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백석 시 모음

효림♡ 2009. 3. 31. 08:20

* 노루 - 백석  

산(山)골에서는 집터를 츠고 달궤를 닦고
보름달 아래서 노루고기를 먹었다 *

 

* 산(山)비

 山뽕잎에 빗방울이 친다
 멧비둘기가 난다
 나무등걸에서 자벌기가 고개를 들었다 멧비둘기 켠을 본다 *

 

* 청시(靑枾)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 *

 

* 비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 *

 

* 성외(城外)

어두워오는 城門 밖의 거리
도야지를 몰고 가는 사람이 있다


엿방 앞에 엿궤가 없다


양철통을 쩔렁거리며 달구지는 거리 끝에서 江原道로 간다는 길로 든다


술집 문창에 그느슥한 그림자는 머리를 얹혔다 *

 

* 백석시집[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문학사상

 

* 북관(北關)  
명태(明太)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北關)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가느슥히 여진(女眞)의 살냄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新羅)백성의 향수(鄕愁)도 맛본다 *

* 정끝별의 밥시이야기[밥]-마음의숲

 

* 멧새 소리

처마 끝에 명태를 말린다
명태는 꽁꽁 얼었다
명태는 길다랗고 파리한 물고긴데
꼬리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해는 저물고 날은 다 가고 볕은 서러웁게 차갑다
나도 길다랗고 파리한 명태다
문턱에 꽁꽁 얼어서
가슴에 길다란 고드름이 달렸다 *

 

* 오리 망아지 토끼

오리치를 놓으려 아배는 논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

오리는 동비탈에 그림자를 떨어트리며 날어가고 나는 동말랭이에서 강아지처럼 아배를 부르며 울다가

시악이 나서는 등뒤 개울물에 아배의 신짝과 버선목과 대님오리를 모두 던져버린다

 

장날 아침에 앞 행길로 엄지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내라고 나는 조르면

아배는 행길을 향해서 커다란 소리로

- 매지야 오나라

- 매지야 오나라

 

새하려 가는 아배의 지게에 지워 나는 山으로 가며 토끼를 잡으리라고 생각한다

맞구멍난 토끼굴을 내가 막어서면 언제나 토끼새끼는 내 다리 아래로 달어났다

나는 서글퍼서 서글퍼서 울상을 한다 *

 

* 국수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멕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얀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연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옛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여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옛적 큰마니가

또 그 집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옛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굴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

 

김치가재미 : 북쪽 지역의 김치를 넣어 두는 창고. 헛간

양지귀 : 햇살 바른 가장자리 

능달 : 응달

은댕이 : 가장자리

예대가리밭 : 산의 맨 꼭대기에 있는 오래된 비탈밭

산멍에 : '이무기'의 평안도 말

분틀 : 국수를 뽑아내는 틀

큰마니 : '할머니'의 평안도 말

집등색이 : 짚등석. 짚이나 칡덩쿨로 짜서 만든 자리

자채기 : 재채기

아르궅 : 아랫목

 

* 정주성(定州城)

산턱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헌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하늘빛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려 올 것이다 *

* 백석시집[한국대표시인 101인선집]-문학사상

 

* 고향  

나는 北關에 혼자 앓어 누워서
어느 아침 醫員을 뵈이었다
醫員은 如來같은 상을 하고 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故鄕이 어데냐 한다
平安道 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氏 故鄕이란다
그러면 아무개氏 아느냐 한즉
醫員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쓴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醫員은 또 다시 넌지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故鄕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
 

 

* 女僧

女僧은 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平安道의 어늬 山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女人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 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 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山꿩도 설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山절의 마당귀에 女人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서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 백석시집-백시나역[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북스

 

* 통영(統營) 1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港口)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 같이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客主)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六月)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

* 백석시집-백시나역[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북스

 

* 통영(統營) 2 

구마산(舊馬山)의 선창에선 좋아하는 사람이 울며 나리는 배에 올라서 오는 물길이 반날 

갓 나는 고당은 갓갓기도 하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전복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 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
 

산 너머로 가는 길 돌각담에 갸웃하는 처녀는 금(錦)이라는 이같고

내가 들은 마산(馬山) 객주(客主)집의 어린 딸은 난(蘭)이라는 이 같고// 

난(蘭)이라는 이는 명정(明井)골에 산다는데
명정(明井)골은 산을 넘어 동백(冬栢)나무 푸르른 감로(甘露)같은 물이 솟는 명정(明井) 샘이 있는 마을인데
샘터엔 오구작작 물을 긷는 처녀며 새악시들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그이가 있을 것만 같고
내가 좋아하는 그이는 푸른 가지 붉게붉게 동백꽃 피는 철엔 타관 시집을 갈 것만 같은데
긴 토시 끼고 큰머리 얹고 오불고불 넘엣거리로 가는 여인은
평안도(平安道)서 오신 듯한데 동백(冬栢)꽃 피는 철이 그 언제요// 
옛 장수 모신 낡은 사당의 돌층계에 주저앉어서
나는 이 저녁 울 듯 울 듯 한산도(閑山島) 바다에 뱃사공이 되어가며
녕 낮은 집 담 낮은 집 마당만 높은 집에서 열나흘 달을 업고 손방아만 찧는 내 사람을 생각한다 *

* 백석시집-백시나역[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북스

 

* 수박씨, 호박씨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 와서
어진 사람의 짓을 어진 사람의 마음을 배워서
수박씨 닦은 것을 호박씨 닦은 것을 입으로 앞니빨로 밝는다
 
수박씨 호박씨 입에 넣는 마음은
참으로 철없고 어리석고 게으른 마음이나
이것은 또 참으로 밝고 그윽하고 깊고 무거운 마음이라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오랜 세월이 아득하니 오랜 지혜가 또 아득하니 오랜 인정(人情)이 깃들인 것이다
태산(泰山)의 구름도 황하(黃河)의 물도 옛임금의 땅과 나무의 덕도 이 마음 안에 아득하니 뵈이는 것이다

 

이 작고 가벼웁고 갤족한 희고 까만 씨가
조용하니 또 도고하니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손으로 오르나리는 때
벌에 우는 새소리도 듣고 싶고 거문고도 한 곡조 뜯고 싶고 한 오천(五千)말 남기고 함곡관(函谷關)도 넘어가고 싶고
기쁨이 마음에 뜨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앞니로 까서 잔나비가 되고
근심이 마음에 앉는 때는 희고 까만 씨를 혀끝에 물어 까막까치가 되고

 

어진 사람이 많은 나라에서는
오두미(五斗米)를 버리고 버드나무 아래로 돌아온 사람도
그 옆차개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베개하고 누었던 사람도
그 머리맡에 수박씨 닦은 것은 호박씨 닦은 것은 있었을 것이다 *

밝는다 : 껍질을 벗겨 속에 들어 있는 알맹이를 집어내다
도고하니 : 도고하게. 짐짓 의젓하게
함곡관(函谷關) : 요동반도에서 북경으로 가는 길목.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
오두미(五斗米) : 도연명의 월급. 당시 현감의 월급이 오두미에 해당되었음

옆차개 : 호주머니

* 백석시집-백시나역[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산북스

 

* 백석(白石)시인 

-1912~1995 평안북도 정주 사람

-1935년 조선일보[정주성]발표

-시집 [사슴][백석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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