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詩 모음

박목월 시 모음

효림♡ 2009. 4. 2. 08:31

* 산이 날 에워싸고 - 박목월  

산이 날 에워싸고

씨나 뿌리며 살아라 한다
밭이나 갈며 살아라 한다

어느 짧은 山자락에 집을 모아
아들 낳고 딸을 낳고
흙담 안팎에 호박 심고
들찔레처럼 살아라 한다
쑥대밭처럼 살아라 한다


산이 날 에워싸고 
그믐달처럼 사위어지는 목숨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그믐달처럼 살아라 한다 *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명시 100선 -민예원

 

* 나그네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지훈

江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三百 里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

 

* 靑노루

머언 산 청운사(靑雲寺)
낡은 기와집

山은 자하산(紫霞山)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가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 *
 

 

* 물새알 산새알
물새는
물새래서 바닷가 바위 틈에

알을 낳는다
보얗게 하얀
물새알

산새는
산새래서 잎 수풀 둥지 안에
알을 낳는다
알락달락 얼룩진
산새알

 
물새알은
간간하고 짭조름한
미역 냄새

바람 냄새

산새알은
달콤하고 향긋한
풀꽃 냄새
이슬 냄새

물새알은
물새알이래서 
날갯죽지 하얀
물새가 된다

산새알은
산새알이래서
머리꼭지에 빨간 댕기를 드린
산새가 된다 *

 

* 임 

내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밤마다 홀로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기인 한밤을

눈물로 가는 바위가 있기로

 

어느 날에사

어둡고 아득한 바위에

절로 임과 하늘이 비치리요 *

 

* 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카드에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ㅡ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ㅡ네 개의 샛파란 눈동자 

참말로 눈이 왔다. 유리창을 동그랗게 문질러 놓고 오누이가 기다린다

누굴 기다릴까. ㅡ네 개의 까만 눈동자. ㅡ네 개의 까만 눈동자 

그런날에 외딴집 굴뚝에는 감실감실 금빛 연기, 감실감실 보랏빛 연기

메리크리스마스
메리크리스마스

 

* 한탄조  

* 아즈바님
잔 드이소
환갑이 낼모랜데
남녀가 어디 있고
상하가 어딨는기요
분별없이 살아도
허물될 게 없심더
냇사 치마를 둘렀지만
아즈바님께
술 한 잔 못 권할 게
뭔기요
북망산 휘오휘오 가고 보면
그것도 한이구머
아즈바님
내 술 한 잔 드이소
** 보게 자네
내 말 들어 보랭이
자식도 품안에 자식이고
내외도
이부자리 안에 내외지
야무지게 산들
뾰죽할 거 없고
덤덤하게 살아도
밑질 거 없데이
니 주머니 든든하면
날 술 한 잔 받아 주고
내 돈 있으면
니 한 잔 또 사 주고
너요 내요 그럴 게 뭐꼬
거믈거믈 서산에 해 지면
자넨들
지고 갈래, 안고 갈래
*** 시절은 절로
복사꽃도 피고
시절이 좋으면
풍년이 들고
이 사람아 안 그런가
해 저무는 산을 보면
괜히
눈물 글썽거려지고
오래 살다 보면 살 맛도 덤덤하고
다 그런기라 
 

* 달

배꽃 가지
반(半)쯤 가리고
달이 가네.

경주군(慶州郡) 내동면(內東面)
혹은 외동면(外東面)
불국사 터를 잡은
그 언저리로

배꽃 가지
반쯤 가리고
달이 가네. *

 

* 불국사

흰 달빛/자하문(紫霞門)  
달 안개/물소리

대웅전(大雄殿)/큰 보살

바람소리/솔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젖는데  

흰 달빛/자하문(紫霞門) 

바람소리/물소리 *

 

* 閏四月

송화(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오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

 

* 가정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내 신발은
十九文半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六文三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十九文半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十九文半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 4월의 노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을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나무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

 

* 난(蘭)
이쯤에서 그만 하직(下直)하고 싶다
좀 여유가 있는 지금, 양손을 들고
나머지 허락받은 것을 돌려보냈으면
여유 있는 하직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한 포기 난을 기르듯
애석하게 버린 것에서

조용하게 살아가고
가지를 뻗고
그리고 그 섭섭한 뜻이
스스로 꽃망울을 이루어
아아
먼 곳에서 그윽히 향기를
머금고 싶다 *

 

* 山桃花1  

山은
九江山
보랏빛 石山

 

山桃花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 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

 

* 송가(送歌)

저승에 가더라도

그것만은 못 잊을 걸

펄렁하고

담 모퉁이로 사라지는

남 치맛자락과

바람에 파닥거리는 흰 옷고름과

눈물같은 달밤의 담 그늘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흰 동정

 

산수좋기로 이름난

한국의 처녀야

흐르는 가람마다

감아 빗은 머리채......

이승 아니면 저승에서라도

기나긴 그 등솔기에

한 번만 얼굴을 묻게 해 다오

 

* 갑사댕기

안개는 피어서

강(江)으로 흐르고//

잠꼬대 구구대는

밤 비둘기 //

이런 밤엔 저절로

머언 처녀들.....//

갑사댕기 남끝동

삼삼하고나//

갑사댕기 남끝동

삼삼하고나

 

* 소찬
(素饌)

오늘 나의 밥상에는

냉이국 한 그릇

풋나물무침에

신태(新苔)

미나리김치

투박한 보시기에 끓는 장찌개

 

실보다 가는 목숨이 타고난 복록(福祿)을

가난한 자의 성찬(盛饌)을

묵도(默禱)를 드리고

젓가락을 잡으니

혀에 그득한

자연의 쓰고도 향깃한 것이여

경건한 봄의 말씀의 맛이여 *


* 박목월(朴木月)시인 

-1916~1978 경북 경주 사람

-1939년 문장지에 [길처럼][산그늘]등을 정지용 추천으로 발표하여 등단.

- 아세아자유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본상, 서울시 예술상.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시집 [청록집][산새알 물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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