살살이 퍼져나린 곧은 선이
스스로 돌아 曲線을 이루는 곳
열두 폭 기인 치마가 사르르 물결을 친다
초마 끝에 곱게 감춘 운혜(雲鞋) 당혜(唐鞋)
발자취 소리도 없이 대청을 건너 살며시 문을 열고
그대는 어느 나라의 古典을 말하는 한 마리 호접(胡蝶)
호접이냥 사푸시 춤을 추라, 아미(蛾眉)를 숙이고……
나는 이 밤에 옛날에 살아
눈 감고 거문고ㅅ줄 골라보리니
가는 버들이냥 가락에 맞추어
흰 손을 흔들어지이다 *

 

* 피리를 불면

다락에 올라서
피리를 불면

萬里 구름길에
鶴이 운다

이슬에 함초롬
적은 풀잎

달빛도 푸른 채로
산을 넘는데

물 우에 바람이
흐르듯이

내 가슴에 넘치는
차고 흰 구름

다락에 기대어
피리를 불면

꽃비 꽃바람이
눈물에 어리어

바라뵈는 紫霞山
열두 봉우리

싸리나무 새순 뜯는
사슴도 운다 *

 

* 봉황수(鳳凰愁)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 소리 날러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새를 틀어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옆에서 정일품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르량이면
봉황새야 구천(九天)에 호곡(呼哭)하리라 *

 

* 가야금(伽倻琴)

1. 휘영청 달 밝은 제 창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
붉은 술그림자 두 뺨이 더워온다

천지가 괴괴한데 찾아올 이 하나 없다
宇宙가 茫茫해도 옛 생각은 새로워라

달 아래 쓰러지니 깊은 밤은 바다런 듯
蒼茫한 물결 소리 草屋이  떠나간다

2. 조각배  노 젓듯이 가얏고를 앞에 놓고
열두 줄 고른 다음 벽에 기대 말이 없다

눈 스르르 감고 나니 흥이 먼저 앞서노라
춤추는 열 손가락 제대로 맡길랏다

구름끝 드높은 길 외기러기 울고 가네
銀河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다니

내 무슨 恨이 있어 興亡도 꿈속으로
잊은 듯 되살아서 임 이름 부르는고

3. 風流 가얏고에 이는 꿈이 가이 없다
열두 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心思라

줄줄이 고로 눌러 맺힌 시름 풀이랏다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잠깐  쓸쩍 들어

뚱뚱 뚱 두두 뚱뚱 흥흥 응 두두뚱  뚱
調格을 다 잊으니 손끝에 피맺힌다

구름은 왜 안 가고 달빛은 무삼일 저리 흰고
높아가는 물소리에 靑山이 무너진다 *

 

* 石門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여기 소리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石壁欄干)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얼굴이 이 희미한 불 앞에 어리울 때까지는 천년(千年)이 지나도 눈 감지 않을 저의 슬픈 영혼의 모습입니다  

 

길숨한 속눈썹에 항시 어리우는 이 두어 방울 이슬은 무엇입니까 당신이 남긴 푸른 도포 자락으로 이 눈물을 씻으렵니까

두 볼은 옛날 그대로 복사꽃빛이지만 한숨에 절로 입술이 푸르러감을 어찌합니까 

몇만 리 구비치는 강물을 건너와 당신의 따슨 손길이 저의 흰 목덜미를 어루만질 때 그때야 저는 자취도 없이 한줌 티끌로 사라지겠습니다 어두운 밤하늘 허공중천(虛空中天)에 바람처럼 사라지는 저의 옷자락은 눈물어린 눈이 아니고는 보지 못하오리다 

 

여기 돌문이 있습니다 원한도 사모치량이면 지극한 정성에 열리지 않는 돌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오셔서 다시 천년(千年)토록 앉아서 기다리라고 슬픈 비바람에 낡아가는 돌문이 있습니다  

* 조지훈시집[한국현대시문학대계19]-지식산업사 

 

* 병(病)에게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자네는 나에게 휴식을 권하고 생(生)의 외경(畏敬)을 가르치네
그러나 자네가 내 귀에 속삭이는 것은 마냥 허무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자네의
그 나직하고 무거운 음성을 듣는 것이 더없이 흐뭇하네

내 뜨거운 이마를 짚어 주는 자네의 손은 내 손보다 뜨겁네
자네 여윈 이마의 주름살은 내 이마보다도 눈물겨웁네
나는 자네에게서 젊은 날의 초췌한 내 모습을 보고
좀더 성실하게, 성실하게 하던
그 날의 메아리를 듣는 것일세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라면
자네는 몹시 화를 내었지

자네는 나의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는 무슨 일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그렇지만 자네는 좀 이상한 성밀세
언짢은 표정이나 서운한 말, 뜻이 서로 맞지 않을 때는
자네는 몇 날 몇 달을 쉬지 않고 나를 설복(說服)하려 들다가도
내가 가슴을 헤치고 자네에게 경도(傾倒)하면
그때사 자네는 나를 뿌리치고 떠나가네

잘 가게 이 친구
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 *

 

* 산방(山房) 

닫힌 사립에
꽃잎이 떨리노니

구름에 싸인 집이
물소리도 스미노라 

단비 맞고 난초잎은  
새삼 차운데


볕받은 미닫이를  
꿀벌이 스쳐간다


바위는 제자리에
움직 않노니

푸른 이끼 입음이
자랑스러라  

아스림 흔들리는
소소리 바람

고사리 새순이
도르르 말린다.

 

* 조지훈(趙芝薰)시인

-1920~1968 경북 양양 사람 

-1939년 [문장]-[古風衣裳][僧舞][鳳凰愁]등이 정지용에 의해 추천 등단

-시집 [풀잎 斷章][조지훈 시선]...,박두진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 시인, 자유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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